[Opinion][오, 오페라!] 투란도트

이것을 해피엔딩이라고 불러야 할까?
글 입력 2018.01.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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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오페라
오, 오페라!
Turand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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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 세헤라자데, 아라비안나이트… 이런 이름들을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혹시 천일야화가 아닌 「천일일화」에 대해서는 어떠세요?

「천일야화」가 세헤라자데가 왕에게 속삭인 천일 밤의 이야기라면 「천일일화」는 공주의 남성혐오를 고치기 위해 유모가 들려준 천일 밤의 이야기입니다. 「천일야화」의 후속격으로 1710년부터 출간된 이 「천일일화」 속에는 뜻밖의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존재합니다.

“나라를 잃고 방황하던 왕자 칼라프. 그는 기나긴 모험 끝에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 도착해 잔혹한 공주의 세 가지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그녀의 사랑을 얻어 왕이 된다.”

신밧드의 모험처럼 길고 흥미로웠던 이 이야기를 50년 뒤 카를로 고치는 소설로 썼고, 또 40년 뒤 프리드리히 실러가 연극으로 썼습니다. 그 연극의 제목 하야 「중국 공주 투란도트」(1801).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바탕입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방황하던 타타르의 왕자 칼라프는 동양의 어느 나라에서 눈먼 부왕과 그를 모시던 시녀 류와 해후한다. 군중 속에서 칼라프는 이곳의 투란도트 공주가 구혼자들에게 세 가지 문제를 내고, 그것을 맞추지 못하면 처형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내 모습을 드러낸 투란도트에게 반한 칼라프는 문제에 도전하여 수수께끼 세 개를 모두 맞힌다. 그러나 투란도트가 그의 사랑을 거부하자 칼라프는 말한다.

“그대가 나에게 낸 세 개의 수수께끼는 모두 풀었으니, 단 하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대는 아직 나의 이름을 모르지요. 나의 이름을 불러 주시오. 날이 밝기 전까지 내 이름을 알아낸다면 기꺼이 당신 손에 목숨을 바치리다.”

공주는 류를 고문하여 이름을 알아내려 하지만 칼라프를 연모한 류는 비밀을 간직한 채 자결한다. 이에 분노한 칼라프가 투란도트의 냉혹함을 다그치고, 사랑을 깨달은 투란도트는 다음 날 모인 백성들과 황제 앞에서 선언한다. “그의 이름을 알아냈소. 그의 이름은 사랑”. 이윽고 백성들의 환호 하에 막이 내린다.


탄생 이래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화려하고도 극적인 예술'이라는 찬사를 받아온 오페라는 대다수 비극적 결말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랑과 죽음, 이 두 가지가 오페라를 화려하게 끌어올리는 요소였던 셈이죠. 그러나 투란도트는 달랐습니다. 투란도트의 결말은 사랑의 기쁨과 환희로 충만합니다.

투란도트의 작곡가이자 생전부터 세계적인 작곡가로 손꼽혔던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는 '지금까지의 내 오페라들은 다 버려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투란도트에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투란도트는 몹시 성공적인 작품이었죠. 투란도트가 초연된 1926년, 라 스칼라 극장의 관객들은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극에 몰입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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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의 라 스칼라(La Scala) 극장.
이곳의 관객들은 몹시 까다로워
무대가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야유를 보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런데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등, 푸치니의 작품 역시 대부분 남녀 주인공이 이별하고 죽음을 맞는 결말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는데 왜 <투란도트>만 예외였을까요? 여기에는 사실 투란도트가 푸치니의 유작이었다는 점이 연유합니다. 3막 후반, 칼라프의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류가 자살하는 장면까지 작곡한 푸치니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거든요.

미완성인 채 남은 투란도트는 그의 제자였던 프랑코 알파노(Franco Alfano)가 백방으로 돌아다닌 끝에 완성되고 푸치니의 사후 2년만에 초연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초연에서 지휘를 맡은 토스카니니(Toscanini)가 류가 죽는 장면이 끝나자 지휘봉을 내린 뒤, "마에스트로(Maestro) 푸치니가 작곡한 부분은 여기까지 입니다."하고 퇴장했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게 남았지요.

어쩌면 투란도트의 결말이 밝게 끝난 건 그래서, 푸치니가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푸치니 오페라의 여주인공들은 막이 올라감과 동시에 남자 주인공에게 한눈에 반하거나 이미 남자 주인공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 주인공을 결단코 사랑하지 않았던 투란도트는, 만약 푸치니의 손 아래서였다면 끝까지 사랑을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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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 Turandot(2017)


그런데 정말 투란도트는 비극이 아니었을까요?

오페라 장르에서는 유달리 여성 주인공이 돋보이고, 앞서 언급했듯 그 여성들이 죽음으로써 오페라의 비극이 완성됩니다. 투란도트에서도 투란도트는 죽지 않았지만 노예 류는 죽고 말았지요.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백성들의 환호로 가득 찬 마지막 장면은 어쩐지 이상합니다. 류의 죽음은 어디로 간 채 사람들은 이것을 해피엔딩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류의 죽음 장면이 푸치니가 작곡한 마지막 부분이었던 탓에 세간에는 투란도트의 진정한 주인공은 사실 류라는 칼럼도 더러 존재하곤 합니다. 오페라 투란도트는 야망으로 한 여성을 버린 남자(칼라프)의 이야기이며, 그에게 희생되어 버림받은 여성(류)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투란도트는 해피엔딩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얼버무려진 비극에 가깝게 되는 것이지요.

또한 투란도트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라고 할 수 있는 네순 도르마(Nessun dorma) 가사를 보더라도 짚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져 있는 네순 도르마는 위대한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대표곡이었고, 영화 <파파로티>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한 노래이자, 폴 포츠의 신화를 만든 곡이기도 한데요, 이 곡을 한번 듣고 와봅시다.




칼라프가 투란도트에게 자신의 이름을 맞히라는 문제를 내자 투란도트는 그의 이름을 알기 전까지는 이 도시의 누구도 잠들 수 없다고 포고합니다. 이때 칼라프가 승리를 예감하며 부르는 노래가 바로 네순 도르마, "아무도 잠들지 말라"입니다.

“승리! 승리하리라!” -노래의 대미를 장식하는 빈체로(Vincero)는 영어 단어 Victory로 대체할 수 있어 보입니다. 결국 칼라프는 투란도트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승리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내지 못하면 전부 죽고 말리라는 절망에 휩싸인 사람들이 그에게 온갖 재물보화와 영예를 약속해도 그는 모든 것을 거부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칼라프는 투란도트를 얻으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투란도트의 마지막 문제처럼, 그녀를 가지면 칼라프는 제왕이 되므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보다도 빈체로, 바로 승리였습니다.


"그대에게 불을 붙이는 얼음, 그러나 그대가 불타오를수록 더욱 차가워지는 얼음. 이것이 그대에게 자유를 허락하면 그대는 노예가 되고, 이것이 그대를 종으로 삼으면 그대는 제왕이 된다.“

"그것은 바로 당신, 투란도트!"


뒤늦게 이야기하자면 투란도트가 처형을 거듭하는 건 복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투란도트는 먼 옛날, 타타르 군에 의해 능욕·살해당한 선조 로우링 공주의 혼이 자신 속에 살아 있다고 믿습니다. 즉 투란도트의 행위에서 자신은 로우링의 복수를 위한 미끼요, 구혼자들은 제물이었던 셈입니다. 때문에 투란도트의 입장에서도 이 이야기는 완전한 해피엔딩이 되기 어렵습니다.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투란도트의 복수는 결국 미완성으로 남게 되니까요.

복수의 면면을 따지기란 어렵지만 사랑이 모든 것의 해답이라는 식의 결말은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숭고한 사랑의 힘? 그런 건 그동안 너무 많이 들어왔던 얘기니까요. 투란도트는 복수심에 불타는 자, 남성을 처형하는 여성이었기에 강렬하고 입체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었는데 이야기 끝에 그녀의 복수는 온데간데없습니다. 때문에 그녀의 복수가 완성되는 것과 끝나는 것, 어느 쪽이 투란도트에게 더 행복한 일이었을까 도리없이 궁금해집니다.


리즈 린드스트롬, 투란도트, 사진 예술의전당 제공.jpg
"이 여성은 여전히 저를 매료시킵니다.
한 번도 지겨움을 느껴보지 못했어요."
투란도트 역만 150회 이상 연기한
현존하는 최고의 투란도트, '리즈 린드스트롬'


고민은 한 가지 더, 완성되지 못한 것이 그녀의 복수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이름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점에서 더해집니다. 이 글을 준비하며 저는 투란도트에게 이름이 없다는 점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투란도트는 직역하자면 투란의 딸(Turan-Dokht)이 되거든요. 이 이름은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시가에 자주 등장하며 귀한 신분의 여성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따라서 투란도트는 고유명사라기보다 대명사에 가깝습니다. 투란도트는 그녀의 이름이되 이름이 아니었던 셈이지요.

참 너무하지 않나요? 이 정도의 여성이면 이름 하나쯤 공들여 지어줄 법도 한데 말입니다. 그 사실이 야속해 아무도 알지 못하게 되었고, 아무도 지어주지 못한 그녀의 이름을 고민하고 싶은 밤입니다. 이야기 후에 그녀는 투란의 딸이자 칼라프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로 일생을 살았을까요? 아니면 이름을 얻고 또 다른 이야기를 썼을까요? 함께 그녀의 이름을 고민해볼 것을 권하면서, 오늘의 오페라는 여기까지입니다.





<추가 감상>

(1) 1998년 베이징 공연(영어자막)
(2) 2013년 서울 공연(한글자막)
(3) 하가 작가의 웹툰,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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