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침내 미술관, 그리고. '불후의 명작'展

글 입력 2018.01.3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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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마침내 미술관, 그리고.
<불후의 명작>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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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서울미술관에서 개관 5주년 기념전으로 진행 중인 <불후의 명작>展. 전시를 보러 가기 전까지는 천경자,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등 대한민국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마주한 거장들의 작품은 놀라웠고, 쉽게 볼 수 없는 서울미술관 소장품 한 점 한 점은 관람객에게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하지만 내가 전시를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중섭의 <황소>도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도 아닌, 서울미술관을 세운 안병광 회장의 글이었다. 


“마음을 뒤흔드는 그림 한 점을 온전히 가지려 한 달 월급을 몽땅 털었다고 하면 지금도 이해 못할 사람이 많을 거예요. 저는 마음에 드는 그림을 가지려 쏟아 부은 기회 비용이 그 어떤 투자나 금전적 이득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소장하는 것은 미래 가치에 투자하는 일이자 인생의 아름다움에 투자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안병광 유니온약품그룹 회장
주간동아 12.09.03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해' 미술관을 설립했다는 안병광 회장이 없었다면 내가 한국 미술사의 거장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까. 1983년 폭우가 내리는 어느 날, 비를 피하기 위해 액자 가게의 처마 밑으로 들어갔다 쇼윈도를 통해 마주한 이중섭의 <황소>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는 안병광 회장의 일화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그 때부터 그의 그림 사랑이 시작됐다. 제약회사 꼴찌 영업사원이었던 그는 <황소>를 통해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림을 사기 위해 밤낮없이 일한 안병광 회장은 꼴찌 영업사원에서 벗어나 이후 유니온약품을 창립하게 된다. 그는 돈을 버는대로 그림을 샀다.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그는 말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이중섭, 황소, 1953, 종이에 에나멜과 유채, 35.5x52cm.jpg
▲이중섭, 황소
1953, 종이에 에나멜과 유채, 35.5x52cm



짧은 인생을 길게 하는 것이 예술

비쩍 말라 앙상한 뼈를 드러낸 소. 하지만 묵직한 다리를 움직이며 앞으로 세차게 전진하는 소의 역동적인 걸음에서는 힘찬 에너지가 느껴진다. 일본 유학시기부터 남다른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던 이중섭은 힘 있고 거칠게 표현한 '소'의 모습을 통해 결코 좌절하지 않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담아내고자 했다.


"어디까지나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모든 것을 전 세계에 올바르고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오. 나는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이라오."

-이중섭


미술 교과서에서나 보던 그림을 바로 30cm 앞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미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고통스런 삶과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 전쟁으로 이어진 우리 민족 수난의 역사를 담아낸 이중섭의 손길이 느껴져서일까. 왜 안병광 회장이 진짜 그림도 아닌 인쇄물이었던 <황소> 그림을 통해 위로를 받았던건지, 이 그림이 그에게 어떻게 용기를 줄 수 있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황소> 속에는 작가 개인의 아픔과 시대의 고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다. 그 누구라도 이 그림 앞에서는 주먹을 불끈 쥘 수 밖에 없다.

40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진 이중섭의 인생은 짧고도 짧았지만, 그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며 지금까지도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말대로 그는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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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不朽)의 명작(名作)

서울미술관의 신소장품전에는 이중섭을 비롯하여 한국 근현대 거장 7인을 대표하는 걸작들이 전시된다. 김기창, 김환기, 도상봉, 박수근, 유영국, 천경자 등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근현대 화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976, 종이에 채색, 130x162cm.jpg
▲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976, 종이에 채색, 130x162cm


특히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와 김환기의 <산> 그리고 김기창의 <만종의 기도>는 서울미술관 소장 이래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기에 더욱 뜻깊다. 천경자는 대중에게 <미인도>로 대표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아프리카를 횡단하며 그 곳의 삶을 스케치한 대작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를 만나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아프리카 여행의 완결편이라고 불릴 만큼 구도가 다양하고 채색이 투명하게 표현되었다. 1년여에 걸친 긴 작업 끝에 탄생했다고 한다. 이국적인 느낌이 가득하지만 여느 천경자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고독과 한이 배어있다. 이 작품 역시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이외에도 김환기 특유의 쪽빛 푸른색이 돋보이는 <산>과 1940년대의 작품 <섬 스케치>, 유영국의 <산>과 <연>, 박수근의 <우물가(집)>까지 많은 작품을 오랜 시간 감상했다. 쉽게 볼 수 없는 거장들의 작품이기에, 그저 그림이 아닌 천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을 불후(不朽)의 유산이기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바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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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



그림이 사람을 부른다


개관 5주년을 맞이한 서울미술관은 작년 누적관람객 14만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사랑의 묘약>처럼 대중, 특히 2-30대를 대상으로 기획한 다양한 전시가 많은 관심을 끈게 아닐까 싶다.


"그림이 사람을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길 원해서 미술관을 지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림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소통할 수 있다"

-안병광


서울미술관의 <불후의 명작>展 역시 마찬가지다. 그림을 통해 동시대뿐 아니라 거장들이 살아온 지난 날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고, 몇십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작가와 소통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불후(不朽) 그 자체다.
 
사업은 유한하지만, 문화는 무한하다는 안병광 회장의 말이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맴돌았다.

마침내, 미술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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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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