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나간 생각의 잔해 분포도' - 프롤로그 [기타]

글 입력 2018.01.31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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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너무 빨리 소재가 고갈되어버렸다. 처음 이곳에서 글을 적기 시작할 때엔 일상을 가지고 끝까지 달려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년 연말부터 기적같이 소재가 고갈돼버리고 매주 무엇을 써야 할지 생각하다가 당일에 꾸역꾸역 써내려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오피니언뿐만이 아니라 프리뷰, 리뷰 역시 고역이었다. 개인적인 욕심이겠지만 다른 에디터 분들이 적지 않은 이야기를 적으려고 하다 보니 부족한 시각만 깨닫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없는 소재로 버티다 보니 매주 과제를 쓰는 사람같이 되어버렸다. 글의 분량 역시 기적같이 급감해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원래 담고 있던 소재들을 빼낸 만큼 다시 채워 넣지 못했다. 채워 넣는다고 해도 그때그때 하기 위한 임시처방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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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은 더러워야 하는 법-


 하지만 일상이 그리 만만하진 않은 듯하다. 무책임하게 이것저것 일을 벌인 탓이지만 개인적인 시간을 일상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공동체와 로컬리티’, ‘현대공동체주의’, ‘마을학개론’, ‘자율성과 공동체주의’ 등 당장 지금 노트북 옆에 놓인 책들부터 해야 하는 일이라는 압박을 강하게 주고 있다. 한쪽에 있는 까뮈와 발터 벤야민의 책들은 공모전을 위한 메모들에 묻혀버렸다. 물론 다 핑계이지만, 그래도 핑계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정도의 생각 고갈 사태를 느끼고 있다.

 물론 생각은 원한다고 채워지지 않는다.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볼 때 감명을 받는 경우는 흔하지 않을뿐더러 감명을 받고 싶을 때 감명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는 경우도(거창하게 말하면 영감이라 불리는 것도)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즉 소재가 떨어졌다고, 생각이 떨어졌다고 바로바로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많이 접하면서 가능성을 높이는 것뿐이다. 일상을 주의 깊게 본다거나, 새로운 것을 찾아본다거나, 여행을 한다거나 해서 말이다. 그러기에 일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가끔씩은 일상이 진짜 보수적이라고 생각을 하곤 한다. 아니 실제로 보수적이다. 일상은 정해진 패턴을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해진 패턴 그 자체가 일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결심을 하지 않는 이상 생각은 있는 그대로 고인 물이 되어버린다.

 심지어 생각은 자극처럼 계속 다른 정도를 요구한다. 같은 자극을 계속 받으면 둔감해지듯이 같은 소재에서 생각은 계속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초지를 찾아 떠나는 유목민들처럼 새로운 소재를 찾아 방황해야 한다. 그 길이 상당히 험난한 방황의 길이기에 많이들 다른 사람이 간 길을 따라가곤 한다. 다행인 것은 많이 쓰면 화석자원처럼 고갈되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고전이, 명작이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인정받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모두가 같은 길을 간다고 똑같이 생각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길잡이로 다른 사람을 따라간다고 하더라도 결국 각자의 길을 찾아가야 채울 수 있다. 참으로 슬픈 이야기다. 항상 개척은 실패를 제공한다. 무엇을 물어보거나 찾기 위해서 이집 저 집 초인종을 누르는 기자가 되어 온갖 것을 해보면서 다녀야 한다. 그렇게 오랜 실패의 기간 끝에 어떤 지도를 만들어가기 전에는 방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지도를 그려냈다 하더라도 계속 지도를 확장하기를 생각은 강요한다. 생각을 채우고자 한다면 그 강요 속에서 계속 실패를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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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하고, 버리고, 버리고, 실패하고 -


 이제 어떻게든 생각을 다시 채워야 하는 때가 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재충전이 필요한 시간이 되었다. 생각의 재충전, 사고의 재충전, 관심의 재충전, 흥미의 재충전 모두가 필요하다. 그 첫걸음을 걷기 위해서는 먼저 지도를 정리해야 할 것이다. 지도를 정리하다 보면 수많은 실패의 조각들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실패의 조각들은 참 매력적이다. 한순간 스쳐간 관심에 그쳤더라도 지식으로 남아 예상치도 못했을 때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 튀어나옴에서 전개된 새로운 관심은 방황의 해결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제 와서 프롤로그라는 타이틀을 달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도 웃기고, 시작하고 바로 기말고사인 바람에 2편 만에 사라져 버린 학교 특집도 살려야 하지만, 그래도 새로 시작해보려 한다. 몇 편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저 나라는 사람이 남긴 기억과 기록을 살펴보면서 적을 만한 것이 있는 대로 적을 생각이다. 하나도 찾지 못한다면 언젠가 ‘찾지 못함’이라는 타이틀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과연 몇 편이나 적을 수 있을지 기대하며 프롤로그를 끝마친다.


[김찬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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