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영화]

글 입력 2018.02.0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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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하던 고민이 주로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것이었다면, 요즘 하는 생각들은 그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전자에 대한 답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여전히 중요하지만, 인생에서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변화한 것 같다. 어쩌면 나이를 먹어서일 수도 있겠다. 꽤나 오랫동안 멈추지 않고 일어났던 사건사고들, 찰나의 순간에 갈린 생과 사, 슬픔에 절망하기도, 맞서기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으로서, 한 명의 친구로서, 딸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후회를 남기지 않을까? 이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2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의 상황과 맞물려 다음으로 귀결되었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이 질문에도 역시 정해진 답이 없겠지만, 주변의 어른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나는 조금씩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분들도 한 때 나와 같은 나이였기에 그맘때 할 만한 고민들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지금에 와서도 꽤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차이가 있다면 역시 정신적인 성숙도였는데, 살아 온 세월이 만들어 주는 것일지라도 조금이라도 더 일찍 배우고 싶어 말씀을 새겨 들었다. 한편 조금 더 간접적 루트이지만, 보편적인 감성을 담고 있는 한 편의 영화 또한 나의 스승이 되었다. 평소에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 살펴 볼 여유가 없었던 나에게, 이 작품은 정신 없이 돌아가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영화 <우리의 20세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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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의 장르를 굳이 매기자면 성장 드라마인 것 같다. 대신 문제가 있고, 그것이 해결되어 해피 앤딩으로 마무리 되는 식이 아니라 사람들이 인생의 어떤 지점들에서 겪는 감정들을 그저 보여줄 따름이다. 그것은 나아지기도 하고,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은 채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이러한 종류의 감정에 대처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사람들 각자에게 포커스가 꽤 골고루 맞춰지는데, <20th Century Women>라는 원제와 달리 <우리의 20세기>로 제목이 붙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등장인물 중 여성의 비율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남녀 할 것 없이 산타바바라에서 20세기의 중반을 함께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름에 고루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야기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는데, 그녀는 학창시절에 전쟁을 겪었고, 공군 파일럿을 꿈꿨으며 콘티넨탈 캔컴퍼니 제도실 최초의 여직원이 된 도로시아 필즈이다. 지금은 이혼 후 산타바바라에서 제이미를 키우며 쉐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나에게는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이었는데, 비단 이야기가 도로시아로부터 시작되어서뿐만 아니라 고민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행에 밝아 버켄스탁을 신고, 어린 제이미에게 계좌를 만들어주며 제이미가 원하면 조퇴증을 써주기도 하는 신세대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아들과의 관계에 있어 누구보다 고민이 깊은 엄마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세대 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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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혼자서 제이미를 키워 왔지만 제이미가 열일곱 살이 되면서 주변에 도움을 청한다. 도로시아가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을 제이미의 친구 줄리와 스물 네 살의 에비가 채워주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제이미와 소통을 시도하지만, 제이미는 엄마가 하려는 것들을 부담스러워한다. 나는 그녀 스스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가 굉장히 성숙하다고 느꼈다. 싸고 돌지 않고 주위 사람들을 통해 자식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시도하는 행동도 말이다. 게다가 도로시아는 아들 세대의 문화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면서도 끊임 없이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에비와 제이미가 좋아하는 펑크 밴드의 공연이 열리는 클럽에 다녀와서 “인생을 바꿔놓을 경험이었다”고 말하는 장면은 내가 생각하는 멋진 어른의 표본 같았다.
 
 물론 멋지다는 것이 완벽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그녀는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에비가 제이미와 함께 클럽에 가서 술을 마시고, 여자를 꼬시는 말을 알려줬다는 말에도 도로시아는 이렇게 말한다. “넌 바깥세상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의 그 앨 본거야.” 어쩌면 자신은 평생 보지 못할, 그런 모습 말이다. 나는 처음에 세상 어떤 부모가 궁금하지 않을까 싶어서 부모님께 여쭤 보았다. 밖에서 나의 모습이 어떤지 궁금하지 않냐고… 대답은 예상과 달리 별로 궁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른들도 나름대로 선이 있다는 것이다. 자식에게 개입해야 할 부분과 아닌 부분에 대해. 그리고 그들도 십 대, 이십 대와 다르지 않게 끊임없이 고민한다. 사랑에 정착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낡아 가는 인생에 대해, 삶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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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가장 좋았던 점은,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는 태도였다. 이런 주제는 흔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영화가 그를 보여주는 방식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낡지 않으려 했지만 낡았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때, 그 낡음을 즐기기로 할 때 도로시아의 눈빛에서 나오는 어떤 에너지가 있다. 나는 그 에너지가 모두에게 전파되는 것처럼 느꼈다. 그래서 한 때 자신에게 닥친 어떤 불행에 골몰했던 이들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에비는 시골에서도 전시를 이어가고, 줄리는 뉴욕대라는 넓은 세계로 나아가고, 제이미는 결혼을 하고. 도로시아가 인생의 마지막 사랑이 선물한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날아 오르는 마지막 장면이 어른거리는 것은 그 힘이 남긴 여운 때문이 아닐까. 그 어른의 관조가 남은 이들에게서 다음 세대로, 또 나에게로 이어지기를, 그래서 조금은 더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이미지 출처: 영화 우리의 20세기 (캡쳐)


[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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