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국문과도의 알쓸신잡 _ 당신이 단어를 생각해내는 법 일탄 [문화 전반]

심성 어휘집, 그런 것들에 대해
글 입력 2018.02.05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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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 겨루기, 그것은 집에서 밥을 먹으며 볼 것이 없을 때 가만히 앉아서 보기 좋은 무언가다. 괜히 나도 꽤 우리말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나오는 문제들을 맞춰보고 가족 앞에서 자랑하며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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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겨루기의 전설적인 회차 중에서


 초등학생이라는 단어를 보고, 'ㅇㄹㅇ'라는 초성이 '어린이'를 가리키는 것임을 아는 우리는 대단한다. 어떤 연결고리가 있어서 이런 유추가 가능한건지, 우리가 이렇게 대단한데에는 어떤 뇌의 작용이 일어나서인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언어 학자들이다.

 당신도 꽤 궁금하지 않은가?

 우리는 어떻게 초등학생이라는 단어를 보고, 저 기억 먼 곳에 있을 '어린이'라는 단어에 닿는가. 이번 글에서는, 우리가 단어를 생각해 내는 방법에 관한 언어학자들의 추측 중 하나를 이야기한다. '심성 어휘집'이 바로 그것이다. 단어가 어려워 보인다면, 맞다. 내용도 어렵다. 하지만 한번 쯤은 말을 읽고 쓰고 떠올리는 우리는, 그 과정에서의 우리의 뇌 모습에 대해 궁금해 할 필요가 있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백전백승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학자들의 추측과 담론들을 엿보는 것은 꽤 재미나다. 똑똑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살짝 맛보고 온 국문과도의 친절한 소개글, 그것이 바로 이 '국문과도의 알쓸신잡'이 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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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 어휘집

 언어 학자들은, 우리가 머릿 속에 '심성 어휘집'이라는 단어저장소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억 속 단어 주머니에 어휘 지식이 담겨있을거라는 이야기다. '단어를 안다는 것'은 곧, '심성 어휘집에 그 단어가 저장되어 있다는 것'과도 통용한다. 그렇다면, 이 심성 어휘집에는 단어에 대한 어떤 정보들이 오밀 조밀 모여있을까요? 이번 일탄에서는, 이 심성 어휘집이라는 저장소에 모여있는 단어의 정보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당신이 '단어'를 말하고 쓰며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을만한 단어의 복잡스러운 정보들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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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 어휘집 속 단어의 정보들

 '사랑'이라는 단어를 안다는 것은, 아주 많은 것을 아는 것이다. ㅅ,ㅏ,ㄹ,ㅏ,ㅇ 이라는 음운을 아는 것이며, 그것을 문장 속에 넣었을 때 명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사랑스러운'이라는 단어로 형태를 여러가지로 바꿀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이번 절에서는 이 단어의 여러가지 정보들에 대해 간단히 다룬다.


- 머릿 속, 음운 정보 : 우리의 머리에는, 그리고 심성 어휘집이라는 단어 주머니에는 음운 정보가 자리하고 있다. 발음과 같은 것들이다. 또 우리는 이 음운 정보들을 통해 단어들을 기억하고 생각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설단 현상'이 그 근거이다. 겁먹지 마시라, 영어로 하면 TOT(Tip Of Tongue)라는 아주 귀여운 이니셜을 가진 현상에 불과하며, 우리 모두 겪어본 일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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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당신이 위의 사진을 보고, 그의 이름이 가물가물하여 '이병환? 이병훈?'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설단 현상'을 겪은 것이다. 어떤 사실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혀끝에서는 빙빙 돌기만 할뿐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상황이 설단현상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때때로 단어를, '소리'를 통해 기억해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곧잘 겪어보았을 이 단순한 사건들이 우리의 머릿 속 단어 저장소에 단어의 '음운' 정보를 집어넣고 다닌다는 것의 근거가 된다.


- 머릿 속의 문법 지식우리의 단어 저장소엔, 문법 지식도 고스란히 들어가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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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쁜 두아 리파를 좋아한다'에서, 예쁜이라는 부분을 '섹시한', '멋진' 등으로 바꾸어도 문장이 이상하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는 우리가 머릿 속에 단어들의 문법적 정보를 저장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또 우리는 영단어를 외울때, 그것이 noun인지 verb인지를 인식하고 암기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문법은 언제나 재미없다. 바로 다음 지식으로 넘어가보도록 하자.


- 형태에 관한 지식 :

"폭력"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 범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단어의 형태를 안다. '폭력'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은, '폭력적'이라는 단어와 '폭력성' 그리고, '폭력하다'를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 형태소를 기점으로, 다양한 단어들을 만들고 조합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뇌를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단어 뿌리를 가지고, 다양한 형태의 단어를 수천개를 조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고등학교 졸업생은 평균 45,000개의 단어를 안다고 한다. 아마도, 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그 수가 훨씬 많을 것 같다. 당신은 어떠한가요?


- 의미에 관한 지식 : 그래, 우리는 '단어를 안다'고 하면 그것이 '단어의 의미를 안다'를 뜻하는 말이라는 것으로 이해해왔다. 단어를 안다는 것은 가장 중요하게도, 그것의 의미를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단어의 의미에는 두가지 차원이 있다. 바로 어의와 지시라는 것이다.


"갈색 머리의 민경이가 학생식당에서 지지고를 먹는다"

 먼저, 지시란 단어와 세상에 있는 대상간의 관계를 뜻하며, 그 대상을 단어의 '지시 대상'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갈색 머리의 민경이가 학생식당에서 지지고를 먹는다'라는 문장이 있다. 이 문장이 진실이라면, 반드시 민경이의 머리는 갈색이어야 하며, 학생식당에서 지지고를 먹고 있어야 한다. 지시는 어떤 발화가 참이라면, 반드시 그래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예시 문장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일단 민경이는 갈색머리가 아니며 지지고를 먹고 싶어서 쓰여진 문장이라는 것이다. 너무나도 tmi였으나 왠지 적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사랑과 정의, 그리고 유니콘과 도깨비와 같은 의미는 있으나 실제 지시대상이 없는 단어들도 존재한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방법은, 현실 세계뿐 아니라 '가설의 세계'에도 지시 대상을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존슨 레어드는 지시 문제에 관해 '심성 모형 개념'을 들이밀었다. 심성 모형이란 곧, 현실 세계를 머릿 속에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눈 가리개를 씌우고 특정한 방에 대해 설명을 한다면, 그 사람은 방에 대해 생생한 모형을 생각해 낼 것인데, 이것이 바로 '심성 모형'이라는 것이다. 이 마음 속의 상상 속 모형에 우리는 유니콘을 만들고, 그에게 유니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단어에는 '지시'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바로 '어의'이다. 어의 없겠지만 그렇다.


"김정숙 여사의 배우자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자 '김정숙 여사의 배우자'가 지시하는 것은 동일하게 문재인 씨이다. 하지만 다음 총선 이후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으며, 김정숙 여사의 배우자가 문재인 씨가 아니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앞선 문장의 진리값은 문재인 씨이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의 의미는 그대로 남을 것이다. 이렇게 지시 외에 의미가 가진 부분을 '어의'라고 한다. 지시는 변할 수 있지만, '어의'는 변하지 않는다. 단어의 어의란, '다른 언어들과 접촉하는 관계들의 체계에서 그 단어의 위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 단어의 암시적 범위 : 단어는 이렇듯 다양한 정보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인 이 암시적 의미란 더 사회적이고, 사회적인 것인데 이는 단어가 구체적으로 명명하고 묘사하는 것 이외의 정보이다.


독신남과 독신녀

 예를 들어, 독신남과 독신녀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둘다 '결혼한 적 없는 성인'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독신녀'라는 단어는 사회가 정한 결혼 적령기를 넘긴 나이든 여자를 떠올리게 할 것이다. 하지만 독신남은 적당한 나이의 젊은 남자라는 반대되는 선입견과 관련된다. 이는 '언어심리학'이라는 책에 적힌 예시를 들고 온 것이며,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선입견이라고 판단되어 이 곳에 실었음을 일러두며, 하루 빨리 이런 종류의 단어의 암시적 정보가 없어지길 바라본다.



이탄에서는, 심성어휘집에 단어가 들어있는 모양과 꺼내지는 방법에 관해 말합니다.
 

[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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