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한 입] 본 에퍼티! '줄리 앤 줄리아'

Bon appétit!
글 입력 2018.02.06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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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필름 한 입
<줄리 앤 줄리아>


따분한 일상 속,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식탁에서 찾을 수 있다. 아침과 점심, 저녁을 새로운 요리로 채우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 된다.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살이 속, 레시피를 따라 하기만 하면 마법 같은 맛을 찾을 수 있으니 어느 정도의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따라하는 것이 쉬운 일이냐, 그 것은 아니다. 같은 재료를 구하기는 생각보다 어렵고, 같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것 역시 만만치 않다. 한 끼 식사에 큰 노력을 기울이기도 쉽지 않으니, 이런 이유 때문에 레시피가 정해져 있어도 요리는 어느 정도 ‘도전’이 되기 마련이다. (특히, 나같이 요리에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새로운 요리 하나 해보는 것도 도전인데, 요리책 한 권을 통째로 실행해보겠다면? 세상에 그만큼 무모한 도전이 없을 것이다. 요리책을 한 번쯤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아무리 쉬운 요리책이라 하더라도 절대 해먹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요리가 끼어있지 않은가. 요즘에는 집반찬 레시피다 뭐다해서 간단한 요리책이 더 유행인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료의 호불호 등의 이유로 골라서 해먹기 마련이다.(애초에 그러라고 있는 요리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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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로 여기. <줄리 앤 줄리아> 속에 그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 여성이 있다. 바로 프렌치 셰프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의 팬 ‘줄리’(에이미 아담스)다. 줄리는 지루하고 형편없는 일상 속 기분 전환으로 요리 블로그를 시작한다. 그리고 남편의 지원과 줄리아에 대한 존경을 바탕으로, 줄리아의 레시피 524개를 1년 안에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요리에 대한 열정은 물론, 재능도 겸비한 줄리임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는 제법 여러 번 난관에 부딪힌다.

한편 이 레시피의 주인공 줄리아 차일드는, 당시 찾아보기 힘들었던 여성 요리사다. 남성 요리사들 사이에서 기가 죽지 않기 위해 요리에만 몰두하는 모습은 물론, 레시피를 완성하기 위해 열정을 쏟아 붓는 모습은 요리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보여준다. ‘그냥 주워 담으세요, 뭐 어때요.’라든가, ‘뒤집을 때는 용기가 필요해요.’와 같은 대담하고 스윗한 말투는 줄리를 비롯한 관객들을 웃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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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를 사이로 둔 두 여성. 이 설정 자체가 굉장히 반갑다. 두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보다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훨씬 희귀한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에이미 아담스와 메릴 스트립의 조화라니. 그것도 멘토-멘티와 같은 관계라니! 두 사람이 직접적으로 만나는 장면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울 만큼 훌륭한 조합이었다.


그녀는 나를 구해줬어.
물에 빠진 날 그녀가 건져줬어.

-줄리-


그 조합 자체만으로도 훌륭하건만, 줄리 앤 줄리아, 두 여성의 업적은 그보다 더 큰 일을 해낸다. 바로 요리에 관련된 여성혐오를 깨부수는 것이다. 가정 속 부엌일은 ‘부부유별의 도리로’ 여성이 한다는 고정된 틀 때문이 아닌, 줄리는 자기 자신의 도전을 위해서,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요리를 해나간다. 줄리아는 남성이 주를 이루던 쉐프들 속에서 당당히 전설의 프렌치 쉐프로 이름을 올린다. 여성에게 있어 요리는 ‘집안’에서 해야할 업무가 아닌, 여성이 선택할 수 있고, 또 직업적으로 훌륭히 해낼 수 있는 일임을 증명한 것이다. (물론 줄리아가 쓴 책의 제목이 ‘요리사가 없는 미국 여성들을 위한 요리책’이라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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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속 두 인물에게 요리는 일생을 뒤흔드는 커다란 요소다. 단순히 먹고 사는 것을 넘어, ‘도전’ 그리고 ‘자아 성취’다. 줄리아에게 있어 레시피를 완성하는 일은, 줄리에게 있어 줄리아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일은, 단순히 취미의 문제가 아니다. 타지에서 적응하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줄리아의,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줄리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서문에서 이야기했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탁에게 원하는 것이 배부름과 새로움이라면, 이들이 식탁에게 원하는 것은 성공이다. 레시피의 성공, 그리고 프로젝트의 성공. 아마 요리라는 것이 한 사람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 가장 완벽하게 설명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줄리의 저서 <줄리 앤 줄리아>를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 속 요리가 더욱 뜻 깊은 이유는 이 두 사람이 그 무엇도 아닌 ‘레시피’로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하인이 없는 미국인을 위한 레시피북을 만든 줄리아와, 그 레시피북의 모든 레시피를 도전하는 뉴욕의 줄리. 이 속에서 ‘레시피’는 마치 줄리아가 독자에게 쓴 편지 같다. 영화 속 줄리아가 펜팔 친구와 오직 편지로만 대화함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애틋한 친구관계를 지녔던 것처럼, 레시피라는 편지는 요리사와 독자를 요리라는 이름으로 끈끈하게 이어준다. 레시피의 힘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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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필름 한 입에는 영화의 한 장면도 덧붙여보겠다. 목표를 가지게 된 줄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먹음직스러운 요리들은 덤이다. 그간 먹지 않았던 달걀을 먹는 줄리의 모습은, 이 도전이 줄리에게 있어서 얼마나 즐거운 모험인지 보여준다. 영화를 보며 내가 느꼈던 열정이, 필름 한 입을 통해 당신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Bon appétit!






스틸컷 출처_네이버 영화 '줄리&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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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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