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쇼, 끝은 있는거야! 영화 < 트루먼쇼 > [영화]

글 입력 2018.02.0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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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딜레마가 하나 있다. 한 아이가 있다. 이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다른 다수의 사람들은 힘들어진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이 아이는 영원히 갇혀살게 된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다수가 행복한 게 중요하다면, 웰컴 투 공리주의. 최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의 수에 따라 행복과 불행의 크기를 비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나만 해도 어느 면접에서 '공리주의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불가피하다면 최선이라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트루먼쇼>, 영화 한 편으로 정말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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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말한 바로 그 딜레마가 가정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라면? <트루먼쇼>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트루먼 버뱅크, 태아 때부터 30대로 추정되는 현재까지 하루 24시간 그의 모든 것이 전 세계에 방송된다. 나의 모든 것이 나도 모르는 이들에게 공유된다니. 이건 비밀인데, 하던 말, 나만 알고 싶은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까지 모두. 소름끼친다. 방송국에 입양되었으니 이런 식으로 쓰일 수 있다나.

 영화에서 트루먼을 제외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방관한 모든 인물이 악당이다. 그러나 한 사람만 꼽자면 프로듀서를 대표적으로 꼽겠다. 트루먼쇼는 트루먼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모욕의 집합체다. 그는 사람 대접을 받은 게 아니라 돈 되는 투자처였다. 트루먼쇼는 트루먼에 대한 동의없는 일방적인 사기이자 감금, 사생활 침해, 인권 유린이자 착취다. 죄목을 몇 개나 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트루먼은 진실을 알지 못한다. 프로듀서는 그의 신인 양, 그의 아버지라도 되는 양 스크린에서 그를 쓰다듬고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한다. 프로듀서는 그가 진실을 알지 못하도록, 즉흥적인 삶을 살지 못하도록, 이 섬을 벗어날 수 없도록 그에게 트라우마나 시련을 주었다. 물을 보면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도록. 그를 위해 섬을 전부 꾸몄고, 인간관계는 배우들로 채워넣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그를 롱런하는 드라마를 보듯 흥미롭게 시청할 뿐이다. 그들에겐 어차피 '방송 프로그램'일 뿐이니까.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트루먼쇼는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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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려면 빈틈없이 제대로나 하지, 곳곳에서 그의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실수가 일어났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는 방송이 라디오에서 들렸다. 하늘에선 조명이 떨어졌다. 그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면 모두가 당황한다. 아이를 갖자는 아내 메릴은 사실 별로 그를 안 좋아한다. 겁쟁이인 줄 알았던 그가 수많은 눈과 카메라를 속이고 그렇게 무서워하던 물로 나아갔다.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지 않은 대가로 프로듀서가 만든 폭풍우에 휩쓸릴 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화내지 않았다. 모두에게 위트있게 인사를 한다. '미리 인사하죠, 굿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잇.' 그는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만들어진 세상, 거짓된 진실, 빈 껍데기의 평온한 일상에서. 다들 그를 시청하기만 했지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그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 프로듀서마저도.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멍청한 듯 했지만 똑똑했다. 시청자가 느낀 감동과 재미는 프로듀서의 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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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우리는 이 프로듀서를, 시청자들을 못됐다고 비난만 할 수 있을까. 1998년에 만들어진 트루먼쇼는 놀랍게도 최근의 예능 트렌드와 흡사하다. 프로듀서는 10년, 20년을 앞서 본 선구자인 것이다.  트루먼쇼는 그냥 쇼가 아니었다. 시청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열일하는 연출로 더 많은 광고와 각종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작은 국가의 GDP 수준의 경제적 성공을 이뤘다. 트루먼이 함께 하는 이상 이 수익은 고정적이다. 누가 아나. 늘 단역 자리는 필요하니 일자리를 창출하고 그의 생활 속 제품 홍보로 소비를 촉진시키고, 그 수익으로 파이를 분배하는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이바지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정신적 안정감은 어떤가. 트루먼이 성장하는 것을 다같이 흐뭇하게 보며 울고 웃는다. 먼 얘기는 아니다. 우리 역시 만나본 적도 없는 연예인과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 공감하고 위로받고 힐링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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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루먼쇼의 프로듀서의 말은 사실이다. 트루먼쇼는 좋은 의도와 영향력을 갖고 있다.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기쁨, 위로를 주는 프로그램.' 다만 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이 빠졌을 뿐. 전 세계 TV는 리얼리티 쇼가 가득 채웠다. 모델, 가수, 아이돌 등을 뽑는 부분적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2016-17년 예능을 쥐어잡은 <나 혼자 산다>, <미운 오리 새끼>, <슈퍼맨이 돌아왔다> 까지. 일상을 노출하는 정도의 차이일 뿐 그리 다르지 않다. 앞의 두 프로그램은 연말 예능프로그램에서 온갖 상을 휩쓸었다. 차이가 있다면 당사자가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집집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일상에 자리잡았다. 집을 공개하고, 생활하는 날 것의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마치 출연자의 '진짜 모습'을 안다고 믿도록.

 물론 무엇이 어디까지 진짜인지는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지금은 진실의 경계가 혼란스러운 정도지만, 나중엔 사람들의 역치가 높아질 것이다. 더 강한 자극은 진실된 존재의 진실된 감정에서 온다. 몰래카메라가 재밌는 이유와 같다. 예전에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란 존재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다. 어차피 방송은 짜고 치는 대본이 암암리에 있는 게 아니던가? 사람들은 불신했다. 그러나 지금은? 익숙하다. 진심이 있는 부분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미래는? 트루먼쇼 같은 것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시청률이 잘 나오니까. 돈이 되니까. 사람들이 열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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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정하게 생각하자. 프로듀서의 역량은 훌륭하다. 눈치를 채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트루먼에 대처하기 위해 그 역시 열심히 대처하느라 바빴다. 갑자기 돌아가신 설정의 아버지를 우연찮게 만나자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전개와 대사를 마련한다. 트루먼의 고뇌에 대한 위로, 트루먼과 아버지의 재회. 기쁨의 눈물. 바로 클로즈업을 해선 안 된다. 서서히 멀리서부터 마지막 그의 얼굴로 다가가야 한다. 트루먼이 그가 만든 세상을 박차고 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프로였다. 그는 의도적으로 나쁜 역할을 맡기도 했다. 트루먼이 폭풍우에서 모진 고생을 하게 만들었고 폭풍이 지나간 쨍쨍한 햇살에 비친 만족감을 대조하며 극의 밀도를 높였다.

 마지막 문을 열고 나가기 전 이 곳에서 계속 함께하자며 그의 내면의 두려움을 건드렸다. 물론 진심도 있었을 것이다. 나와 오래 함께 하자. 그러나 한 구석으로는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끝날 때 끝나더라도 레전드는 만들어야지. 부정할 수 없는 최고시청률을 갱신하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선사했다. 프로듀서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트루먼에게 마냥 좋은 일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만두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전 세계의 시청자,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 얽힌 이해관계자의 기대에 찬 눈빛. 그는 트루먼의 인생동안의 시간만큼 그들의 무게 아래 짓눌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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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것을 저울에 두자면 프로듀서 입장에서는 트루먼의 벗어나고 싶다는 고민은 묵인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에게 이 상황은 딜레마가 아니다. 이제와서 부조리가 가득한 세상에 나가지 않는 것이 트루먼에게도 좋다고 생각하니까. 어차피 스타가 된 이상 바깥 세상에서도 그가 원하던 자유는 얻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니까. 여기선 고작 갑갑할 뿐이지만 진짜 세상에서 그는 욕을 먹고 상처를 받을테니까. 게다가 적어도 트루먼에게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니까. 심지어 이혼한 후에 재혼할 두번째 아내까지. 귀차니즘이나 결정장애에 빠져있다면 이 만한 직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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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듀서는 트루먼쇼를 딜레마로 보지 않았다. 한 사람의 완전한 희생으로 다른 이들이 이득을 보는, 일방이 희생하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스타와 지켜보는 수많은 지지자들, 윈윈이나 협조 관계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에게 인간도 아니라고 비난의 화살만 퍼부을 텐가. 그는 자신의 일을 그저 잘 알고, 잘 하고 있는 전문가였다. 그는 쇼는 끝이 없다고,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하나뿐인 스타인 트루먼은 쇼도 끝이 있는 거라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프로듀서는 말문을 잃었다. 갑자기 예상치 못한 끝을 맞이한 것이다. 아직 트루먼을 보내줄 어떤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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