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견고하고 개인적인 세계, 타샤의 말

글 입력 2018.02.08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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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견고하고 개인적인 세계
타샤의 말


철들자. 남들에게 부끄러운 삶을 살지 말자.
비전이 있는 인생, 꿈이 있는 인생.


 우리는 늘 철들기를 요구받았다. 그리고 여기서 철이 든다는 것은 나의 욕심이 아니라 이 사회의 규칙에 잘 순응하는 것을 의미했다. '철이 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사실 아주 오랜 시간 전부터 우리의 삶을 옥죄어 왔다. 그 시작을 쫓아가 보면, '장래희망'이 대표적인 사례로 보인다. 그렇다. 초등학교 때 처음 접하게 되는 그것, 빈 곳이면 뭐라 한소리 듣게 만드는 그것 말이다. 꿈을 꾸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사실 나는 그때 그 시절의 '장래희망' 떠올렸을 때, 그 마음 자체보다 유독 꿈의 결과에 몰입하던 어른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비교적 모범생이었던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어른들의 요구를 착실히 충족시켰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수많은 질문이 가능하다. 왜 어릴 때의 우리는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것들보다 미래의 결과를 더 생각해야 했을까?

 그래도 그때는 내가 지금을 뭘 바라고 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요즘엔 간혹 결과만 생각하고 달리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느 순간 나의 행복과 욕구를 뒤로하고, 철드는 것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하여튼 우리는 그때부터 지금보다 미래를, 나보다 사회를 꿈꾸길 요구받았다. 어른들 말로는 그게 철이 든 것이었다. 이제 나도 어른이 되어서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고 다녔다. 나보다 사회, 현재보다 미래, 내 욕심보다 가치. 그게 '올바른' 것이었다.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정신없이 살아요.
카모마일 차를 마시고 저녁에 현관 앞에 앉아
지똥지빠귀의 고운 노래를 듣는다면
한결 인생을 즐기게 될텐데.

-타샤 튜더


 수많은 미래 계획에 밀려 있던 나에게 타샤는 그런 사회에서도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귄 정원을 소개했다. 그녀의 정원은 개인적이고 소박하지만, 그 어떤 세계보다 견고하다. 견고한 그녀의 정원은 불안과 절망이 쏟아져 내리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빛난다. 오늘 나는 그녀의 정원을 조금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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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사회의 기준으로, 타샤는 철이 없다. 그녀는 순간순간에 집중하고, 원대한 목표보다 자신의 삶을 가꾼다. 그래서 그녀가 종일 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고, 정원을 가꾸고,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다. 타샤의 삶은 소박하기 짝이 없다. 책에는 온통 근심없고 편안해 보이는 모습으로 주변을 오가는 타샤의 사진을 마음껏 담아내고 있다. 성공과 성취를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서 타샤의 삶은 우습게 보여야 하는데, 카메라가 쫓은 타샤의 눈에는 깊게 가라앉은 평화와 행복이 있다. 엔틱한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는 타샤는 삶의 진리를 깨우친 현자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모습과 글이 그렇게 초연해 보일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정말로 세상 일부를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글에서는 풀 냄새가 난다. 화려한 꽃이나, 인공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겉치레 없이 땅에서 돋아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정원 속에서 그녀는 생명을 독립적으로 바라봤다. 이성주의와 계몽주의가 가리킨 방향이 아니라, 그녀는 정말로 다른 생명과 같이 '존재'하는 것을 즐겼다.


바랄 나위 없이 삶이 만족스러워요.
개들, 염소들, 새들과 여기 사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답니다.


 책은 할머니의 일기장 같다. 별달리 심각한 이야기도 없고, 자연과 추억이 이따금 반짝일 뿐이다. 노곤한 타샤의 모습처럼 그녀의 계절도 평화롭게 변화한다. 각 계절은 타샤가 다른 존재를 마주하고 교류하는 모습을 담아내기도 하고, 그녀의 소소한 추억과 감상을 담아내기도 한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정원을 돌봤다. 그녀의 정원은 그녀의 이상한 고집과 사랑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그녀의 정원은 이미 타샤의 삶 그자체가 되었다.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 아래에는 남몰래 치열한 고민과 불안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엔 너무나 자신의 인생을 사랑했다. 마지막까지 그녀가 삶이 만족스럽다고 이야기하고, 남은 사람들이 그녀와 그녀의 정원을 떠올릴 수 있는 것도 그녀의 기묘한 고집이 기어코 아름다운 정원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현대인이 다른 사람의 시선과 불안에 시달릴 때, 타샤는 자신의 정원에 물을 줬다. 그녀의 정원은 철들기를 노력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슬로건을 내미는 것 같다.


마주하자.
내가 마주한 삶을 양껏 느끼자.
나의 세계가 존재하는 인생, 그 아름다운 정원.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 이런 가사가 있다. 지루하게 선명하기보다는, 흐릿해도 흥미롭게. 우리도 당장 내리쬐는 비교와 불안의 늪에서 조금 빗겨 서서 타샤의 정원을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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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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