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반항아 뫼르소, 사회를 고발하다 [책]

글 입력 2018.02.1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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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반항아 뫼르소, 사회를 고발하다
 필자에게 뜨거운 감상을 안겨준 책 중 하나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한번 읽고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기억된다. <어린왕자>가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한번 더 책을 뒤적거리게 했다면, <이방인>은 분노와 당혹감으로 뒤적거리게 했다. 처음 책을 다 읽었을 때, 필자는 카뮈가 원망스러웠다. '실존주의'를 표방한다는 <이방인>에 관한 가벼운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들이 쉽게 적용되지 않았다. 소설을 소설로써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있지만, 필자에게 뫼르소의 행동은 각성이라기 보다 심리적 충격으로 인한 방어기제의 발현에 가까웠다. 따라서 그는 자유인이라기보다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오히려 부적응적인(사회의 기준이 아닌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의 삶에서) 정신에 실존이라는 철학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그래서 왜 이 작품이 실존주의에 포함되는 소설로 취급받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뫼르소의 행동은 필자가 잠정적으로 내렸던 실존주의의 가치를 위배하고 있었다. 필자는 실존을 고민하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자유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와 자유를 낳는다고 생각했었다.

 당시 필자에게 실존주의란 무한한 세계에 잠깐 내던져진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선택지였다. 실존을 자각한 인간은 자신의 짧은 시간과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자유의 가능성에 환희할 수 있어야 했다. 필자는 주체로 각성한 뫼르소가 죄와벌의 주인공의 마지막처럼 땅에 키스를 한다거나, 자신의 행동을 통탄한다거나 그런 내용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방인>은 이 모든 것을 모두 부조리로 정의했다. 그가 정의한 '자유'에 꼭 이타적 가치가 존재해야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방인>에서 정의한 자유인이 인간의 유한성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모순, 즉 부조리를 깨달은 인간이라면, 처음의 필자는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었다. 필자는 그의 마지막이 환희에 차보이기는 커녕 비극적으로 보였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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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책을 덮었을 때는 생각이 달랐다. 카뮈는 결코 뫼르소를 윤리적인 인간으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작가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윤리적인 기준을 뒤로 미뤘다. 뫼르소는 윤리적이지 않지만 각성한 주체다. 뫼르소가 죽음 앞에서 찾아낸 것은 부조리란 인간이 필연적으로 낳을 수 밖에 없는 모순이었다. 사실 처음 글을 읽었을 때도 2부에서 필자는 작가가 의도한 부조리의 일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사람을 죽였는데도 그들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큰 처벌은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변호사, 뫼르소를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몰아가는 사람들과 언론,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의 굳은 인식들, 그 시대에서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필자에게는 폭력적으로 다가왔다. 필자는 그것을 사회의 부조리로 해석하고 뫼르소는 그것에 희생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따지고 들어가면 '그 시대의 최선의 판단'에는 시대의 오류가 포함될 수 밖에 없다.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윤리와 지식으로 구성된 사고방식은 오류와 모순을 낳을 수 밖에 없다. 사실 역사 속에서 행해진 ‘합리’가 정말로 세상의 ‘합리’와 일치된 적은 많지 않지 않은가? 나치즘의 신봉자가 유태인 가족의 얼굴에서 인간을 발견한 것처럼, 오히려 무질서한 세계의 '불합리'가 진실에 가까웠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모 철학자의 말을 빌려오자면, 때로 광기는 사회 속에서 정의된다. 우리는 동성애가 정신병리로 분류되고, 여성의 오르가슴이 병리적인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대를 지나왔다. 합리와 불합리가 분명치 않은 이 세계에서 모든 모순을 껴안고 있는 자연은 진리에 가깝다. 그래서 자연물에는‘쓸모없는 것’이 없다.

 뫼르소는 마지막 순간에 그것을 깨달았다. 그가 최후에 느낀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이란, 그저 존재하는 자연처럼 인간의 부조리를 자각하는 일이다. 이미 필자는 그가 말하는 부조리를 첫 번째 독해에서 그대로 입증한 셈이다. 필자는 당시 실존주의라는 개념을 놓고 거기에 개인적인 윤리와 가치, 그리고 기대를 부여했다. 그것 자체가 모순과 오류를 포함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그것이 상식이고 정답이라고 믿었다. 뫼르소는 도덕적일 필요도, 교훈적일 필요도 없었다. 그는 그냥 세상에서 세계를 자각한 인물이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뫼르소를 뫼르소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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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뫼르소라는 인물은 흥미롭다.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청년으로서의 필자에게 이상한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삶에 노력하는 인간만이 방황한다는 파우스트의 구절처럼, 뫼르소도 그 나름의 방황과 깨달음의 과정을 거쳤다. 뫼르소의 일대기와 청년기의 특징에서 굳기 교집합을 찾지 않아도, 반항이라는 단어 자체가 왠지 가슴을 떨리게 한다. 뫼르소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와닿았다.

 첫 번째는 그가 반항을 통해 자각한 자유다. 그는 인간이 만들어낸 세상과 세계를 구분했다. 세상에 찌든 사회인의 시각으로 볼 때 뫼르소는 한심한 인간이다. 그는 순간의 쾌락에 휩쓸리고 법정에서 그 자신의 행동을 설득력 없게 진술한다. 그는 ‘어머니를 잃으면 울어야 하는’ 도덕과 ‘어머니를 잃으면 음식을 먹으면 안되는’ 사회 상식에 의문을 던졌다. 그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슬픔을 참아냈을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슬퍼했는지, 슬퍼하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의 모든 행동과 사고를 옭아매려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가 감옥에서 이 모순적인 세계를 자각했을 때, 그의 모든 행동들은 비로소 세상에 대한 반항이 된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정직하게 발언했다. 그리고 살해의 이유가 햇빛이라고 말했다. 뫼르소의 살인은 끔찍한 폭력이지만, 그 행위를 단 한가지로 규정하는 사회는 얼마든지 더 거대한 폭력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만큼 이미 인간의 행동에 하나하나 개념을 규정하는 것에 익숙하다.
 
 두 번째는 그의 달콤한 방황이다. ‘달콤한’과 ‘방황’은 어울리지 않은 조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황은 목적없이 그저 존재할 때 달콤해진다. 그의 방황은 카뮈의 또다른 설명, <시지프스 신화>로 설명할 수 있다. 시지프스는 뾰족한 정상에 커다란 돌덩이를 굴리는 형벌을 받은 인간이다. 그는 신에게 대항한 죄, 겸손하지 못한 죄로 영원한 형벌에 시달렸다. 카뮈는 뫼르소를 통해 시지프스의 형벌이 행복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형벌은 부조리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시지프스는 한순간도 불행에 절망하지 않았다. 한 줌의 빛도 없어보이는 세계에서 그는 결코 자살하거나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저 끝없이 정상을 향해 바위를 굴렸다. 그는 바위를 굴리면서 끝없이 자신이 정상에 바위를 올리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시지프스는 진정으로 꿈이 있는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과정은 과정 그 자체로 가치롭다. 그가 굴리는 바위는 물질세계의 바위와 차이점을 가진다. 바위를 구성하는 광물 하나하나가 부드러움과 음악성을 가진다. 뫼르소의 깨달음을 이해했다면 우리는 이제 행복한 시지프스를 상상해야한다. 뫼르소와 시지프스는 같은 과정을 밟았다. 인위적으로 구성된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찼지만 뫼르소는 오히려 그런 부조리로인해 자신의 자유를 깨달았다. 세계와 합치되는 뫼르소와 그것을 비난하는 우리, 과연 제목의 이방인은 정말 뫼르소일까? 우리는 학습된 규준에 의해 뫼르소가 이상한 인간이라고 판단하지만, 사실 그렇게 판단하는 우리가 세계에 대한 이방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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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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