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꿋꿋한 사랑 이야기, 소네트

글 입력 2018.02.1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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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꿋꿋한 사랑 이야기, 소네트


 최근에 필자는 요리를 즐긴다. 최근에는 된장국을 즐겨 하는데, 요리할 때마다 정말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두부를 자르고, 감자를 또박또박 자르고, 먹을 사람들을 생각해서 된장을 물에 푼다. 손톱도 잘 들어가지 않았던 딱딱한 재료들이 보글보글 소리를 내면서 떠오르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재료들 사이에 연결이 생기고, 검은 뚝배기 안에 담긴 순간에는 모든 게 완벽하다. 내가 정성을 다한 만큼 사람들은 맛있게 먹어주고, 재료들은 이제 한가지의 작품이 되었으니 싫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그 어떤 요리도 그 다음날, 그 다음다음 날까지 다 먹지 못하고 시간이 지날 때 가끔 불을 끓여서 잘 저어주지 않으면 음식물 쓰레기가 된다. 아무리 온 마음을 다해 만들어도 잘 닦아서 그릇을 정리해두지 않으면 더는 보기 싫은 모양이 되어버린다. 요리를 하고 치울 때마다, 사랑이 이 과정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음식을 만들고, 먹고, 치우고, 다시 정리하고, 다시 음식을 준비하고. 이 행위는 때로는 지치지만 매일 매일같이 하는, 아니 해야하는 과정이다.

 필자가 말하는 사랑이 꼭 연인 간의 사랑일 필요는 없다. 그 감정은 대상이 존재한다면 얼마든지 사랑스러운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사람들은 혼자 살 수 없어서, 항상 요리 뚝배기를 채울 무언가를 준비한다. 준비하는 과정은 많은 정성과 기대를 하게 한다. 뭔가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모두 노력한다. 사랑을 하기위한 준비는 감자를 깎고 양파를 다지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말했던 것처럼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언젠가는 모두 쇠퇴하는 것처럼' 사랑도 언젠가 쇠퇴한다. 그때 그릇을 잘 정리하지 않으면, 사랑은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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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소개할 <소네트>는 그 과정을 충실히 담은 작품이다. 극은 미숙과 그녀의 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한 요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봄에 미숙은 처음 누군가를 좋아하고, 여름에는 두렵지만 뜨거운 사랑을 하고, 가을에는 이별과 후회를 느끼고, 겨울에는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황폐해 보이는 땅에서도 다시 사랑이 시작된다. 봄과 여름은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완성하는 과정이지만, 가을과 겨울은 그때 정리하지 못했던 마음이 남아 상처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는 사랑의 사색이 담겨 있긴 하지만, 봄, 여름, 가을,겨울의 경계도 없고, 극처럼 요정과 소년 소녀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소네트>는 소네트의 내용을 음악으로 잘 녹여내되, 결코 재현에만 머무른 작품이 아니다. 극을 관람하기 전에는 소네트를 연극으로 가져온다는 것 자체가 필자에게는 부담스러운 실험으로 다가왔는데, 그런 걱정할 필요 없이 부드러운 전개가 돋보였다. 소네트를 노래로 만들어 중간마다 자연스럽게 녹여낸 부분이 좋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통일성 있게 전개한 것은 좋았지만, 다소 '소네트'를 묶었다기보다는, '사랑시'를 긁어모아 묶은 느낌이 들었다. 소네트의 가사가 아름다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지만, 극장을 나왔을 때 '소네트의 재현' 이라는 감상보다는 '사랑의 과정'을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엮었다는 감상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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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에는 다양한 주제가 들어있다. <소네트>는 사랑의 시작과 이별, 동성애, 종교, 페미니즘까지 사랑이라는 주제 아래에서 다양한 갈등과 조화로 촘촘하게 엮어낸다. 내용이 비약적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다는 느낌이 있다. 한 연극에서 미숙이라는 인물의 인생과 사랑을 다루다 보니, 부산스러운 느낌이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극장의 관객들은 뜨거운 감상을 느낀다. 사랑을 마주하는 젊은이의 불안과 이별의 공포에 몸을 떠는 미숙은 단순히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 로 치부하기에는 깊고 쓰다. 극은 가면 갈수록 어둡게 전개되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진정한 사랑'을 정의하지 않고 꿋꿋하게 사랑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계절을 표현한 계단과 장소를 오가는 인물들도 시간을 잊고 인물의 사랑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사랑에 빠진 젊은 두 남녀가 춤을 추는 장면이나, 어린 미숙과 성숙한 미숙이 교차하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라던가, 요정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연출은 정말 '극장'이라는 공간을 '가상의 어딘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필자에게 <소네트>는, 조금 북적북적하지만, 그 와중에도 가장 소중한 이야기를 잃지 않은 연극으로 기대될 것 같다. 주인공 미숙이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면서 아들을 받아들인 것처럼, 우리도 연극이 끝까지 가슴 속에 숨겨뒀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름다운 것들이 잠깐 빛을 발하면 어떤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번이 말했듯이, 인간이 숨 쉬고 무언가를 볼 수 있는 한 그대는 이 시 속(혹은 기억과 감정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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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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