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잃어버린 낭만을 찾아서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2.1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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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있다. 추웠던 날씨만큼 활동 반경이 줄어들어서, 마음도 딱 그만큼 움츠러들던 겨울이었다. 춥다는 핑계로 그 좋아하던 전시회도 잘 가지 않으며 그저 가깝고 따뜻한 영화관, 만화방만 맴맴 돌며 휴일을 보냈다. 풍성하지 못한 한 해의 마무리와 한 해의 시작이었다.

"바쁘다. 귀찮다. 힘들다."
<어린 왕자>에서 '어른'들이 하는 갖은 전형적인 핑계를 대며 감흥 없이 하루하루를 살았더니, 갈아야지-하고 반년째 미루고 있는 우리 집 헹켈 부엌칼 꼴이 나버렸다. 세상 무딘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감정의 폭이 훅 좁아져서 기쁨도 슬픔도 그러려니 하는 무기력의 상태. 제일 경계하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곧장 감성 경계 1호를 발령했다.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으로 변해가는 꼴을 가만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감수성과 사색의 박자를 유지할 내적 프로젝트, 일명 '잃어버린 낭만을 찾아서!' 2월 초부터 시작한 잃.낭.서.를 실행한지도 딱 보름이 되었다. 혹시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있을 사람들을 위해 그간 내가 했던 노력(?)들을 나열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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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즈 카페로 가요


집에서 스피커로 듣는 음악과, 연주자들의 생생한 라이브를 듣는 건 차원이 다른 기쁨을 준다. 겨울엔 야외에서 열리는 각종 음악 페스티벌도 힘들고, 값이 비싼 콘서트 티켓은 자주 결제하기 부담스럽다. 그렇게 찾은 대안이 바로 라이브 카페다. 꼭 재즈라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본인이 선호하는 장르의 라이브 카페나 라이브클럽이라면 뭐든 좋다.

분위기 좋은 조명 아래에서 보컬과 연주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감성이 언제 메말랐냐는 듯 흥이 샘솟았다. 대책 없이 행복해지고, 무턱대고 신이 났다. 평소 '흥부자'와는 거리가 먼 편이지만 현장감 가득한 연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오랜만이어서 더 절실하게 깨달았다. 이런 게 필요했다는 걸. 결핍의 자각, 그리고 충족. 이렇게 첫 번째 시도는 성공적으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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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종이책을 사요


몇 년 전, 자취방에 더 이상 책 꽂을 공간이 부족해졌을 때 첫 위기를 느꼈다. 그 후 대학교를 졸업하며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게 되자 그땐 위기를 넘어선 위협을 느꼈다. 집 근처에는 손쉽게 책을 빌릴 만한 가까운 도서관이 없었다. 독서를 하기 위해선 매번 책을 사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다시 말하지만 자취방의 책장은 이미 만석이었다. 얼떨결에 이북리더기를 장만했다. 

이북리더기의 장점을 나열하자면 글 하나를 새로 파야할 정도로 줄줄 읊을 수 있다.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과정이 생략되어 독서량도 더 늘었다. 하지만 책의 냄새, 촉감 같은 실존하는 질감을 모두 잃고 오로지 그 안의 텍스트만 얻는 이북이 간혹 아쉬울 때가 있었다. 잃.낭.서를 위해 감성이 메마르게 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레이더망에 바로 이 점도 걸렸다. 최근 읽었던 책 중 좋았던 작품을 종이책으로 재구매하여 소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북리더기가 책의 감흥을 덜고 있을 줄 알았던 우려는 우려에 그쳤다. 두껍고 매끄러운 표지와 컬러감 때문에 감동이 더 커지진 않았다. 종이를 넘기는 행위도 터치 한 번, 혹은 버튼 한 번이면 끝나는 이북이 훨씬 효율적이어서 독서의 속도만 줄어들었다. 시도는 좋았으나 감수성을 적실 만한 차별화된 점이 없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새 책이 책장에 꽂혀 기분은 좋았다. 예상치 못했던 작은 즐거움만 얻고 끝난 두 번째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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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림을 그려요


어릴 적부터 손으로 사부작사부작 대는 건 내 관심사와 거리가 멀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컬러링북이 대유행하던 시절에도 색칠로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사람들이 신기할 뿐이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연필로만 그리는 정물화 수행평가는 점수를 곧잘 받으면서, 채색화는 극단적인 재앙을 낳는 색칠 귀차니즘에겐 이해하기 힘든 유행이었다.

흥미도, 소질도 없는 그림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러다 데생 동호회가 나오는 웹툰을 본 뒤로 자꾸 없던 욕망이 생겼다. 직업으로 삼을 것도 아니니 소질보단 연습이 중요하지 않나 고민만 하다가 이번 잃.낭.만의 기회로 드디어 용기를 냈다. 소만 그리던 이중섭처럼, 달 풍경만 그렸던 그림쇼처럼 한 가지 소재(하이힐!)에만 몰두하기로 목표도 잡았다. 물론 그들처럼 순수한 열의와 달리 허세 세 스푼쯤 담긴 목표다. 신고 다니기 불편해서 동경만 남아있던 하이힐에 대한 내재된 욕망을 그림으로 표출해보고 싶었다.

누군가 억지로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등한시했던 분야를 순수한 열망으로 하니 얼마나 재밌었는지 모른다. 첫날은 너무 길게만 느껴졌던 30분 알람이 요즘은 점점 짧게 느껴진다. 거의 파격에 가까운 도전 덕분에 월초의 무기력은 눈 녹듯 사라졌다. 이렇게 세 번째 시도도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다. 생각보다 훨씬 보람차게.

*

스스로에게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타인에게도 공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공감의 통로가 바로 감수성이라고 믿는 나는 앞으로도 낭만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오늘도, 열심히.



(이미지 출처: Pixabay)


[윤단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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