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수능 국어지문]서정인_강

흐르는 강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글 입력 2018.02.2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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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입시를 거친 사람이라면 대부분 상당한 양의 문학 작품을 접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무수한 작품들 중 수능이나 모의고자 지문이 아닌 '소설'로 읽은 것이 있는가? 매번 문제를 맞히기 위해 인물의 심정, 주제 등을 힘겹게 짜내지 않았는가? 나 또한 소설의 가치를 깨닫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마다 문학 작품을 읽는 이유는 다르며, 그 가치 또한 다르게 매겨진다. 우리는 여태 2, 3점을 얻기 위해 소설을 읽었다. 이제부터는 우리 모두가 인생에서 조금 더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소설을 읽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다시 읽는 수능 지문' 시리즈의 첫 번째로 서정인의 <강>을 주제로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고등학생 때 이 소설을 해석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왜 이렇게 재미가 없는지, 도대체 주제는 뭐고, 그래서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데?' 그러나 다시 읽어본 <강>은 그때와는 다른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흐르는 강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세 남자가 군하리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탄다. 결혼식이 끝난 뒤 술에 취해 여인숙에서 잠이 든다. 아, 참 시시하다-이것이 서정인의 소설 ‘강’의 전체 줄거리다. 또한 여기에 등장하는 세 인물, ‘김’과 ‘이’와 ‘박’도 한국에서 가장 흔하다는 세 성씨에서 볼 수 있듯 그저 그런 흔한 인물이다. 시시한 이들의 시시한 이야기. 그러나 이 소설은 이 ‘시시함’에서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별 볼 일 없는 이들의 이야기

 앞서 언급했듯 소설은 세 인물이 군하리에 가는 버스를 타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버스에서 만난 ‘여자’까지 군하리를 향한 여정의 일행이 된다. 이 네 인물은 모두 ‘별 볼 일 없는 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김’은 늙은 대학생이다. 상경하여 천재에서 수재로, 수재에서 우등생으로, 보통에서 결국 열등생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던 인물이다. 천재에서 열등생이 되기 위해 노력하다니, 참으로 역설적이다. 하지만 삶은 우리의 노력에 적절한 보상을 해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주린 배를 쥐고 밤늦게 돌아오는 가난한 대학생. 친척집의 대문을 어루만지듯 흔들어야 했고 주임교수의 인정을 받기 위해 누구보다 비굴해져도 보지만 결국 그는 낙오자가 되었다. ‘김’은 서울집에서 만난 ‘반장’에게 어린 시절의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 ‘일등을 했다구? 좋은 일이다. 열심히 공부해라.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중략) 부지런히 공부해라, 부지런히. 자신을 가지고.’ 그러나 그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런 조언 따위는 힘이 없다는 것을. 꼬마에게 하는지 자신에게 하는지 모를 말을 내뱉으며 그는 상실감과 함께 잠에 빠져든다.

 ‘김’과 마찬가지로 ‘세무서 직원 이씨’와 ‘초등학교 선생이었던 박씨’도 세상의 변두리에서 안주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이주사는 오직 여자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자’, ‘여차장’에 이르기까지 여정 내내 어떻게 하면 여자와 한 번 이야기해볼지가 그의 주된 관심사이다. 그 외의 일들에는 별다른 문제의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으며 유부녀를 껴안고 빙빙 도는 것을 자랑할 만큼 뻔뻔하다. 그에 반해 박선생은 내면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 원인은 병역 기피자라는 콤플렉스 때문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입대이야기가 나오면 기분이 언짢고, 색안경을 쓴 사람을 보기만 해도 움츠러든다. 그에게 색안경을 쓴 사람은 형사인데, 형사는 기피자를 단속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당당하지 못하며, 이 때문에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이주사를 질투한다. 김씨, 이씨, 박씨 모두 ‘템즈강에 불을 처지를 수는 없는’자들이다.

 그들이 별 볼 일 없는 인물인 결정적 이유는 현실의 상황을 극복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체념하거나, 다른 이를 부러워하거나, 별 다른 생각이 없다. 또한 이 세 인물은 여정을 함께하고 같은 집에 살고 있음에도 서로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느끼거나 연대하려 하지 않는다. 이들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도 모두 다른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입대 이야기를 할 때 ‘김’은 자신의 우울한 입대 날을 떠올리며, ‘이’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기보다는 자신의 입대 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 또 ‘박’은 병역 기피자이기 때문에 이 주제가 언짢다. 또 색안경을 낀 남자를 함께 보고도 ‘김’은 자신이 봉사가 된 상상을 하고, ‘이’는 사치를 부리려 산 색안경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박은 앞서 언급했듯 색안경을 낀 ‘형사’를 떠올린다. 이들은 함께 있지만 소통하지 않는다.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데 그들 사이의 화학적 변화가 일어날 리도 없다. 그저 같이 오줌이나 누고 술이나 한 잔 하는 사이인 것이다.

 또 한명의 변두리적 인물인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는 시골 술집의 작부로 살아가고 있지만 앞의 세 인물과는 달리 나름대로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지녔다. 하지만 그녀는 타인에게 기대어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어제 결혼한 ‘신부’의 얼굴을 상상하고 그녀를 부러워하다가 대학생 김이 잠든 방으로 간다. 하지만 그 ‘대학생’조차 현실에 순응해 그저 흘러가는 인물인 만큼 그녀를 구원해 줄 수 없다.

 이 네 인물이 중심으로 등장하는 가운데 또 하나 꾸준히 등장하는 것이 있다. 그것을 바로 ‘눈’이다. 작품 초반부터 눈인지 비인지 모를 진눈깨비가 내린다. 진눈깨비야말로 별 볼 일 없는 것 중 하나로 작품 전체적으로 칙칙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러다가 후반부에서는 소복소복 쌓일 만큼 눈이 내린다. 하지만 이 굵어진 눈발도 긍정적 분위기를 가져다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눈이 내린 세상은 참으로 조용하고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가 않다. 작품 속 인물들의 삶에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강'의 의미

 이 소설을 여러 번 읽고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작품 어디에도 ‘강’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 소설의 제목은 강일까?

 우리는 종종 흐르는 물을 우리네 인생에 비유한다. 강의 상류는 격렬하다. 좁고 빠른 물길을 치받으면서 거세게 흘러간다. 바위를 만나기도 하고 물길이 막히면 다른 길로 가기도 한다. 중류, 하류에 다다르며 점점 물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흐른다. 그렇게 물은 큰 흐름에 순응하고 안주하여 흘러간다. 서정인의 소설 ‘강’ 속 인물들의 삶도 강과 같은 노선을 따른다. 특히 대학생 김의 삶이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어떤 장애물에도 굴하지 않고 내달리다가 긴 여정을 거치며 점점 멈추어 설 수밖에 없다. 그러다간 모든 것을 체념해버리고 그저 순응하는 삶을 택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서정인의 <강>을 통해 현실과 타협하고 안주하는 변두리적 인물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작가는 작품 속 인물들이 다시 현실을 극복하려 도전한다던가, 희망을 가진다던가 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그들은 절대 다시 강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치열한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떠내려 왔다. 다만 작가는 이들의 지루한 삶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김새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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