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극 '쉬어매드니스'가 갖는 한계 [공연예술]

글 입력 2018.02.2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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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쉬어매드니스'는 미국 역사상 가장 장기간 공연한 연극으로서 기네스북에 오른 극이다. 우리나라에 번안되어 들어올 때도 극이 막을 내리는 날짜를 정하지 않아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공연을 하고 있다. 작년 인터파크 연극 부문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한 '쉬어매드니스'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건 다른 연극들과의 차별성 덕분이다. 일반적인 연극들이 관객을 시청자의 입장에 놓고 무대 위의 배우들이 극을 이끌어 가게 하는 반면, '쉬어매드니스'는 관객들이 직접 무대 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목격자로서 범인을 검거해 낸다. 관객이 직접 참여하며 연극을 진행해나간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굉장히 독특하고 흥미롭게 다가간다. 그러나 연극에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즉 제 4의 벽을 허무는 행위는 부정적인 영향도 매우 크다. 연극 '쉬어매드니스'는 관객의 참여를 통해 관객과 배우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를 다수 포함한다.

먼저, 연극 '쉬어매드니스'에서 그 날의 범인은 극의 3분의 2 이상이 진행됐을 때 정해진다. 인터미션을 15분 가진 후 형사 역할을 맡은 배우는 관객들이 각자 생각하는 범인이 누구인지 거수로 파악한다. 그리고 가장 많은 관객들이 의심하는 배우가 곧 그 날의 범인이 된다. 그때부터 극은 범인으로 ‘지정’된 배우를 중심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계는 여기서 나타난다. 매번 다른 결말을 가지고 있어 이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며 극을 홍보해 온 만큼 범인은 매일 바뀌어야 한다. 네 명의 캐릭터 모두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네 명의 캐릭터 모두가 살인사건의 범인이 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범인이 될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누가 범인이 되어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반대로 모두가 범인이 맞다는 근거가 있기 때문에 연극의 논리적 개연성이 크게 떨어진다. 차근차근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무한정으로 던져진 밑밥 중 원하는 것만 골라서 회수하는 것이다. 범인이 극의 중간에 정해지는 이러한 방식은 논리적 결함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배우들조차 누가 오늘의 범인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감정 연기와 같이 엄청난 몰입을 요구하는 연기는 원활하게 이루어지기가 힘들다. 배우들이 겪는 고충은 이게 끝이 아니다. 관객들의 참여가 저조하면 극의 진행이 어렵다. 이를 이끌어 가야 하는 것은 무대 위의 배우 여섯 명뿐이다. 대본 자체가 관객과의 소통을 통한 관객의 반응을 염두에 두고 쓰여 있기 때문에 배우들이 애드리브로 상황을 전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연극 '쉬어매드니스'에서 범인은 ‘다수결’로 정해진다. 타당한 추리를 해낸 관객이 있더라도 다른 관객들이 범인으로 다른 캐릭터를 의심한다면 그 추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는 관객이 연극을 보고 난 후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말했듯이 연극 '쉬어매드니스'는 무한정으로 던져진 밑밥 중 원하는 것만 골라서 회수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다른 밑밥에 대한 설명은 없다. 관객들은 살인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서의 놀람과 반전보다는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 때문에 생긴 찝찝함을 안고 집에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관객의 참여는 관객이 극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어 더욱 큰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마냥 그렇지는 않은 것이 관객의 참여의 한계이다. 제 4의 벽이 존재하는 것은 극중 내용이 미미하더라도 허구의 이야기에 실재와 현실감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제 4의 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곧 허구성을 드러내면서 관객의 몰입감을 줄이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관객 참여 연극은 이미 관객의 몰입을 어느 정도 ‘잃은’ 채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연극 '쉬어매드니스'와 같은 관객 참여 연극은 산만함과 논리적 결함을 줄이면서 관객을 더욱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관객이 제대로 몰입하기 위해서는 배우들이 극에 완전히 몰입해야 한다. 제작팀은 극의 산만함이 곧 배우의 집중력 또한 흩트린다는 사실을 염두하여 관객들의 날카로운 추리를 수용하면서 더욱 꼼꼼한 극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조금 더 면밀하고 몰입도 높은 극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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