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회귀 속 무거운 감정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글 입력 2018.02.22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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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제목부터 심오한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제목의 의미를 알고 싶어서다.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존재가 존재하는데, 그 존재의 가벼움을 왜 참을 수 없는지.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원한 회귀성, 그 가벼움은 허무만을 남기는가


 이 책의 저자, 밀란 쿤데라는 첫 장부터 ‘영원한 회귀성’을 말한다. 영원한 회귀성이란 인생은 한 번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 무게도 없음을 뜻한다. 그렇기에 영원한 회귀는 삶 속에 있는 아름다움도 잔혹함도 찬란함도 무의미한 것이며 모든 것은 가벼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와 동시에 인생이 매 순간 반복된다면 그것은 무거움이며 무거움은 우리를 짓누른다고 말한다. 결국 삶은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벼움과 무거움의 양상은 이 책의 네 남녀, 토마시, 테레사, 사바나, 프란츠를 통해 드러난다.

 토마시는 수많은 여성들과 감정 없는 관계만을 추구하는 여성편력을 가졌으며 존재의 무거움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나 테레사를 알게 된 후 사랑에 빠지며 ‘테레사’라는 존재의 무거움을 받아들인다. 테레사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어머니 아래에서 사는 육체적 삶을 살아가다가 토마시를 만나고 자신의 안에 있던 영혼을 볼 수 있게 되며 정신적인 삶을 얻게 된다. 그 희열은 토마시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고 그녀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거움만을 짊어지게 된다. 토마시의 애인이자 화가인 사바나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도, 존재도 계속 배신하며 완벽한 가벼움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명문 대학 교수이자 사바나의 애인인 프란츠는 사바나로부터 배신을 당했음에도 자신의 삶에서 무거운 족쇄들을 벗어던지는 방법을, 즉 가벼움을 추구하는 즐거움을 알게된다. 결국 토마시는 테레사를 알게된 후 무거움을 얻게 되고 테레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거움만을 짊어진다. 사바나는 가벼움만을, 프란츠는 무거움에서 사바나의 영향으로 가벼움을 얻게 된다. 이들은 수많은 우연에서 비롯된 선택을 하게 되고 그러한 선택에서 가벼움 혹은 무거움을 얻게 된다. 또한, 저자는 주인공들을 둘러싼 체코의 역사를 통해서 사람의 가벼움, 더 나아가 역사의 가벼움까지 통찰한다.

 그렇다면 인생이란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무거움과 가벼움이 뒤섞여 반복되는 데, 결국 그것들은 아무런 무게도 가지지 않으며 사라질 가벼움이라는 걸까? 나에게 있어서 가장 무거운 존재는 가족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한없이 행복하다가 어느 순간 숨이 턱하고 막힐 정도로 답답함을 느낀다. 그들의 죽음을 생각하거나 불행을 생각하면 나 역시 괴로워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장 무거운 존재는 영원히 떨치지 못할 것이다. 항상 짊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결코 그들을 가벼운 존재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또한, 지금 내 주위에는 나를 잘 알지 못하고 나 역시 그들을 잘 알지 못하는 수많은 가벼운 존재들이 있다. 그들과 우연한 만남을 가지고 그 만남에서 하는 선택에 따라 그들은 여전히 가벼운 존재가 되거나 무거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무거운 존재로 변모하는 순간, 나는 그들 때문에 다양한 감정을 겪게 되고 더 큰 행복을 가지는 동시에 나를 가볍게 만드는 것을 제한하는 무거움을 얻는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다 아무 무게도 가지지 않는 것이라면? 무거움과 가벼움 속에서 많은 감정들을 소모하는 것일 뿐,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면? 저자는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이며 무용한 밑그림이라 한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을 마치자 허무함이 밀려왔다. 마치 저자는 내 주위의 무거운 존재들을, 나의 존재를, 희망하는 무거운 삶을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



삶 그 자체의 아름다움

 
 그러나 책을 끝까지 읽자 생각이 바뀌었다. 테레자는 끝없이 자신의 영혼을 표면 밖으로 불러내려고 노력하며 그 노력은 자신의 영혼을 불러내는 존재, 토마스를 사랑하는 것까지 이어진다. 토마스는 테레자라는 존재가 자신을 무겁게 만들었음에도 그녀를 놓지 않고 테레자와의 수많은 우연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둘은 사회적 지위와의 갈등과 쾌락을 놓고 시골에서 살다가 사고로 생을 마친다. 사바나는 ‘배신’을 자신의 삶의 이유라 생각하며 그것으로 삶의 희열을 느낀다. 끝없는 배반 후의 남는 공허함으로 외로움과 후회를 느끼기도 하지만 삶의 가벼움, 존재의 가벼움 자체가 자신이라고 생각하여 그러한 삶을 끝까지 추구한다. 프란츠는 무거운 삶을 살다가 사바나를 통해 자유와 새로운 삶을 얻으며 가벼움을 만끽한다. 결국 이러한 삶들이 다 무게가 없는 가벼운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 속에 담겨져 있는 인간의 희노애락은 그러한 결과를 덮는다. 삶의 끝이 보인다 하더라도 현재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긍정한 이들의 삶, 그 자체가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존재들의,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질서와 신념들의 가벼움을 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지금 현재의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하면 이들은 깃털에 불과한 존재들이 되므로. 그것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일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나 자신이다. 지금 현재의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후회하지 않을,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행위, 바로 나 자신을 위한 행위가 나의 삶 그 자체를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김량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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