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작하는 ‘청춘’에게 [문학]

글 입력 2018.02.2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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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매서워서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이번 겨울도 점점 지나가고, 어느새 며칠 뒤면 3월이다.

3월로 말할 것 같으면 역시 입학식, 새 학기의 시작이 떠오른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도 졸업식 플랜카드가 붙었던 곳에 입학을 축하하는 플랜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졸업을 앞둔 처지에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역시 내가 입학하던 때가 떠오른다. 처음으로 받은 학교 다이어리를 설레는 마음으로 펼치자 심보선 시인의 ‘청춘’이라는 시가 적혀있었던 것이 생생하다.


청춘-심보선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북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며 바로 놓았을 때 강 건너 모르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려보며 숱한 결심들을 남발했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즐겨 제발 욕해 달라고 친구에게 빌었을 때 가장 자신 있는 정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완벽한 몸을 빚으려 했을 때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사)


그 때는 집과 학교만 왔다갔다하던 고등학생 신분을 탈피하여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였기에 ‘청춘’이라는 것을 제대로 맛 보지 않았음에도 나는 왜인지 이 시에 공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고이 간직하고자 사진으로 찍어 내 사진첩 한 켠에 저장해두었다.

그리고 며칠 전 생각이 나 다시 한번 시를 들여다보니 4년 전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20살 적에는 내 청춘이 앞으로 이런 느낌이려니 싶은, 막연한 공감이었다면 졸업반이 된 지금은 내가 그랬었지 싶은, 한층 깊이 있는 공감이 가능하게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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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겉으로 보면 별 탈 없이, 큰 굴곡 없이 지나온 4년이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시에서 드러나는 갈등, 혼란, 미숙함 등 온갖 것들이 들어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제서야 각 구절이 어떤 의미인지가 더 잘 보인다.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마지막 부분이다.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이제 막 청춘의 페이지를 여는 ‘새내기’라면 이 시를 보면서 당신에게 닥칠 청춘의 모습을 그려보면 좋겠다. 한편, 당신이 나와 같이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는 순간에 와있다면 시를 통해 당신의 청춘을 되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차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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