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위기를 사랑하게 되는 영화, 패터슨 봤어요? [영화]

글 입력 2018.02.27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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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패터슨>을 봤다는 말에 친구가 어떤 영화냐고 물어왔다. “시 쓰는 버스기사의 일주일을 담은 영화라고 해야 하나?” 어떻다 할 큰 사건도 없이 그저 버스기사의 일주일을 담은 영화를 한 줄로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나는 그저 저런 무책임한 한마디를 내뱉을 뿐이었다. 사실 이 영화는 어떤 화려한 문장들 보다 ‘시 쓰는 버스 운전사’라는 명사가 영화를 가장 잘 설명해주며 그 외의 동사들은 그저 부차적인 요소일 따름이다. 영화 서사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조명 받고 그걸 행하는 인물은 그저 행위자일 뿐인 여느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영화 속 어떤 사건들도 ‘시 쓰는 버스 운전사’ 이 한 단어를 이기지 못 한다. 그 만큼 영화 속 패터슨이라는 인물은 잔잔하지만 강하며 어느 화려한 인물들보다도 매력적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불현듯 나타난 일본인은 강아지 마빈에게 공책이 찢겨 허탈해하는 패터슨에게 다가와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새 공책을 쥐여주고는 유유히 사라진다. 패터슨이 받은 새 공책처럼 영화는 어딘가 텅 비어 보이기도 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서사가 없다. 그러나 이 일본인의 대사처럼 텅 빈 서사가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패터슨>은 구태여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뜻을 알 수 있는 30년 지기 친구의 느낌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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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터슨>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시간이다. 그가 매일 아침 알람도 없이 눈을 뜨고 일터로 가 동료가 오기 전까지 버스에서 시를 쓰는 시간들, 점심시간 홀로 아침에 쓰던 시에 살을 붙이는 시간들, 퇴근 후 아내와 저녁을 먹고 개를 산책시키며 맥주를 마시는 그 시간들은 너무나 일상적이지만 누구도 쉽게 지키기 힘든 소중한 시간들이다. 118분의 러닝타임 동안 패터슨은 일곱 번의 아침을 맞이하지만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영화는 대체적으로 너무나 평화로워서 오히려 이 평화가 언제 깨질까 하는 불안함이 들기도 한다. 나아가 다소 의도적으로 강아지 마빈이 납치되지 않을지, 술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진 않을지 관객으로 하여금 쓸데없는 걱정에 휩싸이게 하고 이내 긴장을 확 풀어버린다. 이런 방식은 허탈하다기보다는 영화 속에서 어떤 사건만 바라는(기대하는) 우리에게 날리는 감독의 유머로 받아들여진다. 영화가 꼭 사건을 다뤄야 하는 건 아니라고, 이 영화의 가장 큰 사건이라 할 만한 것은 개가 공책을 찢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감독은 멀찌감치 서서 우리를 관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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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에 <패터슨>은 스토리가 중요한 영화라기 보다 그 분위기가 중요한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서 짐 자무쉬 감독은 분위기를 잘 사용하는 감독이고,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될 거란 예감이 더 확실해졌다.

 전작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 그가 밤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면 <패터슨>에서는 낮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고 할 수 있겠다.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의미는 그저 그 풍경을 카메라에 잘 담았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영화 속 인물의 감정이 그 분위기 속에 잘 녹아 들어있다는 뜻이다. 두 뱀파이어 아담과 이브가 드라이브하는 밤은 그들에게는 낮인 셈인데, 그에 걸맞게 텅 빈 거리는 무섭거나 황량해 보이지 않고 우리가 낮에 햇볕을 쬐며 산책하는 느낌처럼 어딘가 아늑하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대서 나오는 묘한 분위기는 그곳이 마치 그들만의 에덴동산으로 느껴지게까지 한다.

 <패터슨>의 낮 분위기는 패터슨이 운전하는 버스 안 승객들의 대화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들의 소소하고 시시한 대화들은 낮의 그저 흘러가는 시간 대의 모습을 잘 담고 있다. 항상 반복되고 어딘가 심심한 패터슨의 일상에서 바뀌는 건 승객들의 대화와 버스 창밖 풍경이다. 거창하지 않지만, 또 그렇게 소소하기 때문에 모두가 패터슨의 시적 영감이 되어주고 있다. 이렇게 짐 자무쉬 감독의 두 영화는 다른 색채를 지녔지만 비슷한 질감을 가진, 성격이 다른 형제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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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반복은 지겹다. 마치 우리 동네 마을버스 560번이 그 좁은 구간을 매일매일 빙빙 도는 것처럼 권태롭다. 나는 어릴 때, 버스기사분께서 이 지루한 도돌이표를 참지 못하고 다른 길로 훅 들어서면 어떡해야 하나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어른의 첫 조건은 이런 반복에 익숙해지는 것이라는 걸 슬슬 느낄 때 즈음 이런 걱정은 없어졌다.

 ‘…나의 다리는 계단을 뛰어올라 문밖으로 달리고 나의 상반신은 여기서 시를 쓰네’ 패터슨은 일상으로 더 깊이 들어감으로써(더 나아가 그걸 통해 시를 씀으로써) 이런 권태로움을 삼켜버린다.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조금 더 부드럽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 그것도 요란하지 않은 <패터슨>만의 텅 빈 페이지 같은 조용한 방식으로. 때론 백 마디 응원보다 그저 조용히 바라봐주는 게 가장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이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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