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음식과 죽음, 그 멀고도 가까운 - 연극 '가지' 리뷰

글 입력 2018.02.28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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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히게 만들어서 울 형님이 더 달라고 하시게, 이번에는 떠나지 못하게.”

재미교포2세, 요리사인 아들 레이는 소통의 부재로 멀어진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있다.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레이는 헤어진 여자친구의 도움으로 수십 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한국에 있는 삼촌에게 전화를 건다.

레이와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 간병인, 전 여자친구와 삼촌이 한 집에 모이게 되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버지를 알아가며 그를 위한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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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가지는 음식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라 할 수 있다. 음식과 죽음. 이상한 조합처럼 느껴지지만 둘 다 우리의 삶에서 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 줄리아 조는 음식과 죽음이라는 생소한 주제를 설정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중략) 하지만 막상 펜을 들자 음식이라는 주제가 가족, 기억, 문화처럼 더 심도 있는 것들과 엮여있다는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결국 처음에 가볍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더 깊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 작품을 통해 상실과 애도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음식은 저를 이렇게 심도 있는 주제로 이끌고 내보내는 일종의 실마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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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배우의 조용한 독백으로 막을 연다. ‘가지’에서 독백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인물들은 음식이 주었던 추억을 이야기 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 또 누군가는 가족의 이야기. 무우국, 샌드위치 등 저마다 다른 음식을 이야기 하지만, 모두에게 소중한 기억임에는 똑같다. 또한 음식에 대한 독백은 듣는이로 하여금 군침을 돌게 만든다. 맛을 아는 음식은 더 생생하게, 처음 듣는 음식은 머릿속으로 함께 음식을 그리게 한다.

여자친구 코넬리아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뽕나무 열매, 오디. 다이앤이 다시 먹어보고 싶었던 샌드위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혹은 추억의 음식을 뜻밖의 기회로 다시 먹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우연히 들린 레스토랑에서 가장 좋아했고, 먹고싶었던 음식을 다시 맛볼 때.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그렇게, 우연히, 뜻밖의 선물을 받으며 함께 위로를 받고있는 건 아닐까. 간병인도 코넬리아도 다이앤도 모두 레이로 인해 추억의 음식을 먹게 된다. 참 신기한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 레이에게 추억의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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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삼촌은 낯선 사람이다. 형의 위독함을 듣고 곧장 달려온 그는 생뚱맞게, 입도 뗄 수 없는 아버지에게 스프와 자라탕을 먹여야 한다며, 음식을 먹지 않아서 아픈 것 이라고 이야기 한다. 음식을 싫어하는 형이 처음으로 맛있게 먹었던 그 때. 그때처럼 형이 다시 맛있게 먹을 수 만 있다면 건강은 회복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여기에서도 소통의 거리가 느껴졌다. 서로 언어도 다른 삼촌과 레이.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데, 가진 가치관도 매우 다르다. 아버지, 자신의 형을 위한 마음은 누구보다 똑같을텐데,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거리가 안타깝기만 하다.

언어가 다른 레이와 삼촌. 하지만 서로의 진심을 느끼고, 위로하며 그들은 가족이라는 존재로, 소통하게 된다. 누구보다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한 존재일 지라도, 그만큼 이해하고 또 소통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가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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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사람은 점점 죽음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이제, 이제서야,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회가 영영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들은 아버지에게 왜 서로의 진심을 이야기 하지 못했을까. 내가 그랬던 이유. 그럴만한 이유. 이제서야 다 털어놓으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다가와 버린걸까. 아니, 죽음이 다가오니 이제는 솔직히 말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던 것일까.

“죽음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죽음. 누구에게나 처음은 두렵다. 행여 그것이 작은 것일지라도. 그런데 죽음이라니. 두렵지 않을 사람이 있으랴. 하지만 신기한 점이 하나 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사이가 멀어졌던 여자친구와 다시 끈끈해지고, 수십년간 만나지 않았던 동생을 만나게 되고, 가족이 없다고 생각했던 레이에게 삼촌의 존재를 알게 해주며, 가족이 남아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이 큰 빈자리를 느끼게 하지만, 남은 사람들을 더 외롭지 않게 서로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으로서 마지막 선물 같은 것으로 말이다.

죽음이란 뭘까, 죽음이란 뭘까,,, 계속 생각 해 본다.

“거울을 본다. 나와 닮은 사람과 인사를 한다. 밥 한 술 뜬다…”

죽음에 가까워지면 또다른 나, 혹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보고싶은 사람에게 인사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아버지가 죽기 전 아들을 홀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과 인사를 하고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 모두 죽음이 다가오기 직전 까지 살아있기 때문이다.


너는 언제나 매 순간 죽어가는 거야,
그러니까 왜 살아있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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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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