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화해

세 가지 질문에 답하다
글 입력 2018.03.01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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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덕스럽게 내 앞에 누군가 앉는다. 원래 나와 약속된 것처럼, 내 앞자리가 자기 자리인 것처럼. 도서관은 공부가 안된다는 핑계로 오랜만에 사치를 누리기 위해 온 카페였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내 앞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인가. 내가 찾을 때에는 내 앞에 없었으면서, 정작 내가 찾지 않을 때 이렇게 불쑥 나타나다니. 마치 내 의지 따위는 우리 관계에 있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너는 내 앞 자리에 가볍게 앉았다.
 
‘쉴 휴(休)’자는 사람이 나무에 기댄 형상을 본떠 만들었다. 그거야 만들 때의 일이고, 휴학의 ‘휴’는 분명 한숨 소리일 것이다. 학교를 쉬겠다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올 게 왔다는 듯 내쉬던 엄마의 한숨이 내 뒤를 계속 따라다닌다.
 
“네, 일어났어요. 토익 학원 과제 때문에 도서관 가려고요. 그렇다니까요. 네, 알아요. 아무 생각 없이 쉬면 안 되는 거. 그럼요. 들어가세요. 휴-”
 
엄마와의 통화는 늘 지친다.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지(다른 짓을 하지는 않는지, 이를테면 늦잠 자기, 술 마시기, 영화 보기 등),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성실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이를테면 자격증 시험 성적이 올랐는지, 취업 정보를 모으고 있는지) 확인 할 뿐이다. 통화의 끝에는 늘 ‘휴-’하는 한숨이 따라 붙는다. ‘네가 쉬겠다고 이야기했으니 허락은 해줬지만, 중요한 시간을 그저 흘려 보낼까 걱정이 되는 구나. 듣기 싫어하니까 그런 소리는 안 할게’라는 뜻의 한숨이 끈적하게 내 어깨 위로 엉겨붙는다. 그걸 떨쳐내기 위해 나는 도서관으로, 학원으로, 아르바이트하는 가게로 향한다. 그저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지만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무언가 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너의 SNS를 확인하는 습관은 또 다른 무게로 나를 짓눌렀다. 어느 날 내 앞에서 사라진 너는 SNS에서는 스타가 되었다. 꼭 가볼 거라고 입에 달고 살던 세계 곳곳을 누비는 너의 SNS를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몇 천 개의 하트와 몇 백 개의 댓글 속에 묻어 가듯 안부를 물어볼까. 하루에도 몇 번씩 망설이는 나란 사람이 참으로 초라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너에게 여행 작가는 아무나 하느냐는 말 따위는 하지 말걸. 아무나 글을 쓰고, 아무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요즘인데. 차라리 너도 할 수 있다는 말로 네 마음에 내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넓혀둘 걸. 나도 같이 가자는 빈말로라도 네 마음 한 조각이라도 더 붙잡고 있을 걸.
 
글, 사진, 음악, 그림. 그래,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특별한 이들만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딘가에 있는 어떤 기준을 넘어야 예술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교과서에서 보고 듣던 이름들. 그런 이름들 사이에 낄 수 있어야만 예술을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나는 너의 꿈을 닿지 못하는 밤하늘의 별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나도 쓸 수 있을 법한 글들, 나도 찍을 수 있는 사진들을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너는 계속 돌아다녔고, 썼고, 찍었다. ‘나도 저 정도는…….’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차곡차곡 너만의 예술을 쌓아 갔다. 예술적 가치란 애초에 2차적인 것인지 모르겠다. 어떤 의도로 어떻게 표현하건, 다른 사람들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어야 예술적인 가치를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 사후에 인정 받은 비운의 예술가들도 많지만, 사후에도 인정 받지 못한 작가와 작품은 그보다 적을까?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단을 얻은 요즘 예술가들은 어디에 있나?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어디에 있나 찾기 바쁜 사람들이 ‘순수예술’이라는 낡은 공간에 갇혀 먼지 쌓인 자기 작품을 쓰다듬고 있을 동안 너와 같은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퍼트렸다. 다른 사람들이 느낄 수 있도록 계속 얘기했다. 그런 너의 등을 나는 바라보고만 있었다.
 
“잘 지냈어?”
 
해사하게 웃으며 네가 묻는다.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네가 사라졌던 공백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어제 내 앞에서 그렇게 웃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살은 조금 빠진 것 같지만, 약간 그을린 피부가 오히려 건강해 보인다. 너는 여전히 그렇게 밝고, 건강하게 웃는데, 나는 여전히 굳어 있다.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원망도, 울음도 함께 넘긴다. ‘잘’ 지냈냐고……. 어떤 면에서 ‘잘’ 지냈는지 궁금한걸까. 커피가 써서 그런 것처럼 인상을 쓰다가 겨우 말을 고른다.
 
“응. 너도 좋아 보이네.”
“꿈꾸던 일이었잖아.”
 
‘응’이라는 말 한 마디를 고민하던 나와는 다르게, 너는 여전히 경쾌하고, 확고하다. 하긴, 나는 그래서 너를 좋아했다. 누구보다 자신에게 확고한 너를 좋아했다.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진 너를 동경했다. 여전히 너는 자신에게 확고한데, 지금은 그게 싫다. 나를 버린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네가, 그런 선택을 한 너를 반가워하고 있는 내가, 꿈에 가까워지면서 반짝거리는 너와 삶에 짓눌려 어두운 내가 만난 이 상황도. 나의 과거를 아는 이에게 나의 현재를 드러내는 일은 몹시 껄끄럽다. 내가 공백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변명할 시간은 부족하고, 지금 내 모습만이 나의 시간을 대변할 뿐이다. 꿈으로 반짝이는 너를 고민과 망설임으로 더럽히고 싶다. 그래야 나와 비슷해 질 것 같아서.
 
“좋아하던 걸 직업으로 가졌을 때 현실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던데……. 넌 안 그래?”
“네가 그런 질문을 하다니 의외네.”
“왜?”
“이미 내가 힘들어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줄 알았어.”
 
맞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확신을 달라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네가 그 선택을 후회하길, 꿈에 다가가는 어려움에 좌절하길, 생각지도 못한 벽 앞에서 망설이길.
 
“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을 때 힘들어지는 건 책임감 때문이라고 생각해. 취미일 때에는 그저 즐기는 마음만 있으면 되잖아. 내가 취미를 즐기는 대신 포기할 것들을 선택할 수 있어. 직업이 되면 그럴 수 없지. 내가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내 자존심일수도, 가치관일 수도 있어. 직업이 된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날 괴롭히지. 물론 나도 예전만큼 아무 생각 없이 여행을 즐기거나, 글을 쓰지는 못해. 전보다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나와야 하니까. 하지만 궁극적으로 내 꿈은 ‘내가 다닌 곳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였으니까. 괜찮아. 그걸 위한 고민이니까. 직업을 꿈으로 삼는 게 아니라, 이 과정자체가 꿈이었으니까. 책임감은 그 과정에서 나를 채찍질하는 안내자 같은 거야. 나는 그걸 받아들이면서 점점 가까워지는 거야. 그 꿈에.”
 
너의 그 꿈은 내가 더럽힐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나 보다. 너는 별에 점점 가까워질 것이고, 그 과정의 고민쯤이야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인 것이다.
 
“너는 어때?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
“나 휴학 했어.”
“오, 그거 좋은 일이네. 그리고?”
“그리고 이것저것……..”
“그건 별로 좋지 않은 일인 것 같은데?”
“왜?”
“’이것저것’이라는 말은 그 중에서 가장 신경 쓰는 일이 없을 때 하는 말이니까.”
 
화가 났다. 대뜸 나타나 나의 지금 모습을 일갈하는 태도가. 그리고 그걸 수긍하는 내 자신이 화가 났다. 나는 ‘이것저것’하고 있지만 그 무엇도 마음에 담지 못한다. 내 지금 삶의 어떤 것도 뚜렷하게 집중하지 못한다. 나는 언제나 무언가 하고 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문제집 위의 47번 문제에 그어진 빨간 사선이 날 째려보고 있다.
 
“좀 쉬고 싶어서 휴학했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쉬고 싶으면 쉬면 되잖아.”
“쉬면서도 뭔가 해야지. 마냥 쉬면 안되잖아.”
“왜?”
“응?”
“왜 안 돼?”
“세상 모든 사람이 너처럼 살 수 있는 건 아니야.”
 
눈을 맞췄다. 나는 네가 부러웠지만, 나는 너처럼은 살 수 없다.
 
“복학하면 대학교 4학년이야. 1년은 정말 빨리 흘러갈 거고, 나는 ‘취업준비생’이라는 많은 청년 중에 한 사람이 될 거야. 나는 좋아하는 것들이 있지만 그걸로 돈을 벌 수 있을 만큼 특별한 재능이나 뚜렷한 목표는 없어. 정말 쉬고 싶지만 쉬는 기간에 뭐했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바쁘게 사는 거야. 그리고…….”
 
바빠야 네 생각도 덜 나니까. 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도 점점 나이 들어가시니까 되도록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 싶어.”
 
다른 말로 대신 했는지 너는 알까. 알아도 어쩔 수 없다. 어떤 말을 숨기는 것은 그 자체로 어떤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네가 알게 된다면, 그것도 괜찮다. 너를 원망하는 말을 뱉지 않으면서 내 마음을 알릴 수 있으니까.
 
“너는 내가 널 버렸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 사실 맞아. 그때는 그걸 선택해야하는 시기였어.”
“꿈 대신에 버려야 할 것들?”
“응. 그 때는 나였지만, 지금은 네가 선택해야 할 때야.”
“뭘 버릴 건지?”
“그래. 모든 게 만족스러운 상황은 없어. 결국 어떤 것에 소홀해질 거야. 우린 인간이고, 너 하나의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마.”
 
그래, 모든 걸 만족시킬 수 없던 네가 선택한 버려야 할 것. 버리고 가야할 것이 나였다. 어떤 것도 포기하지 못하고 모든 것에 둘러싸여 짓눌려가는 나와는 다르게 너는 과감히 버렸던 것이다. 그래, 너는 그랬던 것이다. 나보다 대단한 너도 모든 걸 만족시키기 어렵다면, 나는 더 힘들겠지. 나도 버려야 한다. 선택해야 한다. 무엇을 버려야할 지, 어떤 걸 멈춰야 할 지, 어떤 것에 집중해야 할 지 정해야 한다. 그 통로가 뭐가 됐든 무슨 상관일까. 어떤 사람에게는 여행일 수도,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의 작품일 수도, 어떤 사람에게는 우연한 대화일 수도 있다. 버리자.
 
“그래. 안녕.”
 
 



Q. 휴학하고 '이건 꼭 해보세요'라고 추천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Q. 최근에 좋아하는 걸 계속해서 좋아하기 위해 진로와 연관짓지 않고 취미로 남겼다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게 직업이 된다면 정말 예전만큼 그걸 좋아하기 힘들어질까요?
 
Q. 모두가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오늘날 예술가의 경계는 정말 존재하는걸까요?




[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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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꼬마천사
    • 솔직한 고백이 담긴 글이네요 ~  선택은 언제나 책임이 따르는 거죠
      누구와 비교가 때로는 자신을 옥죄는 올가미가 되기도 ...
      하지만 친한 누군가의 당당함과 자신감은 때론 자신을 성장시키는
      선의의 경쟁이 되기도 한답니다 ‘가보지 않은 길’ 언저리에서
      고민과 방황을 하는 것보다 카르페디엠을 외쳐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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