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드라마 속 전통적 여성상과 남성상의 파괴 - 드라마 미스티를 통해 보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3.01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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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금요일과 토요일 밤 시간대를 제대로 책임지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김남주 주연의 '미스티(misty)'이다. 미스트는 우리가 화장품의 종류로도 잘 알고 있는데, 사실 안개를 의미한다. 따라서 미스티는 그의 형용사 형태이고, '안개 낀', 좀 더 의역하자면 알 수 없는 이라는 뜻이다. 제목에 걸맞게 네 남녀와 그 측근들의 권력과 사랑 사이에서 묘한 긴장감과 싸움이 오고 간다. 또한 김남주와 지진희라는 명품 배우들의 연기가 극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단순히 그러한 경쟁 구도만을 가지고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아니다. 본 드라마가 차별적인 이유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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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 드라마는 기존의 한국 드라마 속 '고정적인 성역할'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에서 큰 의미가 있다. 드라마에서는 남성 캐릭터가 야망가나 권력가로 나오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자신의 사업이나 커리어, 성공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그야말로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가족을 등지기도 하고, 여러 사건에 연루되고 이를 해결해 나가면서 큰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 이에 반해 여성 캐릭터는 오직 '사랑'에만 집중한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집안이나 명예, 직업 등을 버리면서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쉽게 생각하면 주말 드라마에 부잣집 딸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신의 권력이나 집안의 힘을 행사하고, 심지어는 집을 뛰쳐나가 그 남자만을 붙잡고 살겠다고 하는 장면이 되겠다.

 나는 전부터 이러한 장면이 참 싫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드라마, 소설 등의 서사에서는 성별만로 캐릭터의 성격을 나누곤 했다. 전형적 인물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정당화할 수는 있겠으나 궁극적으로 올바른 방향은 아님에 분명하다. 남자는 성공, 여자는 사랑이라는 이 지겨운 공식. 왜 남자 캐릭터만이 성공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나올까? 심지어 이러한 이유로 가족을 버리거나 누군가를 배신하는 장면이 합리화하기도 한다. 반면 여성 캐릭터는 바보같을 정도로 남자에 죽고 못 산다. 나의 일, 나의 미래, 나의 커리어를 위한 삶을 택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보다 여러 면에서 부족하고 남들이 말리는 남자를 오직 사랑으로 감싼다(여기서 부족하다는 말의 표현은 계산적으로 남성을 택하지 못했다라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그야말로 사랑에 '미친' 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스티는 다르다. 김남주가 맡은 역할 고혜란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 매우 크다. 아직 잘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일로 인해 자신이 갖게 된 가치관인 정의의 실현을 위해 일하는 중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또 여성으로 방송업계에서 살아남는 것은 쉽지가 않아서, 자신의 명함이자 배경이 되어주는 남자와 결혼했다. 진짜 그를 얼마만큼 사랑하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정도 그의 힘을 이용했고 본인과 남편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선택을 받은 남자는 바로 강태욱(배우 지진희)이다. 무려 3대째 법조계인으로 사는 그는, 권력이나 야망과는 거리가 먼 선비같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하나 집착하는 것이 있다면 아내. 고혜란이 행복한 대로, 또 원하는 대로 살게 하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가끔은 권력을 지나치게 열망하는 고혜란에게 놀라고 실망하는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서 아직까지 함께하고 있다. 세상 무엇보다도 아내를 믿고, 사랑하는 모습을 드라마 속에서 보여준다.

 이렇듯 기존의 성 구분을 반대로 표현한 드라마는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다. 8화에서 고혜란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헛된 것이라 생각하고 배신감에 울부짖는 강태욱의 모습은 너무나도 낯설어서 가엾기까지 했다. 또 카리스마 넘치며, 할 말은 하고 살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고혜란을 보면서는 롤모델을 발견한 것 같아 정말 기쁘다. 혹자는 드라마 한편 보면서 재미있게 즐기면 되지 뭘 그렇게까지 깐깐하게 구냐고 말한다. 그러나 대중매체는 우리의 삶과 생각, 사회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거울이다. 동시에, 그것들을 재생산하고 익숙하게 하기도 한다. 따라서 드라마 미스티는 성별에 구애없는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 여전히 주말 안방 극장에서 결혼을 당연시하고, 고부갈등이나 동서 갈등을 보여주며, 남편과 시댁식구들에게 꼼짝 못하며 존댓말하는 며느리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대단한 발전이다. 미스티는 단순히 남녀상을 뒤집은 것이 아니다. 성별이 아닌 여러 캐릭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앞으로 한국 드라마에 더 다양하고 새로운 입체적 인물들이 등장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송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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