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한 사람, 어떤 에디터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의 이야기 입니다.
글 입력 2018.03.0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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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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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을 떠올릴 때 그 순간을 정의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뀐다고 생각한다. 좋을 거라고 예상한 순간이 막상 만난 순간에는 실망이 가득할 수 있고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는 괜히 추억이라는 안경을 쓰고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어른이 되었던 순간.
지금 그 때를 돌아보면 하얀 정육면체 같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무작정 떨어져버린 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6년을 학교 기숙사에서 나오지 못하고 지내서 그랬을까, 그래서 그 순간은 더 거대한 것이었다. 세상은 내가 상상한 것 그 이상의 이상으로 복잡한 곳이었고 그곳에 떨어진 나는 그 이상의 이상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스무살 청춘이라며 열정에 부을 수 있는 기름통이 여린 손에 쥐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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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기름을 부으던 곳은 캘리그라피였다. 왜냐면 그냥 좋아서 시작해서 마음을 둔 것이 캘리그라피가 처음이었다. 또 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냥 좋았고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이 얕기만한 수면이라 해도 그것을 위해 고민하고 창작하는 게 너무 좋았다. 솔직히 남들과 달리 할 수 있는게 이것 뿐이었다.

좋았다. 참으로 단순한 이유였다.
다시 생각해봐도 어리기만 하던 시작과 과정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정말 감사하고 있다. 그것으로 내가 만날 수 있던 것이 바로 아트인사이트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소설처럼 9기 에디터 모집 마감 일주일 전에 알게 되어 지원서를 호다닥 쓰고 기적처럼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가 되었는데,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던 시작.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전혀 꿈꾸지 못했었다.


*
 

"아트인사이트는 지도를 그리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지도를.
자신의 경험, 어떤 지식의 수준, 실력까지 그 어떠한 기준이 없는 경계 없는 하얀 도화지. 진심으로 자신의 무언가를 그려나갈 준비가 되있다면 올 수 있는 곳. 그곳에서 그리는 것이 그림아닌 지도라 표현한 이유는 머무는 것보다는 나의 길을 그려가는 과정, 이미 정해진 완성을 그리기 보다는 나를 지어가는 과정인 것을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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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좋아서, 그리고 조금은 정리되지 못한 서투름이 가득했던 첫 작품기고로서 연재한 새벽 정거장


자신이 말하고자, 표현하고자 했던 마음을 담아 나만의 시작을 세운다. 그리고 글로, 그림으로, 글씨로, 그 어떠한 모습이든 내 안에 응어리진 무엇인가를 펜을 들고 그린다. 정해진 완성된 지도는 없다. 내가 사색이 닿았던 곳으로, 고민해보고 싶던 곳으로, 공유할 가치가 있는 발견이 있는 곳으로, 어떤 때는 나의 이야기에, 혹은 타자의 이야기에, 원하는대로 그려가나면 된다.

그 과정에서 크거나 작거나에 상관없이 가치가 우러나온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 향을 느낄 수 있도록 열려있다. 아트인사이트는 그런 곳이고 이 비유만큼이나 누구든 편히 다가올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펜을 그어가는 과정에 있다보면 결코 가만히 그리고만 있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더 좋은 글, 좋은 방향, 나은 사색, 의미있는 소재, 지금 그리는 지도 보다 더 의미있는 지도를 꿈꾸게 된다. 그래서 다른 분들이 그려가는 글들을 보기도 하고, 두레를 통해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도 한다. 나만의 지도를 그리고 그 과정을 함께 고민하고 사색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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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정말 막무가내 였다. `좋아서` 라는 나만의 정의만으로 도전하고 달려왔다. 어느날 부터인가 꽤나 긴시간 동안 빈칸이 가득했던 열쇠고리들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만의 색, 가치관, 내가 정말로 할 수 있는 것. 단지 `좋아서` 한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순간에 도달 했을때, 아트인사이트가 에디터가 된 내게 이야기해준 그 가치관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내가 쥔 열쇠고리의 빈칸에
무엇을 마침내 써낼 수 있는지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드디어 열린 보물찾기의 시작이었다.

내가 그려온, 그리고 있는,
그리길 원하는 지도를 살펴보며.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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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과 사색이 충분히 쌓였다고 스스로 결론 내린 지금의 시점에서는 잠시 멈추고 선명하게 그리기 위한 준비를 가지는 것을 선택했다. 마치 내가 찾고 있는 보물의 위치를 모색하는 탐험가가 된 것처럼. 아트인사이트에서 소중히 누렸던 문화초대, 서투르게나마 썼던 글들, 작품기고로서의 글씨들. 이 모든 것들이 처음이었기에 방황한 흔적이 많았음에도 그 때 그린 지도들은 다음 지도들을 위한 중요한 기록들이 되었다.


*


꾸준히 연재할 수 있는 글 그리고 작품의 방향성 모두 내가 창작을 시작한 이래로 끊임없이 질문해왔다. 최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도전장 처럼 내놓고 시작점을 꽂아 열심히 궁리하고 있는 나로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이라기 보다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 보려한다. 확실한 건 깃발을 꽂았음에도 나는 여전히 계속 질문하고 있다는 것.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닌건지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내게 확실한 답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시작뿐인 지금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한 것 같다.



요즘 잠시 휴식기간을 가지며 아트인사이트에서의 새 작품기고를 준비하고 있다. 그 글의 소재는 `00`이다. 00? 이라 질문이 온다면 아직 밝힐 수 없어서 빌려온 표현이라고 답하겠다. (비밀을 좋아하는 내 특이점(?)이 이 글에서 올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사실 정확히는 아직 자신이 없다. 뭔가를 본격적인 마음으로 연재한다는 것이 첫 도전이고 그래서 지금하는 준비가 처음해보는 준비라 내가 정말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 하루에 한번씩 풍선을 불면서 고민하고 있어서 아직 짜잔! 하고 대답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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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방향이 된 소재 00과 나의 관계에 주목하게 된것은 나의 캘리그라피 글씨 때문이었다. 글씨에 있어 나에겐 너무나 큰 콤플렉스였던 것이 어느 순간 나의 중요한 기준이 되버린 것을 알아차렸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정도로. 그걸 알게된 날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00을 사랑하고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수가 있지? 이런 감정변화도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한 채 결과 눈앞에 있어버린 그런.

우연히 돌아 봤음을 통해 00이라고 뚜렷한 이름을 보게 되니 그것을 중심으로 나를 알아가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00, 그것을 찾기 위해 나를 돌아보며 지금 사색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의 00들을 찾아 기록하는 것을 새 작품기고로 남기기로 마음을 잡고.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고민하던 노력이 무색하리만큼 내가 품을 수 있는 소재는 가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고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더 정확히는 그 고민하는 시간들 덕분에 갖추어진 감각으로 스쳐가는 것을 붙잡을 수 있었다. 노력하고 있는 자에게 행운이 오는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 딱 그것이었다. 내가 계속 글씨를 쓰고 있고 소재를 찾아 고민하고 있었기에 사소한 알아차림으로도 발견이 있을 수 있었다고 믿는다.


가치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으로 글을 준비하면서 고민한 것이 있다. 아트인사이트를 통해서 배운 것이기도 하다. 바로 `가치`이다. 내가 연재할 작품기고를 통해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낼 것인가? 라는 질문을 글을 기획하며 던지고 답이 떠오를 때마다 적어두고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좋아서`라는 순간순간 식기 쉬운 열정에 힘을 더할 수 있는 것은 가치라는 답을 내렸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떨어져버리는 순간에 내 마음 이상의 가치를 기억하면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쓸 글의 꾸준함에 대한 이유를 가치로 더하는 것이다. 가치,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기에. 즉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유일성이 굳게 자리잡기 때문에.

이런 내 생각이 정말 답일까?라는 질문이 이 글을 쓰면서 멤돈다. 그건 연재를 시작해봐야 본격적으로 알 수 있을 수도 있지만 한달이 된 지금까지는 처음으로 꾸준히 아주 조금이라도 글을 써보고 있기에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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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글을 통해 예술가에 대해 쓰면서 문득 그리고 싶어진걸 빠르게 그려보았는데, 또 모르겠다. 잠시 여기서 멈추고 시간을 두고 바라봐보기로 했다. 작품을 사랑해보려 내가 하는 노력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기다림의 효과는 꽤나 대단하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 나만의 그림의 색을 찾는 것도 똑같았다.

나의 작품의 방향성. 2년이 넘는 시간 끝에 찾은 것이기도 하다. 작품의 방향성의 경우는 무엇인지 찾기 보다는 내가 그리려는 것이 무엇인지 뚜렷한 모습으로 정의하는데 오래 걸렸다. 그림 만큼은 내가 사랑하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에는 그냥 그리고 싶은 것을 이것저것 그렸었다. 그렇다, 너무 이것저것 그리니까 방향을 도무지 모르겠는 것이다. 소재를 하나로 정의하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린 큰 이유였다.

이 때 열쇠가 된 것은 감정을 글씨에 담아내려던 내 캘리그라피를 쓸 때의 습관이었다. 뭘 그리든 내가 감정이 짙게 담긴 것을 그리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내 감정이 진해진 순간". 소재가 하나의 단어로 스쳐갈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겠다. 과거의 그 기쁨에 보답할 수 있을 만큼 요즘은 차근차근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속도보다는 꾸준히에 집중하며 "내가 사랑하는 순간"이라는 나만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며.

방향을 찾았지만 나는 계속 방향이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창작하는 사람들의 평생의 숙제인것 같다. 내가 창작하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고민. 당장 답이 없는 질문과 고민을 매번 한다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지만 더 좋은 창작을 위한 숙제라면 익숙해져야 할 것만 같다. 지금의 나는 그렇다.


*


"예술가에겐 경계보다는
자신의 창작에 담아낼 수 있는
무게가 남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척박한 협곡을 남은 여생의 공간으로 자리잡고 그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았다는 조지아 오키프, 정부의 권력을 남용한 창작 활동을 향한 심한 반대와 제한을 무릅쓰고 국가가 가진 문제를 향한 비판과 잊혀지는 사회모습을 거침없이 외치는 아이웨이웨이. 이처럼 삶을 바쳐 예술을 이룩해낸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예술가라는 이름이 감히 가벼운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예술작품의 근원인 예술가의 이야기를 알고 바라보는 작품은 놀라움을 넘어 숭고함이라는 평소 쉽게 느낄 수 없는 거대한 감정을 안겨주기도 한다.


경계가 아닌 무게라 하고 싶다. 


모든 예술가들의 작품이 숭고함을 안겨준다고는 확언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작품을 통해 느끼는 감정이 다른 것처럼. 하지만 그 만큼의 무엇인가를 남기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작품이 주는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우리와 가장 가까이 sns등으로 더 자유롭고 뚜렷해진 색을 가진 일러스트레이터와 같은 예술가들은 그 작품을 선택한 이들의 삶에 자리잡기도 하고 그들의 삶에 색을 더해주기도 한다. 다른이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생각해보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닌 것을 알 것이다. 반대로 작품에 한 사람의 짙은 일부가 마침내 담기기도 한다. 어느 방향으로든지

이처럼 우리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작품'이란 창조가 담고 있는 것은 모두 파악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외면 그 이상으로 작품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 있다.

작품의 메세지, 그리고 그것이 주는 영향. 아마 예술가들은 작품이라는 창조를 위해 시간과 노력 그리고 사색을 거쳐 마침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일 것이다. 어떠한 것과의 만남에서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목표로 두고 사색을 거쳐 그 손끝에서 작품이 표출되는 그 순간까지를 이룩해낸 사람들.

모두가 스스로 예술가라는 이름을 쉽게 붙일 수는 없다고 감각하지만, 모두가 예술가라는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에는 경계가 없다. 누구나 예술이라는 경계를 넘나들며 창작을 누릴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지금의 예술세계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와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이 경계없이 함께하는 모습. 그리고 창작하는 이들이 꿈꾸고 이뤄내는 창작의 과정을 공유함으로써 이전 시대 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찾아가고 향유하고 창작하는 이들을 응원한다. 이처럼 창작자와 감상자는 그들만의 '공감'이라는 언어로 예전보다 더 가까이 소통하고 함께하고 있다.

창작하는 사람 이라는 집합 안에 예술가와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조화롭게 있는것이 아닐까 그려본다. 경계 라는 정의는 어쩌면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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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을 가지고
어떤 꿈을 꿀 수 있기에 행복하다.


서투르게나마 창작을 사랑하게 된 나도 예술가를 꿈꾼다. 지금의 내게 예술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엔 아니오 라고 대답한다. 아직은 꿈꾸는 단계이다. 나의 작품들이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가치를 꾸려 나갈 것인가. 지금은 나만의 것을 발견했다고 스스로 말하지만 아직 변화와 발전이 많이 남겨져 있다고 믿고 있기에 사색을 멈출 수 없다. 다른 예술가들이 거친 고민과 사색의 짙은 정도를 알기에 나도 그만한 무게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되기를 기도하며 아직은 꿈꾼다.


지금까지

"현재 우리가 글과 작품을
기고하고 있는 아트인사이트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다른 에디터분들은
연재할 글이나 작품의 방향을
어떻게 찾아나가셨는지 궁금합니다"

"모두가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오늘날 예술가의 경계는 정말 존재하는 걸까요?"


세가지 질문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이번 아트인사이트를 통해서는 다른 에디터분들의 글을 통해 더 많이 배우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참여한 이유가 있다면 나도 한번 사색해보는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예전의 내가 서투름뿐이었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지금 이 글이 서투름 뿐일지도 모르겠다. 대답 보다는 하나의 이야기로서 이 글을 향유하셨으면 하고 끝자락에 바람을 담아본다.

아트인사이트에 있는 한 에디터의 이야기, 그 에디터가 사색해 본 이야기를 마칩니다.


*이번 글에 담긴 삽화들은 모두 제가 직접 그렸습니다(사진들도 저의 사진들이고요!). 처음으로 제 글에 그림을 넣어보기도 했고, 생각보다 글이 길어져서 넣고 싶은 그림들이 많아져서 그림들이 조금 질이 떨어지고 어수선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해서 작은 아쉬움이 남네요. 배치도 서투를 수 있는데 잘 봐주셨음하고 바라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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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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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마천사
    • 꿈을 응원합니다 ‘순수함’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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