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청춘, 그 고민의 중심에서

청춘 이야기
글 입력 2018.03.01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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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 김필, '청춘' - 



고민에 의해, 청춘은 꽤 구슬프다.


고민, 고민, 고민

 누군가 말하기를, 행복한 사람은 무언가를 적지 않는단다. 무언가를 적는 사람은 고민이나 힘든 일이 있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소설가와 시는 모두 고민하는 자들의 것이란다. 무언가를 적는, 필자도 그 중 한명인 것 같다. 무언가에 고민하고 있고, 힘들어 하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고민은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란다. 그만큼, 미래에 관한 인간의 고민은 끝이 없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의 조각상처럼, 우리는 언제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필자가 속해있는 집단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청춘’이라는 집단에게는 특히 '미래에 관한 고민'이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의 글에서는, 청춘을이라는 집단의 한 사람으로서 청춘의 고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겪으며 보니 우리에게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어른들의 멋모르는 고민상담이 아니라,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또 같은 아픔을 견디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와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 꽤 큰 위로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이 글은, 청춘이 청춘에게 바치는 위로와 설명서이다. 아니 뭐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이야기와 생각에 불과하긴 하다.


미래에 관한 고민을 가진 청춘의 이야기

 
 이 글은, 우리 청춘이 지금껏 누군가에게 들어왔던 질문에 관해 대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부분의 미래에 관한 고민의 경우, 모두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 예시로, “대통령이 될 거야”하는 어린아이의 고민은, “어떻게 될건데”라는 질문에서 시작되곤 했다.
 
 

“뭐 해먹고 살건데?” - 진로에 관한 고민
    
 우선 청춘이 미래에 관한 제일 먼저의 고민은 이런 것이다. 진로를, 미래의 직업을, 먹고 살 길을 정해야 한다. 이제 와서 지만, 일단 필자에 관해 소개하자면, 필자는 ‘예술적인 것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누군가이다. 이런 미래에 관한 고민의 글을 쓰고 있는 것이, 꽤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일단 예술을 하겠다고 하면, 우선은 미래가 그리 잘 보이는 상황은 아니곤 하기 때문이다. 청춘의 ‘뭐 해먹고 살건데?’라는 고민의 최전방에 서있는 사람과도 같달까.
 
 그래서, 우선 그 고민을 아직까지도 하고 있는 누군가로서 말을 하자면, 일단 필자는 예술적인 것을 하고 싶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렇다.
 

ㅇㅇㅇㅇㅇ.JPG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어떤 멋진 것은 우연히 떠오르곤 한다. 그 예로, 뉴턴은 만유인력이라는 것을, 비틀즈는 명곡 ‘let it be'를 우연히 떠올렸다. 필자의 경우에는, ’그냥 하고 싶은 걸 하자‘라는 생각이었다. ’예술이라니, 뭘 해먹고 살건데‘라는 질문에 ’그래, 민경아 너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라는 꽤, 마음에 박히고도 멋있어 보이는 말이 떠올라 버린 것이다. 그래서 정해버렸다. ’예술이, 뭐 돈은 안될지 몰라도 하고싶은 걸 해야지 그래‘
 
 하지만, 예술이라는 것이 그렇듯, 예술을 하는 사람의 범위란 넓고도 넓은 것이다. 아마 필자의 어머니가, ‘난 예술을 할거야’라는 필자의 말을 듣는다면 다시, ‘아니 그래서 뭐 해먹고 살건데’라는 질문을 던지실 것이다. 그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필자와 같이 ‘문화예술’에 막연히 진로를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글이 꽤 좋은 지침서가 되기 위해서라도 필자는 이 글에, 부끄럽지만 구체적인 무언가를 적어야 할 것만 같다.
 

예술로 뭐 해먹고 살건데?

예를 들면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라던가,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사람.
아마, 그냥 하고 싶은거?
 
 

언제 철들래? - 어른이 되는 것에 관한 고민
 
 아직 어리다면 어린 나이를 지나고 있는 우리들은, 꽤 주변에서 ‘언제 철들래?’와 같은 타박이 묻은 질문을 많이 받곤 한다. 그 질문을 언제나 받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있게 말하건데, 이러한 질문에는 ‘언제 어른이 될래?’나 ‘언제 어른스러워 질래?’와 같은 ‘어른이 되는 것’에 관한 강요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 청춘도 안다. 우리도 언젠간 어른이 되어야 한다. 또, 우리도 어른이 되고 싶다. 하지만, 이 것이 고민이 되는 것은 대체 ‘어떻게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고 싶은 청춘 중 한 명으로서, 또 어른이지만 어른 아닌 시간을 3년 정도 지나온 사람으로서, 제안해보고 싶은 어른이 되는 방법은 ‘되고 싶지 않은 어른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을 들어도 듣지 않아도 좋다. 그저 하나의 제안일 뿐이니까.
 

유병재.JPG
 

 하지만, 이 제안에 조금 힘을 싣고 싶은 것은 ‘유병재’라는 사람 또한 같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롤모델은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하는 사람을 고르는 거예요”. 물론 유병재라는 사람이 이 말을 한 것이, 이러한 제안을 대단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았으니까. 뭐, 고려해볼만 하지 않나.
 
 예를 들자면, 필자는 ‘의존적인’, ‘남을 무시하는’, 또 ‘자기가 다 맞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기 싫었다. 이 생각을 가지고 평생을 산다면, 아마 필자는 ‘독립적인’, ‘남을 존중하는’, ‘자신이 틀린 것을 인정하는’ 어른이 될 것 같다. 말만 들어도, 꽤 어른스럽지 않은가.
 
 어릴 적, 그리고 평소에 생각했던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의 ‘저렇게’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어른’이 되는 길인지도 모른다. 아마 그 길은 곧, 맞다고 생각하는 길을 걷는 것일테니까. 궁극적으로, 어른이 되는 길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고,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막연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른’이라는 것 자체가 막연한 법이니까.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데? -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것에 관한 고민

 많은 고민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정해야 한다.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떻게 성숙해져서,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나도 나를 모른다. 같이 한 평생을 살아왔지만, 필자는 아직 ‘자신’에 관해 자신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데’와 같은 질문에, 필자는 아주 오래도록 대답을 하지 못해왔다.
 
 하지만 최근에 깨달은 것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무언가 우리가 되고 싶은 것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철학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소크라테스’를 좋아하고,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겨울왕국’의 ‘엘사’를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헷갈리는 사람들은, 꽤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롤모델과는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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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경우에는 ‘장국영’이었다. 요즘, 그리고 아주 예전부터 몰두하고 좋아하던 무언가다. 놀라운 것은, 그가 아주 예술가 스럽고도, 어른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필자는 예술가스러운, 그리고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까지, 청춘을 지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고민의 중심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의 생각을 담았다. 주제 넘지만, 필자는 꽤 이 글에 위로와 조언을 담고 싶었던 것 같다. ‘저도 같은 고민을 갖고 있어요’하는 차원에서, 또 ‘이런 방법으로 생각해보니까 꽤 괜찮더라고요’하는 차원에서.
 
 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주제넘게, ‘아프니까 청춘이다’ 혹은 ‘고민하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말을 건네지 않겠다. 고민하고 있는 청춘에게, 그런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청춘의 한 사람으로서 알고 있으니까. 다만 이 한마디를 전하겠다. 아마도 이 고민이, 의미없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것. 꽤 많은 고민을 겪고 넘어온 사람으로서 그랬다. 이것은 같은 ‘고민’을 겪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한마디이다.
 
 고민 동료로서, 당신이 너무 미래에 관한 고민에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너무 아프다면, 윤홍균 의사의 '자존감 수업'에서는, 너무 아프고 힘들 땐 그냥 ‘사는 게 다 그렇지 뭐’하고 넘기란다. 자존감이든 고민이든 뭔가 아픈 감정이니까, 치료법은 같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그의 치료법의 말을 빌려, 한마디 외침을 적으며 글을 마친다.

 
“청춘이 다 그렇지 뭐!”
 



[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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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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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마천사
    • 청춘이 아니어도 ‘어떤사람이 되고싶은데’에 대한 고민은 저에게도 중요한 화두랍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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