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그 청년은 온통 산발을 하고,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

글 입력 2018.03.02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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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그 청년은 온통 산발을 하고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


 박재삼 시인의 <겨울나무>라는 시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스물 안팎 때는
먼 수풀이 온통 산발을 하고
어지럽게 흔들어
갈피를 못잡는 그리움에 살았다.
숨가쁜 나무여 사랑이여


 손등 앙상한 겨울나무가 되기 전 어린 나무는 번뇌를 주렁주렁 매달아 산발같은 머리를 했다. 시인은 젊은 시절의 나무를 그리고, 그 다음에는 풍파를 견뎌낸 나이든 나무를 그려낸다. 처음 시를 읽었을 때 그 이미지가 너무 생생한 나머지, 시의 전문은 잊어도 젊은 나무의 번뇌는 잊혀지지 않았다. 나는 자주 박재삼 시인의 나무를 떠올린다. 특히 아직 볼빨간 나의 젊은 친구들이 숨가쁘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저 시가 생각난다. 머리카락에 잔뜩 매달린 고뇌와 갈구는 젊음의 상징이다. 그것은 육체가 아니라 머릿 속에서 샘솟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가 이 세계와 치열하게 대립하는 순간을 지난다. 이곳은 탄생은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는 세계고, 그 세계 속에서 인간은 강한 자아를 갖지만 미약한 힘을 갖는다. 젊음은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을 갈구하고, 그럴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사랑과 명예라는 이름이 젊은 우리의 심장을 불타게 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다.

 햄릿은 젊은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그는 아버지의 유령과 선악, 그리고 삶의 의미에 관해서 괴로워한다. 그에게 닥친 현실은 '사느냐, 죽느냐'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지만, 그 어떠한 해답도 확신도 주지 않는다. 그에게 닥쳐온 불행이 너무나도 큰 나머지 그는 어떤 행동도 선택하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햄릿과 같이 아버지를 잃고 죽음을 고뇌하진 않지만, 누구나 그와 같은 압도적인 현실과 그 앞의 나약함과 좌절을 여러번 겪는다. 그것이 햄릿이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이유다.


시놉시스

왕이 죽었다.
거대한 장례의 행렬 뒤에
성대한 결혼식 행렬이 뒤따른다.
햄릿은 한 날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역시 잃었다.

그래도 여전히
모든 것이 왜곡된 질서 아래
빈틈없이 자리를 찾아간다.
사람들은 의심 없이 재단한 듯
그 질서 아래 몸을 맡긴다.
 
그러던 중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에 음모가 있음을 알게 되고
괴로움과 번뇌에 휩싸이게 된다.
‘광증’으로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계획을 세우며 실행하는 햄릿.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무너뜨리고 찢기고
모든 것을 잃어가는 햄릿.

하지만 그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멈추지 않는다.


 오늘 소개할 노마드 극단의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은 고뇌하는 햄릿에 초점을 맞춘다. 햄릿에는 여러가지 이야깃거리가 있지만, 햄릿의 고뇌 자체를 주제로 삼은 것이다. 햄릿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 파멸이 있을 것을 알지만 앞으로 나아간다. 그에게는 부모님도, 연인도, 친구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바스라졌지만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햄릿의 고뇌는 현대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 사람들은 고뇌를 안하느니 뭐하느니 하는 꼰대식의 발언이 아니라, 우리는 고민을 미룰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유튜브에는 6분 내외의 훌륭한 영상 콘텐츠가 있고, 책에 비하면 짧은 영화 조차도 요약하는 영상들이 인기를 끈다. 멍하게 있는 대신 핸드폰을 들어 뭐라도 할 수 있는 세상에서, 고뇌는 비효율적으로까지 보인다.

 하지만 핸드폰 베터리가 꺼지거나 잠자리에 들어 모니터가 꺼진 순간 몰려오는 허무함처럼, 아무리 촘촘하고 섬세한 세상이라도 우리의 공허를 모두 채울 수는 없다. 물론 햄릿처럼 온통 산발인채로 고통스럽게 죽을 필요는 없다. 박재삼 시인의 겨울나무도 마침내 자신의 자리를 찾지 않았던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젊은 나무이건, 겨울나무이건 다시 한번 고뇌하는 햄릿을 만나볼 좋은 기회다.


2018.03.07(수)~03.18(일)
평일8PM / 주말 3PM 소극장 산울림

원작 셰익스피어 <햄릿>
각색 연출 김민경
출연 강해진, 구자환, 정성진, 이정모, 이진경



상세페이지 햄릿.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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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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