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24살, 나에게 쓰는 편지

나의 응어리, 너의 응어리
글 입력 2018.03.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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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매서운 겨울바람에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벌써 3월이 왔네.
추위는 아직 저 밖에서 기승을 부리는 데 말이야.
시간은 가끔,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빨리 가는 것 같아.
조급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

막연한 미래 앞에서 한순간 작아지는 나를 볼 때면,
내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견딜 수 없을 만큼 헷갈려지더라.
그래서 솔직하게 털어놓고 정리해보려고 해.
네가 겪은 일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우리가 이대로 가도 좋은 건지.






PART 1. 앞만 보고 뛰는 시간


벌써 재작년이야. 기억나? 멋모르고 공부만 하던 시절부터 코뿔소처럼 우격다짐하던 게 있었지.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교환학생’이라는 개념을 알게 된 순간, 그건 너의 계획이 되었잖아.

당연하게도 비용이 많이 필요했지. 당연하게도 너는 휴학을 했고.
두 개의 아르바이트에 몸은 정신없이 바쁘고, 결국 정형외과 신세까지 지며 꾸역꾸역 일했어.
다른 것은 하나도 안 보이고 말이야.
시럽을 계속 퍼 대는 탓에,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고, 매뉴얼을 달달 외우며 온몸이 긴장한 상태로 근무를 했지만, 그래도 넌 웃더라.

생각해 보면 말이야. 앞으로 어떤 것에서 이렇게까지 뚜렷하고 간절할 수 있을까 싶어.
학생 신분으로, 학업을 중단하면서까지 얻어낸 경험이잖아.
그렇게 열중했던 마음가짐, 그 느낌! 그걸 기억하자. 그게 네가 가진 열정이고 역량이니까.
.
 
확신을 가진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가치 있는 일이야. 그것이 인생의 큰 목표이든 혹은 작고 일시적인 것이든 말이야.

예를 들어, 네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최대한 많이 보겠다”라는 의지로 똘똘 뭉쳐 뉴욕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야.
하루에 10달러짜리 방을 잡고, 브루클린부터 맨해튼까지 왕복 1시간 30분의 시간을 들이며, 하루에 한 끼, 아니 심지어 음료 하나로 버틴 적도 있잖아.
그렇게 주린 배를 잡고 티켓을 사서 극장 줄을 기다리는 너는 얼마나 설레었니.

그 느낌이야. 다른 걸 다 떨어뜨려도, 최상으로 남기고 싶은 것 하나.
행복과 절실함이 엉켜 있는 너만의 기류. 이게 널 지탱해주는 힘이 될 거야.





PART 2. 좋아하는 것으로 따귀를 맞다


근데 있잖아. 참 이상한 게 뭔지 알아?
앞에서 말한 그 소중한 마음을 안고 직업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말이야. 많은 사람이 지친다더라.
그런데, 한 번 자세히 봐봐.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게 과연 그들이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사람’ 혹은 ‘상황’일까?

너도 느꼈잖아. 이번에 인턴 하면서.
그 작품이 꾸역꾸역 진행되는 것을 보고 넌 경악했지. 어느 날, 작품에 대한 보도자료를 부탁받았고.
정말로 잘 해내고 싶은 기회였는데. 막막해서 눈물이 다 났잖아.
넌 항상 네가 원하는 글을 애정을 담아 써왔는데, 쓰기 싫은 글을 써내야 하기는 처음이었으니까.

근데 그렇다고, 네게 한 조각의 절망을 맛보게 한 그 일 때문에, 작품을 다루는 게 조금이라도 싫어졌니?
아니, 넌 오히려 그러한 일이 최대한 벌어지지 않을 견고한 환경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

널 지치게 만드는 건 어디든 있어. 그걸 그나마 막아주고 있는 것이 그 ‘좋아하는 마음’이야.
이마저도 없이 돈만 벌기 위한 일 앞에서, 너는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그저 돈만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면, 네가 일에 투자하는 시간과 에너지, 동반되는 스트레스가 너무 소모적이지 않을까?
뭐, ‘돈=좋아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행여 발전이나 기대감 없이, 정체된 길로 빠질까 염려돼.

적어도 첫발을 내디딜 때는, 네가 좋아하는 것으로 시작해 줄래?
네 삶에 있어 직업이라는 커다란 바퀴를 돌릴 때, 그 소중한 마음을 동력으로 쓰기를 바라.





PART 3. 심란(心亂)을 옮기는 법


한국의 대학생으로 산다는 게 만만치는 않은 것 같아.
남은 학기와 취업만 놓고도 가슴팍이 허한데, 이런 의무감과는 별개로 널 심란하게 하는 수많은 감정이 있지?
당연한 거야. 우리는 사회 초짜고, 계속 성장하고 있으니까.
쓸데없는 생각으로 해야 하는 일에 영향받아 속상할 너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그 혼란을 정면으로 마주하자는 거야.

감정이란 게, 그 순간순간 피하기는 쉬운데, 결국 제대로 마주하기 전까진 끝없이 맴도는 것 같아.
어떤 외부적 의무감에서도 벗어나 오직 벌거벗은 나와 대화하는 날 것의 시간. 그 시간을 자주 갖자.

어떻게 하냐고? 네가 좋아하는 거 있잖아. 글 쓰는 거.
백날 머릿속으로만 고민하고 정리하려 해 봤자 어려운 거 알잖아.
네 마음에 이리저리 엉기고 복잡한 것들을 눈에 보이는 글자로 옮기는 거야.
네가 ‘왜 이렇게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걸까’하고 의문이 들면, 시간을 내서, 글로 써 봐.
해야 하는 것들 말고, 너 자신에게도 좀 몰입해 봐.





그래도, 지금까지 참 잘했어.
영문도 모르고 떠맡겨진 수많은 상황 안에서, 나름대로 최고의 선택을 하려고 애쓰고,
마땅히 해야 할 것과 욕심내서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방황하고,
냉정과 온정을 번갈아 경험하면서
여기까지 잘 왔어.

넌 앞으로도 고민이 많은 사람이겠지만, 그래도 말해주고 싶어.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고.
네가 살아온 23년은 충분히, 예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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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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