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Ophelia, I'm with you.

글 입력 2018.03.0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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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에서도 썼던 것처럼 죽었던 오필리어를 어떻게 현대식으로 해석했을까 궁금했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말 만족스러움 그 이상이었다. 처음에 들어가니 무대에는 다섯 개의 물이 들어있는 투명 박스에 각각 오필리어의 소품들이 담겨있고, 의자가 놓여있었다. 무대가 단출한가 싶을 수 있지만 연극이 막상 시작하니 배우들의 연기로 무대가 꽉 찬 느낌이 들었다. 또한 중간에  조명과 스크린 뒤의 공간을 이용하여 입체적인 느낌으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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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스크린에 물결이 치고 있고 차가운 조명 속에서 엉키어 죽어있던 오필리어는 다시 살아난다. 배우들이 몸짓으로 표현하는 오필리아가 살아나는 장면은 어찌 보면 그로테스크하지만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렇게 살아난 다섯 오필리어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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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윤이나 배우가 연기한 오필리어는 마치 소녀와 같은 의상으로 인형과 함께 등장한다. 그 인형이 곧 오필리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오필리어는 주위의 목소리에 억압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신의 꿈과 개성, 자유를 잃는다. 한 개인뿐 아니라 '여성'을 마치 이쁘고 늙지 않고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목소리는 없는 '인형'으로 바라보고 소비하는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기 위하여 오필리어는 죽음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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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최영신 배우의 오필리어는 데이트 폭력과 관련된 이야기었다. 네가 이렇게 만들었다는 남자 배우의 대사는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같았지만 새로울 수 있었던 것은 철저히 여성의 시점에서 그려졌기 때문이다. 대사가 현실적이어서 그런지 더 몰입이 되고, 피해자에게 어떻게 데이트 폭력이 느껴지는지가 고스란히 와닿았다. 배우의 화장을 지우는 장면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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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오필리어는 우리 모두의 트라우마와도 같은 세월호 이야기였다. 신진경 배우가 연기를 하였는데 정말 연기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배우는 분명 성인일 텐데 연기를 시작하니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연기뿐 아니라 배우의 노래 또한 절절했다. 소극장이어서 그런지 그 노래의 울림이 가깝게 와닿았다. 학생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대사에 가슴이 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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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배우는 고다윤 배우의 오필리어인데, 문학계의 추악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최근 폭로된 사건들로 때문인지 더 집중하게 된 것 같다. 시를 사랑하는 문학도인 오필리어는 자신의 시적 영감뿐 아니라 영혼까지 빼앗긴다. 그 사건 자체로도 분노가 일지만 그 후 남자친구 등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보는 사람을 더 격분하게 만들었다. 이차 가해자라고 보아도 될 정도이다. 그들의 말이 피해자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느껴지는 동시에 너무 흔하게 듣던 이야기들이어서 여성의 삶, 특히 여성 피해자들의 삶이 서럽게 느껴졌다. 고다윤 배우의 연기가 너무 살벌하고 실감 나서 오필리어의 고통이 더 생생하게 와닿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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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최배영 배우의 오필리어는 연예계 이야기를 다뤘는데 故장자연 사건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오필리어의 당차고 반짝이는 모습, 꿈을 향한 열망을 그저 노리개로 삼는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 역겨운 현실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그들의 폭력적인 구조 속에서 처음에는 반항을 해보지만 거대한 사회의 질서 속에서 점차 알맹이를 잃어가는 오필리어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우면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희생되었고 되고 있을까 서글펐다.  오필리어의 열정으로 반짝이는 눈빛이 점점 공허한 눈빛으로 변하는 것이 다른 오필리어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인상 깊었다.





각 오필리어의 이야기가 끝나면 다른 상복을 입은 오필리어들이 나와서 상복을 입혀주며 노래를 한다. '헤이 난 나니 나니 난 나니'. 멜로디가 구슬퍼서 마치 장송곡 같으면서 동시에 위로가 되는 느낌이다. 죽음에서 깨어나서 다시 죽음으로 돌아가는 다섯 오필리어들. 다섯 개의 이야기지만 결국 현대 여성들의 삶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하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실감 넘치는 대사와 배우들의 열연에 몰입하다 보니 현실이 더 암담하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요새 많은 성 관련 폭로들로 충격 아닌 충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필리어들은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던진다. 마치 햄릿에서 오필리어가 꽃을 나눠주던 것처럼 각 오필리어는 자신들의 꽃(선물)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기억해달라고, 그리고 이제는 목소리를 내어야 할 때이며 목소리를 내어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마음이 먹먹해졌다.

개인적으로 여성이지만 사회적 학습과 환경에 의해서 무의식 적으로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이라는 성을 바라보는 게 익숙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이 연극에서 나오는 장면들이 익숙하지만 새로웠고, 이 연극을 통하여 여성이지만 조금 더 여성을 객체가 아닌 주체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남자(박진원 배우)가 배경으로만 등장하는 극의 구조도 도움이 된 것 같다.

오랜만에 보는 연극이었는데 배우들의 연기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왔다. 여운이 긴 작품이었다. 너무 보길 잘했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곱씹어 보게 되는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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