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이야기] 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여행

일곱 번째 이야기 '마당을 나온 암탉'
글 입력 2018.03.0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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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끝날 무렵이면 무기력함에 빠져 허우적대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춥고 황량한 계절이여서일까, 모든 것들이 몸을 움츠리는 계절이라 그럴까. 겨울에는 하얗게 쌓이는 눈처럼 머릿속도 덩달아 하얘지곤 한다. 그럴 때면 백석 시인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한 구절처럼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은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냉소적인 나는 완전히 동의하기 힘들다. 삶 자체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시작'되지' 않았던가. 태어난 이후 유년 시절은 거대한 세상과 그 속에 있는 나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기에도 벅찼다. 조금 자라 청소년이 되었지만 다들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그 시기를 자기 의지대로 살기란 매우 힘들다. 태어난 지 20여년이 지난 이제 와서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라니 무슨 말인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솔직히 막막한 마음이 앞선다. 특히나 겨울이면 괜히 그 막막함이 더욱 커지는 기분이다. 그런 막막함 속에서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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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은 지금까지 '이야기의 이야기' 시리즈에서 다룬 다른 책들과 달리 재밌어서, 손닿는 곳에 늘 있어서, 괴제를 하기 위해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어렸을 때 뿐만이 아니라 최근까지도 여러 번 읽었던 작품이다. 좋은 이야기가 으레 그렇듯, <마당을 나온 암탉>은 읽을 때마다 조금씩 다른 느낌을 준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꿈에 대한 이야기로도,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히는데, 최근에 해당 작품을 읽은 나의 감상은 한 마디로 이거였다.

"닭조차 이렇게 씩씩하다니!"

척박한 환경에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주인공을 보며 무엇보다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잎싹은 알을 낳기 위해 태어나 평생 양계장에서 알을 낳다가 알을 낳지 못하게 되면 폐기처분되어 삶을 마감하는 산란계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잎싹이 산란계로서의 기능을 다해 버려져 죽을 위기에 처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우연한 기회로 자유의 몸이 된 잎싹은 처음에는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던 마당 안에서 살고 싶어 하지만 마당의 식구들은 잎싹을 천대한다. 결국 그는 낙원처럼 보이던 마당을 나와 지금껏 상상해 본 적 없던 야생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자신의 은인인 청둥오리 '나그네' 부부가 죽자 그들의 알을 대신 품고 그 알에서 태어난 '초록머리'를 키우는 등 잎싹은 여러가지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히며 처음으로 삶의 주체가 된다. 책장을 넘기면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희망을 되찾고 점점 건강해지는 잎싹의 이야기가 정겨운 삽화와 함께 펼쳐진다.


잎싹은 퀭한 족제비 눈을 보면서 물컹하던 어린것들을 떠올렸다. 부드럽게 느껴지던 살덩이. 왠지 그 살덩이가 잎싹이 마지막으로 낳았던 알처럼 느껴졌다. 단단한 껍데기도 없이 나와서 마당에 던져졌던 알, 너무나 가엾어서 가슴이 긁히듯이 아프던 기억, 또다시 온몸이 뻣뻣해지려고 했다.
이제는 더 도망칠 수가 없었다. 그럴 까닭도 없고 기운도 없었다.
"자, 나를 잡아먹어라, 그래서 네 아기들 배를 채워라."

190쪽


개인적으로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으며 예나 지금이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잎싹이 족제비에게 잡아먹히는 결말 부분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 등장하는 여러 동물들의 역할을 굳이 분류하자면 족제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잎싹을 위협하는 '적'이다. 잎싹이 양계장에서 버려진 이야기의 초반부터 그를 위협하는 족제비는 이야기가 느슨해질 때마다 등장해 독자를 긴장하게 만들고 서사에 재미를 불어넣는다. 족제비의 습격을 피해 '초록머리'를 안전하게 성장시키는 것은 잎싹에게 주어진 중요한 임무이다. 계속 쫓기던 잎싹이 마지막 순간만큼은 자신을 쫓던 족제비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는 장성한 초록머리를 떠나보내고 몸이 약해져 스스로 얼마 살지 못할 것을 예상한다. 그런 잎싹이 추위와 배고품에 떨던 족제비 새끼들을 생각하며 스스로의 몸을 내어주는 장면은 마당을 나오면서부터 내내 주체로 살고자 했던 잎싹이 마침내 완전한 주체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다. 처음 양계장에서 버려져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는 잎싹은 모두를 숙연하게 한다. 모든 순간을 지나쳐 마침내 긴 여행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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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마당을 나온 암탉>을 비롯해 여러 동화책에 삽화를 그린 김환영 작가의 강연을 들을 일이 있었다. 그때 <마당을 나온 암탉>가 출간 전에는 아동도서 치고 너무 어둡다는 의견이 많아 우려하는 관계자가 많았고 아무도 지금과 같은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뒷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마당을 나온 암탉>은 출간 후 150만부가 넘게 판매되어 지금은 스테디셀러목록에 올라 있다. 애니메이션,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상업적인 성공이 좋은 작품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의 모습을 볼 때 <마당을 나온 암탉>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이야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보편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어느날 갑자기 양계장 밖 넓은 세상에 내던져졌던 잎싹처럼, 우리 모두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세상에 내던져져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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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닭의 삶에도 이렇게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들어 있느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우리의 삶은 참 험난하다. 그냥 욕심 없이 흘러가는대로 살자고, 우스개 소리를 하지만 흘러가는대로 살기도 힘들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흘러가다가 걸릴 곳이 얼마나 많은가. 물살이 빨라지는 지점에서 물살을 잘 타지 않으면 튕겨져 나갈 수도 있고 물살이 느려지는 지점에서는 가라앉아 버릴 수도 있다. 흘러가는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내가 내 인생의 주체가 되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주체적으로 살겠다고 결심한 뒤에도 삶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마당에서 살고 싶었지만 쫓겨났고, 자신의 알을 품고 싶었지만 청둥오리의 알을 품게 되었던 잎싹처럼 말이다. 삶이라는 긴 여행을 하며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저 우리는 시작됨과 동시에 끝을 향해 부지런히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이 분명하다. 무수한 흔들림과 헤메임 속에서도 주체가 되는 것을 놓지 않아야 하는 까닭으로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야 하기 때문이라 답하기에는 다소 거창하니 여행이 끝날 때 후회할 일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해 두고 싶다. 지금의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 모든 것의 끝에 가서 바라볼 때에는 미소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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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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