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봄에 들어 더 좋은 추억을 담은 선율, '재주소년' [음악]

글 입력 2018.03.0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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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꺼운 외투를 입고 신호등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린다. 가만히 서있는 내 몸으로 따스한 기운이 찾아든다.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봄, 그리고 그 시작을 알리는 3월. 3월은 '시작'과 '처음'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3월이 가져다주는 시작과 처음은 설렘을 동반한다. 누군가는 처음 학교에 가고, 또 누군가는 첫 출근을 한다.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낯섦, 새로움, 시작이라는 단어들은 봄이 주는 따뜻함과 반대로 차가운 기운을 뿜으며 익숙했던 것들을 멀어지게 만든다. 자주 보던 얼굴들과 멀어지고, 추억이 곳곳에 묻어있는 공간을 떠나야 한다. 그 사실에 우리는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울적해지고 수많은 생각에 불안해진다. 새로운 곳에 낯선 사람들과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나에게도 3월은 두근거림과 울적함이 함께였다. 첫 시작에 불안과 걱정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서 오는 불안은 포근하고 익숙했던 시간을 추억하게 만든다. '그때 정말 좋았었지.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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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따스하고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불안한 마음을 잠재울 수 있는 앨범이 있다. 바로 포크 밴드 '재주소년'이 2003년에 발매한 정규 1집 '재주소년(才洲小年)'이다. 이들의 음악이 가진 아련한 기타 선율은 오래된 추억을 불러온다. 거기에 더해지는 박경환의 부드럽고 섬세한 목소리는 우리를 추억 속으로 깊이 빠지게 한다.

 1집 재주소년을 관통하는 중심 이야기는 '추억'이다. 14개의 노래의 각각의 다른 추억을 품고 있다. 어린 시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해 본 기억을 담은 '조깅'과 '눈 오던 날'. 학교에서 후식으로 나온 귤을 보고 지난겨울을 떠올리는 '귤'. 좋아하는 여자아이와 함께였던 숲에서의 기억, '켈라드리안 숲'. '섬'에서는 바다를 바라보며 이제는 바랜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명륜동'에서는 손을 잡고 밤 골목을 누비던 기억을 떠올린다.

 다양하게 담긴 이야기 덕분에 나와 비슷한 추억을 담은 노래를 하나씩 골라 듣는 재미도 있다. 따로 한 곡씩 듣는 것도 좋지만, 앨범에 수록된 곡을 순서대로 들으면 하나의 추억을 넘어서 누군가의 아름다운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그 귤 향기를 오랜만에 다시 맡았더니
작년 이맘때 생각이 나네
찬바람에 실려 떠나갔던 내 기억
일 년이 지나 이제 생각나네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나는 얼마나 고민했었나

귤 中



이제 모두 지워지고 없는 걸
이기적인 나의 진실 나의 진실
잡은 손을 높지 않고 명륜동 골목을 누비던 밤을
그때도 널 알았다면 어땠을까
우리 처음 만나 설레던 그 푸른 봄날에
네가 떠오르던 밤은 흐려졌고
비로소 알았지 잊어버린 여름바다에서

명륜동 中



조그만 아이들 모습을 바라보면서
동네의 거릴 다시 걸어가 봐도
이제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내 가슴속의 이름, 내 가슴속의 이름
그리고 저 높은 하늘에
구름과 함께 나를 찾아오는 건
새롭게 돌아온 계절

사라진 계절 中


 재주소년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리웠던 시절이 두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잠깐이지만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된다. 불안하던 첫 등교, 첫 출근 사이로 아주 작지만 행복한 기운이 퍼진다. 그 행복한 기운이 내일, 또는 모레에 행복한 일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본다. 앨범 속 '사라진 계절'의 마지막 가사처럼 분명 당신에게 찾아올 새로운 누군가와 새로운 일이 언젠가 또 다른 새로움의 불안을 녹여줄 따스한 기억이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엠넷 - 재주소년 1집 앨범 커버


[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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