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대책소] Episode4.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2011)

취향대책소 네 번째 에피소드
글 입력 2018.03.0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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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대책소] Episode4.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2011)


취향대책소
취향 ; 대상을 책임지고 소개함


우리의 주제는 ‘시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를 배경으로 주인공 길의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다.


N 이번 영화는 <미드나잇 인 파리>야. 처음 봤을 때 이 영화는 시간이라는 주제만으로 요약되진 않았어. 좀 더 다양한 이미지나 소리로 기억되었던 거 같아. 그런데 시간에 대한 어떤 영화가 있을까 고민하자 곧 이 영화가 떠오르더라고. 어쩌면 꽤나 시간이란 주제가 분명한, 그리고 시간에 대한 감독의 생각이 분명히 담긴 영화였다고 생각해. 그리고 H는 실제로 파리에 다녀왔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익숙하거나 추억할 만한 곳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

H (끄덕끄덕)
 
N 그래서 H라면 이 영화의 주제, 감독, 배우. 그런 걸 다 제치고 그저 노래를 틀어두듯이 영화를 틀어두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 한 번 쯤 넘겨 볼 만한 장면들을 지나쳐보내는 재미가 있겠지 하고. H는 어땠어?

H 나는 이 영화를 유럽 여행 가기 전에 봤었어. 다녀오고 나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 파리를 갔기 때문에 반대의 상황이었지. ‘어, 이거 영화에서 봤던 곳이다.’ 이렇게. 근데 다녀온 지 2년이 지난 다음 보니까 감회가 새롭더라고.

N 주인공 길의 말처럼 파리는 정말 비가 올 때 가장 아름다워?

H 내가 파리에 있던 기간동안, 비가 오는 날도 있었고 엄청 더운 날도 있었어. 길의 말에 일부 동의하자면, 비가 오는 밤은 정말 아름다워. 하지만 비가 오는 낮은 너무 힘들었던거 같아. 비가 오는 밤에, 센강 위에서 배를 타고 가면서 에펠탑 반짝이는 걸 봤거든. 근데 그 때는 비를 맞고 있어도 상관이 없었어. 길의 말처럼 정말 아름다웠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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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미드나잇 인 파리>는 자기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추억하는 낭만에 젖은, 완전히 감상적인 남자가 주인공으로 나와. 그래서 이 영화는 아마 그 남자의 말에 동의하거나 아님 그의 아내처럼 그걸 비난하거나, 크게 두 가지로 감상될 수 있을 거 같아. H는 어떤 입장이야?

H 난 낭만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낭만 때문에 현실과 트러블이 생기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낭만을 비난하는 사람의 입장에도 동의를 하진 않아. 그래서 사실, 난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전부 이해가 안됐어. 다들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구나- 싶었어.

N 맞아. 극단적인 인물 유형이야. 그리고 특히 길의 낭만성이 단순히 예술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랑, 여성에 관한..

H 성과 사랑에 도취되어 있잖아.

N 맞아 맞아.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단순한 낭만으로 아름답게만 여겨지기엔 조금 언짢은 환상성을 포함하지. 그리고 그 환상은 곧 과거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된다고, 어쩌면 같다고 생각했어.

H 나는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어보기 힘들었던 게, 우리 나라에서는 20년대가 일제강점기잖아. 그래서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낭만과 환상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어.

N 사실 나도 영화를 보면서 내가 살아보고 싶은 시대는 어디 쯤일까 싶었는데, 한국의 모든 시대는 정치적 사회적 격변기였기 때문에 한국의 어떤 시대를 고르는 건 어렵겠다고 생각했어.

H 그리고 아까도 얘기했지만 여성에 관련된 환상이 굉장히 많이 나오잖아. 과거에는 여성 인권이 지금보다 훨씬 억압되어 있었기 때문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 차라리 지금이 낫다는 생각도 들고. (사이) 그래도 만약 살아본다면 조선시대가 어떨까 싶어. 우리나라 과거에서는.

N 왜 조선시대야?

H 이 영화 속에서 계속 당대 유명인들만 나오잖아. 하지만 저 시대에는 저들만 산 게 아니잖아. 역사에는 늘 유명한 사람만 남는단 말이지. 이름을 남기지 못한 사람들도 그 시대를 이루었던 사람들인데. 조선시대 역사도 우리와 가까운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왕조만 남잖아. 난 예전부터 민중사가 궁금했거든.  N은 그럼 한국이 아니라면 가고싶은 시대가 있어?

N 음… (고민한다.) 차라리 한국의 80년대? 민중운동의 격변기, 그러나 그럼에도 청춘의 향수가 매우 짙은 그 사회라면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물론 길처럼 마냥 아름다운 것을 누릴 수는 없겠자만, 난 그건 환상에 가깝다고 봐. 그래서 내가 생각했을 때 이 영화는 마치 환상과 낭만이 있었던 과거를 추억하는 거처럼 보이지만, 사실 결국 그건 현실을 부정하고, 현실을 공허하다고 하는 사람들의 도피처나 다름 없다고 하는 거 같아.

H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도 누군가에겐 황금시대겠지.

N 난 그래서 현재에 대한 불만도 있고, 현재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분명히 이 현재에만 존재하는 낭만을 믿기 때문에, 길처럼 과거에 살았으면 행복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물론 현재의 공허함을 지울 수 없지만…….

H 시대 마다의 공허함은 고유한 거니까.

N 그래서 ‘길은 1920년대를 추억하고, 아드리아나는 1890년대를 추억하고, 또 고갱은 르네상스를 추억하는 게' 바로 이 영화가 현재와 과거, 그리고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생각해. 결국엔 현재라는 것의 성격 자체가 다른 어느 시점을 추억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H 특히 두 주인공의 공통점이 현재와 미래에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잖아. 그래서 더 과거를 찾게 되는거 같아. 아드리아나가 ‘과거의 마력’에 대해 이야기하잖아.

N 맞아. 어쩌면 과거가 마력을 가진 걸 수도 있지만, 현실을 부정하는 게 곧 과거에 대한 찬양이 되는 걸 수도 있어. 다들 그렇게 말하잖아. 그 땐 좋았어. 막 이렇게.. 아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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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튼 현재에 살고 있고, 현재에 살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님 현재란 H에게 무슨 의미야?

H 어렵네. (고민한다) 싸움? 여러가지와의 싸움이지. 불안한 미래와의 싸움일 수도 있고, 다 지나간 후회와의 싸움일 수도 있고. 지속되고 있는 관계와의 싸움일 수도 있고. 사실 과거는 뚜렷하잖아. 말 그대로 환상이지. 현실에서는 반복될 수 없으니까. 현실은 예측할 수 없고. 우리는 대화를 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 어느 트럭이 여기를 박고 들어와 죽을 수도 있잖아. 이같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현실에 산다는 건 그런 ‘싸움' 같아. 그렇다면 N에게 현재란?
  
N 나는 현재에 대해서, 또는 현재를 산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항상 이 글이 떠올라. 그 글은 과정 지향적 불충분성에 대한 글이야. 음,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 하는 이유는 나에게 더 이상의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 그리고 후회했던 것들을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일지 모르는데, 만약 우리가 어떤 가능성이 필요조차 않는 삶을 산다면. 쉽게 말하면 현재에 완전하게 이룬 삶. 순간에 완전히 충족된 삶 말이야. 그럼 그 삶에는 과거에 대한 향수나 미래에 대한 염원이 필요하지 않거든. 그리고 곧 그 삶은 그 순간만큼은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는 삶, 곧 죽음에서 벗어난 삶이라고 했어. 난 그래서 그 글처럼 현재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들의 연속이라고 봐. (너무 어렵게 말한 거 같아서 민망했다.)

H (박수를 친다. 짝짝짝짝.) 정말 어렵지만 맞는 말인 거 같아.

N 암튼 난 그래서 웬만하면 지금이나 현재에 충실하자! 라는 입장, 알지? ‘카르페디엠, 시즈 더 데이’. 그런 말들은 괜히 오그라들지만 그런 삶이 가져다주는 가능성들에 대해 생각해.


*


아래는 N이 떠올린 바로 그 글이다.

보통은 죽음의 순간 개인은 자신이 완성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미래로부터 무자비하게 분리되지만 이제 유토피아의 변형된 시간은 영속적 현재를 만들어내며 그 현재 속에서는 매순간 특수하면서도 전면적인 존재론적 만족이 존재한다. 이런 세계에서는 죽음이 앗아갈 것이 남아있지 않다. 이미 완전히 실현된 삶은 죽음도 손상시키지 못한다. 마침내 존재 속으로 들어와 그 속에서 실현된 존재의 핵은 그 실현으로 말미암아 처음으로 죽음의 영역 바깥에 놓이게 될 것이다. 죽음은 그것을 포함하는 그 과정지향적 불충분성과 함께 하찮아지고 사실상 죽음 자체가 죽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토피아의 심의는 여전히 유한한 존재지만 영생을 알게 될 것이다.

프레드릭 제임스, 막스주의와 형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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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H는 시간과 환상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H 이 영화에 달리가 나오잖아. 길이 큰일났다며 자신은 2000년대 사람인데 두 시간대의 여성을 사랑하게 됐다고 어떡하냐고 하니까, 그들이 ‘맞아. 당연해. 우린 모두 여러 시대에 살아’라고 대답하지. 그런 것들과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판타지적인 것들. 예를들어 <닥터스트레인지>보면 우주와 지구, 미래와 과거를 넘나드는 것을 제안하잖아. 사람에게 있어서 시간에 관한 환상은 필연적인 거 같아.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나 할까. 우리가 흔히 환상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그리워 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 시간이라는 게.

N 나도 비슷한 생각에서 질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미드나잇 인 파리>는 말 그대로 시간에 대한 불충분성 때문에 환상이 생겨난 거 같아. 시간은 어떻게 극복할 수도 없고, 내가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고. 그래서 자꾸 환상을 만들게 되는 거지.

H 그러면 그런 시간과 환상의 관계성과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어떻게 연관이 되는 거야?

N 음, 시간은 결국 불가피하게 환상성을 갖는 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영화는 바로 그 ‘시간의 환상성의 덧없음’을 말하는 영화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나는 그 덧없음을 인정하고 웬만하면 현재의 낭만과, 좋든 싫든 현재에만 누릴 수 있는 어떤 것들을 옹호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 영화가 말하는 그 덧없음에 대해 너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었던 거 같아. <미드나잇 인 파리>가 다른 시간여행 영화랑 다른 점은 과거로 돌아가서 뭔가 행동을 취하고, 미래를 바꾸려 들지 않는다는 거야. 왜냐하면 길은 말 그대로 과거의 향수 속에 살고 싶은 사람이지 현실의 문제를 바꾸고 싶은 사람은 아니거든. 그러니까 현재를 ‘안' 살고 있는 사람이지. 근데 결국 그걸 깨닫잖아. 자기고 가지고 있는 환상의 덧없음과, 원래 현재는 불만스러운 거라는 걸. 그리고 현재로 결국 돌아와서 살아가게 되고, 또 바로 현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뜻밖의 만남을 가지게 되고. 난 결국 현재로 돌아와 살고야 만 길에 대한 이야기로서, 이 영화를 보자고 했어. H도 비슷한 마음을 느꼈지 않을까. 감히 짐작해봐.

H 그럼그럼. 현실 속에서 낭만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


N 이 영화를 선정하고 사실 감독이 마음에 걸렸어. 나로서는 그의 작품을 그저 즐겁게 감상할 수는 없어서. 이 문제는 사실 예술과 창작자의 도덕성의 관련성, 그 관계에 대한 문제로 확장해서 이야기해볼 만한 것인데. 그걸 중점적으로 이번 대담에서 하기는 어려웠어. 그래도 막연히 한마디를 한다면, ‘좋은 감독의 좋은 작품을 볼 수는 없을까’ 하는 슬픔이 있고, 아마 우리 다음 주제 어딘가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깊게 이야기 나눠보며 좋은 작품이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자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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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그대들에게 현재는 어떤 종류의 것일까 궁금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리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고 각자의 낭만과 환상이 어느 때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우리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의 현재 속에 어리숙하게, 또는 사소하게 나타나는 각자의 낭만과 환상을 우리가 알아차리길, 그래서 그들을 과거 삼고 또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그려보길 바란다. 무엇보다 어떠한 시간도, 혹은 어떤 시대와 역사가 우리를 예속하여 무언가를 앗아가는 일은 없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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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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