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디자인을 전시한다는 모순, 그 모순이 주는 의미 [시각예술]

글 입력 2018.03.0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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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예술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예술은 곧 유희이다. 예술은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상과는 구별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가 굳이 특정한 활동들을 묶어서 ‘문화 활동’이라고 칭하는 걸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그런 문화 활동 혹은 예술에 역할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를 속박하는 일상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도록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어야 한다. 공연이나 전시를 관람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낯설어질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예술이 있기에 우리는 자유를 본질로 하는 인간일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술은 비-일상이고 탈-습관이다.

이런 예술관을 가진 나에게 “PLASTIC FANTASTIC : 빛ㆍ컬러ㆍ판타지”展(3월4일 종료)은 제목만 봤을 때 별로 가고 싶지 않을뿐더러 이상하기까지 한 전시였다. 왜냐하면 내게 플라스틱은 일상과 습관의 상징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주변에 널려있는 게 플라스틱 제품인데, 굳이 전시회까지 가서 그 흔해빠진 물건들을 관람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아마 우연히 생긴 공짜표가 아니었다면 가지 않을 전시였을 것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인지, 전시 막바지인데다가 내부 사진 촬영도 허용되어 소위 ‘인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바글바글 거려 초입부터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인생 샷을 건지려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조용하고 어두운 곳에서 나와 작품만이 존재하는 고독한 관람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받은 이 전시의 첫인상은 플라스틱의 무게처럼 ‘가볍다’, 그 뿐이었다.
 
  
꾸미기_KakaoTalk_20180307_112515728.jpg▲ 전시장 외관



디자인을 전시한다는 모순


전시 중반으로 오면서 나는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곳은 전시일까 가구 박람회일까? 이게 전시라면 나는 이 ‘일상적인’ 플라스틱 의자에서 ‘비-일상적인’ 예술을 느껴야 하지만, 이건 그저 어제도 보고 내일도 볼 플라스틱 의자에 불과했다. 이 물음은 예술영역으로서의 디자인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의문으로 이어졌다. 과연 디자인도 예술일까?

왜냐하면 디자인은 화가의 그림이나 도예가의 도자기에 있지 않고 매일매일 습관처럼 사용하는 펜과 습관처럼 입는 옷들에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일상에 있다. 따라서 디자인을 전시한다는 것은 곧 일상을 예술이라고 전시해 놓는 것과 같았다. 일상과 예술을 철저히 구별하는 내 머릿속 이분법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꾸미기_KakaoTalk_20180306_205827070.jpg▲ 주변에서 흔하게 보이는 플라스틱 의자들
 




그런데 전시 끝자락에, 마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걸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그 생각에 대답하는 것처럼, 전시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을 직접 인터뷰한 영상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디자이너의 말을 들으며 나는 예술과 일상을 구분했던 고정관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꾸미기_KakaoTalk_20180306_205827763.jpg▲ 디자이너 도쿠진 요시오카의 인터뷰 장면
 

“나는 나의 작품들이
마치 공기 혹은 빛처럼
존재하기를 바란다.”

- 도쿠진 요시오카


개인적으로 상당히 충격이었다. 자신의 작품이 습관처럼 소비되는 ‘상품’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는 없을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시오카를 포함한 디자이너들은 사람들에게 매일 사용되는 상품을 만들며, 사람들의 일상이 자신의 작품들로 충만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물건이라 해서,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물건이라고 해서 그것이 작품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 편협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디자인이란 유형·무형의 사물을 인간이 사용가능하게끔 형태화하는 모든 작업을 말한다. 그만큼 디자인은 모든 곳에 있다. 하루 종일 함께 하는 핸드폰, 그날그날 입는 옷, 매일같이 여닫는 수많은 문들, 생활하는 건물들까지 모두 디자인된 것이다. 따라서 디자인은 우선 실용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심미성 역시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이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오래된 속담은 어쩌면 디자인이 생겨난 이유인,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감수성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디자인은 일상과 예술 모두를 고려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디자인이 있기에 우리는 굳이 일상 밖에서, 굳이 전시회나 공연장에 가서 예술을 찾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핸드폰의 곡선과 직선, 방 벽지의 색깔, 도로와 건물의 배치에서도 우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본능적 감수성’을 일깨울 수 있는 것이다.


KakaoTalk_20180306_203131846.jpg
 

“우리의 삶이
가장 자연스럽게 아름답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디자인이 추구하는 바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미술관에 걸려있는 그림들은 일상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자연스럽고, 오히려 그로 인해 우리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기회를 갖는다. 반면 디자인, 디자인된 제품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우리의 관심조차 끌지 못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심미성’이라는 게 스며들도록 해준다. 디자인으로 인해 일상은 예술이 된다. 어쩌면 디자인은 일상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일상 안으로 들어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예술의 본질인 자유를 실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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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  
  • 학형
    • 자주하면 자연스럽게 되고 습관이 되는데 그러면 일상이 예술이 될까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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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withsun
    • 2018.03.09 00: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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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형모든 습관이나 일상이 예술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디자인의 역할은 모든 일상이 '예술이 아니게' 되는 것을 막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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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weetjooli
    • 디자인은 시각적으로 보기 좋은 것에 기능성이 더해진 것이기 때문에 큰 영역으로 보면 예술에 포함되지요!!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에 대한 오해를 풀고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니 저 또한 이런저런 고민을 해보았네요 :)
      저는 개인적으로 일상이 예술이고 예술이 곧 일상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은 어떻다 하나로만 단정짓기 보다 열린 형태로 바라보신다면 더 풍요로운 삶이 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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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랑
    • 2018.04.06 01: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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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weetjooli안녕하세요! 너무 늦게 봤네요ㅜㅜ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열린 눈으로 보는 건 쉽진 않지만 시도해보는 중입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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