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읽는 수능 국어지문 - 은희경_아내의 상자 [문학]

정상의 비정상에 대한 폭력
글 입력 2018.03.0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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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입시를 거친 사람이라면 대부분 상당한 양의 문학 작품을 접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무수한 작품들 중 수능이나 모의고자 지문이 아닌 '소설'로 읽은 것이 있는가? 매번 문제를 맞히기 위해 인물의 심정, 주제 등을 힘겹게 짜내지 않았는가? 나 또한 소설의 가치를 깨닫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마다 문학 작품을 읽는 이유는 다르며, 그 가치 또한 다르게 매겨진다. 우리는 여태 2, 3점을 얻기 위해 소설을 읽었다. 이제부터는 우리 모두가 인생에서 조금 더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소설을 읽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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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_아내의 상자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세상에는 무수한 폭력이 일어난다. 여기서 ‘폭력’이란 비단 신체적·물리적 강제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가장 빈번하며, 당신과 내가 매일같이 행사했을지 모를 폭력. ‘비정상에 대한 정상의 폭력’이다.

아내의 상자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기형적이다. 단순히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이기 때문이라는 핑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남편의 서술을 빌리자면 아내는 시시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평범한 여자이다. 무심하지만 집요하게 아내를 쫒는 시선에서 그녀는 어쩐지 ‘비정상적’으로 비추어진다.

남편과 아내는 신도시로 이사를 왔다. 아내는 산책할 길 하나 없는 삭막한 신도시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지만, 남편은 도시가 마음에 든다. 본인은 어떤 상황에도 잘 적응할 줄 아는 상식적인 인간이라 생각하며,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는 가엾은 아내를 돕고자 한다. 남편은 아내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이는 아내에게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바꾸라는 암묵적인 강요가 된다. 은연중에 아내를 ‘비정상’이라고 규정지은 남편은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남편은 아내가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녀의 말을 시답지 않은 일로 일축하거나 대강 알아들은 척 넘긴다. 둘 사이에는 제대로 된 소통이 일어나지 않으며 잠자리에서 마저 그렇다. 아내는 여러 번의 시도에도 임신을 하지 못하는데, 남편은 이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책으로 ‘불임 클리닉’을 내놓는다. 불임, 그리고 클리닉이라는 말은 아내가 어딘가 잘못되었으며 치료를 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인지시킨다. 남편은 아내의 배란기를 체크하여 집에 들어가며 이에 맞추어 성욕이 오기에 이른다. 인간의 가장 본능적 욕구인 성욕마저도 남편은 ‘이성적으로’ 접근한다.

어느 날 아내는 옆집에서 강아지 두 마리를 보게 된다. 하나는 토실한 강아지고, 하나는 마르고 더러운 강아지이다. 토실한 강아지 앞에는 밥이 떨어지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짖는 더러운 강아지에게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아내는 말한다. '마른 강아지는 곧 죽을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도태된다. 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유도 자연에 의해 거세를 당한 것이다.' 아내는 자신이 비정상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내면화해버렸고 스스로를 ‘열성’으로 여기기에 이르렀다. 아내는 남편의 만족에 맞추어 살림을 꾸린다. 된장찌개를 끓이고 갈치를 굽고 계란말이를 한다. ‘그녀가 평온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닐 때 뿐’이므로.

아내에게 정상을 강요하는 인물은 남편으로 대표적이지만, 아내는 그 이전부터 타고난 그녀의 정체성을 바꾸려는 강요 속에서 고통받아왔다. 삭막한 입시시험장에서도, 어머니가 짜준 목이 조이는 스웨터에서도 그녀는 괴로워했었다. 아내는 지속적으로 정상과 합리의 폭력 속에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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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상자

폭력 대한 대응책으로 아내는 주로 ‘단절’을 시도한다. 그녀가 안락의자에서 공벌레처럼 몸을 웅크리고 지나치리만큼 깊게 잠이 드는 것은 세상으로부터의 공격에서 버텨내기 위한 것처럼 느껴진다. 아내의 상자 또한 외부의 폭력에 대한 대응 중 하나이다. 아내는 자신의 물건들을 모두 상자에 넣고 덮어두는데, 이는 자신의 내면을 지키고 드러내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딱딱하고 네모진 상자를 통해 본인을 보호함과 동시에 감추는 것이다. 아내는 정신병원으로 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네모난 닭장차를 발견한다. 이를 흥미롭게 보던 아내는 닭장 속 닭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보자 지나치게 흥분한다. 상자에 담아서 붙잡아 놓은 것조차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아내를 두렵게 했던 것이 아닐까.

소설의 말미에서 남편은 아내를 병원에 가두어 둠으로써 신체적인 자유마저 박탈하지만 결국 본인의 잘못은 깨닫지 못한다. 그저 비정상에서 벗어난 홀가분함만이 죄책감 대신 남았다. 다수의 폭력은 근거가 존재하기에 더욱 단호하며 무자비하다. 우리도 경계해야한다. 다수를 등에 업고 다른 이를 비정상이라고 칭하며 폭력을 행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김새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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