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이란 무엇인가? 길고 지루한 질문에 대하여 [영화]

글 입력 2018.03.0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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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한때 이 질문에 꽤 심각하게 매달렸던 때가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지만,  이 질문은 당시 '예술'이라는 막연한 실체에 대한 동경, 호기심, 그리고 어떤 풀리지 않는 답답한 마음이 한데 엉긴 질문이었다. 며칠은 도서관에서 '예술'코너 '디자인'코너 두 군데를 왔다 갔다 하며 한 쪽에 책을 쌓아두고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은 알 것 같은 채로, 그러나 완전히 풀리지는 못한 채로 어물쩍 넘어갔었다. 그래서 그 질문은 보이지 않는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다녔고, 알고 싶다는 마음에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예술 기업 교육 업체에서 강사로 일하기도 하고, 더 많은 책을 읽기도 하고, 공부를 하고, 글을 썼다. 그리고 이 영화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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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두 글자가 지닌 무겁고, 가벼운 빈 공간


첫 장면부터 주인공 '지젤'은 택시 기사가 틀어놓은 트로트를 클래식으로 바꾸고, 그 기사에게 ‘예술의 본질’에 대해 왈가왈부한다. 이러한 지젤을 통해 폭로되는 예술의 모습은 아무래도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묘사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지젤이 너무 뜬금없이 맥락에 맞지 않는, 자기 세계에 가득 차 제 할 말만 해버린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 ‘본질’이란 단어가 갖는 빈 공간 때문이기도 하지 않은가? 생각이 들었다. 예술의 본질을 파헤치는 것은 예전에 그토록 매달렸던 "예술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과 같은데, 이 질문에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정답이 없다는 것, 그것이 본질이 지닌 빈 공간이다.

예술이 특히 본질의 문제에 매달리는 이유는 예술 자체의 속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예술의 문제는 늘 진위의 문제와 맥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기를 뒤집어 놓고 예술 작품이라 전시한 뒤샹에서 시작하여 사진의 발명 등으로 원본이 가지는 고고한 작품의 아우라는 드디어 지상으로 내려왔지만, 지금의 현대미술에서도 작품의 진위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다.

정해진 정답이 없기 때문에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 있으며, 결국 그 정답은 주체의 선택에 위임된다. 그래서 어렵지만 또 그래서 어쩌면 쉽기도 하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그 이유를 지젤과 박재범이란 개성 강한 두 캐릭터를 통해서 더욱 깊은 차원으로 발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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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 vs 박재범


두 캐릭터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예술이 지닌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갈망이 있다는 것이다. 첫 부분에서 지젤은 허세에 가까운 자기만의 예술론을 펼치는 데 급급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릴 때 받았던 상장을 어딘가 아련하게 보는 모습이나, 왜 덴마크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냐는 말에 갤러리를 박차고 나오는 모습을 통해 다소 거칠지만 예술에 진지한 고민을 이어 온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회사에서 면접을 볼 때, 자신의 스펙이 많이 모자란다는 것을 실감하면서도 당당히 예술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은 예술가라고 선언하며,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지젤에게서 예술은 '장사꾼과 사기꾼이 판치는' 현실과는 달라야 한다는 메시지가 부각되는 것 같기도 했다.

한 명 더, 자신에 대해 지젤만큼 확신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바로 좋지 않은 시력에도 불구하고 믿는 건 자신의 눈 하나로 갤러리를 운영해 온 박재범이다. 집안이 다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아버지가 아끼던 청자를 '가짜'라고 판명한 감정사가 그렇게 멋있어 보였더라는 그의 말을 통해, 그는 진짜를 판독할 수 있는 눈, 예술작품에 담긴 본질을 구별해내는 전문성에 대한 욕망이 컸다는 걸 알 수 있다.
  
두 캐릭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지젤은 늘 자신이 예술과 마주했던 처음의 이유, 유치원에서 칭찬을 받았던 그때의 경험으로 돌아가는 반면, 박재범은 자신이 예술 작품으로부터 받은 감명을 경제적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 차이점 때문에 지젤은 예술가가, 박재범은 갤러리 관장이 된 것이겠지만, 중요한 건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지젤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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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비슷한 마음으로 사랑했지만


박재범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는 캐릭터다. 그런데 지젤이 잠시 죽다 살아난 해프닝으로 갤러리가 위험에 처하자, 그는 ‘다른 사람의 평가’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젤에게 관철하려 애쓴다. 이 장면에서 그의 모순이 발견된다. 그가 그토록 맹신했던 자신의 눈이지만 그것 하나로는 온전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자신의 그림이 원로 작가에게 순식간에 팔리고, 바로 계약을 원하는 갤러리의 연락에도 기뻐하지 못하는 지젤은 박재범과는 다른 방식으로 예술을 대한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지젤이 기뻐하지 못한 이유는 그림에 대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은 그림은 많이 얘기하지 않아도 그것이 가진 힘은 공유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뻐하지 못하는 지젤을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그만큼 지젤은 작품을 돈을 벌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으로서 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젤에게도 박재범과 다른 의미의 모순은 있었다. 바로 작가로 활동한 이름이 본명 ‘오인숙’이 아닌‘지젤’이란 것이다. 중간중간 지젤의 이름을 비웃는 장면으로도 알 수 있듯, 지젤이란 이름은 확실히 세련된 느낌인데 반해 그녀는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자신이 하는 예술을 진심을 다해 대했는지는 몰라도, 그 예술에 어떤 격을 부여하고 싶었던 마음, 오인숙을 지젤로 포장하고 싶었던 마음은 아마 자기 자신의 본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한계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박재범과는 달리 지젤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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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인가? 아니, 예술이 위치할 곳은 어디인가?


결과적으로 박재범과 지젤의 경우는 예술이 결국 위치할 곳이 어디인가,에 대한 은유로 보이기도 했다. 처음의 지젤은 고고한 예술을 얘기하고 싶어 했지만 결국 그저 그림을 그리고 싶은 자신의 순수한 갈망에 집중한 결과 자신의 그림들을 경찰서, 유치원 등과 같은 공공적인 일상 공간에 위치시킨다. 반면 박재범은 가장 현실적인 방법, 돈을 벌려는 수단으로 그림을 대한 결과 그림은 억대의 가치를 기록하며 갤러리에 걸린다.
 
이런 이분법으로 분석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단순히 영화가 제공하는 틀 안에서 해석하는 것이 아주 무리는 아닐 것이다. 마지막에 웃는 캐릭터는 결국 '지젤'이란 사실을 통해 영화는 어떤 걸 말하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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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맞다뜨렸을 때 턱 하는 것'


덴마크에서 지젤의 그림을 사 온 컬렉터는 처음 그림을 마주했던 순간 받은 감명에 대해 '딱 맞닥뜨렸을 때 턱 하는 것' 이었다고 얘기한다. 이 장면이 공감이 되었던 이유는 이 말 하나가 어쩌면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길고 지루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만의 결론은 예술이 위치하는 곳이 어디이건, 관객이 감동을 느끼면 그것은 예술이 될 수 있다. 그건 예술작품을 마주했을 때 받는 감명은 예술이 지닌 가장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예술은 그 감명 하나로 순수하게 남아있지 못한다. 생계 때문에 그림을 포기하거나, 작가 자신이 그린 그림이 정작 작가에게 소외되어 갤러리 생태계의 방식으로 작품의 가치가 매겨지는 경우 등이 그 예다.

아마 영화가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지젤의 작품명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젤의 작품명, ‘만다라’의 뜻은 ‘변화하는 본질’이다. 예술을 하나의 의미로 정의하려는 것은 모호한 개념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본능이겠지만, 어쩌면 무엇의 본질은 명확한 하나의 의미로 수렴해가는 길, 그러나 그 길에서 끝없이 변화를 거치는 과정 자체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 과정 중에 있다. 이 변화를 순간순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다룰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이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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