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詩로 그리는 나의 봄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3.0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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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무채색이던 거리에 초록색 싹이 돋기 시작했다. 어느새 봄이다.

봄이란 어떤 계절인가? 학교에서 배운대로 답하자면, 생명력이 자라나며 활기가 가득한 계절이다. 하지만 누군가 '나의 봄'에 대해 묻는다면 쉽게 정의하지 못할 것이다.

스물세 번째 봄을 맞이하며, 시 네 편과 함께 '나의 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단어 몇 개로는 정의할 수 없는 나의 봄이 시를 통해 그려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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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시를 써서 무엇해
봄날에 시가 씌어지기나 하나
목련이 마당가에서 우윳빛 육체를 다 펼쳐보이고
개나리가 담 위에서 제 마음을 다 늘어뜨리고
진달래가 언덕마다 썼으나 못 부친 편지처럼 피어있는데
시가 라일락 곁에서 햇빛에 섞이어 눈부신데
종이 위에 시를 써서 무엇해
봄날에 씌어진 게 시이기는 하나 뭐
 
봄날과 시 / 나해철


내가 아주 어렸을 땐 사계절이 봄이었다. 해가 밝은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놀이터를 뛰어다니는 것이 좋았다. 매 순간 호기심이 파릇파릇하게 피어올랐으며 꿈은 매일 바뀌었다. 시작이 두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다. 실패해본 적이 없으니. 그 시절의 봄은, 매일이 봄이었으니 특별한 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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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놀라서 뒷걸음질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中 / 진은영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맞은 봄은 설레기도 했고, 떨리기도 했다. 초등학생 땐 어느 반에 가든 동네에서 자주 보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낯섦음을 느낄 틈이 없었다. 중학교 1학년까지만 해도 그랬다. 낯선 집단에 들어간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몰랐으니 말이다.

중학교 2학년, 새로운 반에 들어갔는데 익숙한 얼굴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자신의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된 아이들은 이미 저들만의 무리를 만들어 놓았다. 갑자기 남은 1년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해 봄, 나는 처음으로 소속감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다행히 처음 보는 아이들과 사소한 대화를 나누거나 간식을 나눠 먹고 노트에 낙서를 끄적이면서 금세 친해질 수 있었지만, 그때의 봄이 있고 난 뒤 나는 봄이 다가오면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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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북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어 바로 놓았을 때 강 건너 모르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려보며 숱한 결심들을 남발했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즐겨 제발 욕해달라고 친구에게 빌었을 때 가장 자신 있는 정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완벽한 몸을 빚으려 했을 때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청춘 / 심보선


고등학교 졸업 후 스무 살이 되자마자 재수학원에 들어갔다. 아스팔트 건물 깊숙한 곳에 박혀 봄이 오는 줄도 모르고 지냈다. 벚꽃이 가득한 캠퍼스에 있을 친구들을 생각하니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꽃 피는 봄에, 나는 건물 속에서 문제집을 붙잡고 죽은듯이 지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암울하고, 치열하고, 긴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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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기 전 봄 산처럼
꽃 핀 봄 산처럼
꽃 지는 봄 산처럼
나도 누군가의 가슴
한번 울렁여보았으면
 
마흔 번째 봄 / 함민복


대학생 시절의 봄, 바로 지금의 봄은 어떤 봄으로 남게 될까? 사실 잘 모르겠다. 지금은 그저 내 꿈에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가 보려고 애를 쓰는 중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꿀 뿐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소중한 순간이었음을 깨닫지 않을까.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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