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코끼리만큼 떨어지지 않았다. [문학]

글 입력 2018.03.1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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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나무에 올라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코끼리를 보는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말한다.
 
해는 “그래, 내가 코끼리라면
나는 넘어지지 않고 잘 견뎠을 거야.”

참새는 “내가 코끼리라면,
나는 우선 나무에 오르고
떨어지는 법을 배울 거야.”

하루살이는 “나는 보기만 할 거야,
춤도 추지 않고,
비틀거리지도 떨어지지도 않을 거야.”

진딧물은 “내가 코끼리라면,
나는 내가 참 창피할거야.”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코끼리야, 내가 너만큼 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코끼리2.jpg
 


다시 나무에 오르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생각해보면 나는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휴학을 했을 때 ‘그래도 돈은 벌어야지’란 생각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니 정확히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나를 어느 순간 ‘발견했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서 여유 있게 공부를 할 줄 알았던 나는, 다시 조교를 하고 있는 나를 어느 날 ‘발견했다.’ 조교를 관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작은 스타트업 기업에 취업해 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곤 했다. 마치 한 순간도 멈추어선 안 된다는 관성이 날 붙잡는 것 같았다.
 
순간 순간 낯선 나의 모습을 내가 '발견했다'고 느낀 이유는 그렇게 바쁜 삶은 내가 의도하지 않은 삶이기 때문이었다. 왜 원하지도 않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게 현명한 일일까? 의문이 들었을 때, 나는 나의 모순된 선택 이면에는 스스로에 대한 검열이 작동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언젠가 여유롭게 보냈던 시간에 대해 누군가에게 설명해야만 할 거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면 그만큼의 성과가 있어야 할 거야.’ 그리고 이런 생각은 알게 모르게 내가 원하는 방식의 시간을 보낼 권리를 빼앗았다.


 
“개미야, 떨어지는 게 나쁜 거야? 떨어져서 산산조각 나는 게 나쁜 거야?”


‘산산조각 나는 게 나쁜 거야’ 끝에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를 달고 있는 이 문장에서 나는 놀랍게도 코끼리에게 ‘산산조각 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은 없음을 알았다.

산산조각 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을 나는 발견했다. 산산조각 나는 일을 두려워하는 마음, 타인이 내 시간을 판단할 것이라는 지레짐작, 나를 나이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이 훨씬 더 나빠, 코끼리야, 라고 속삭이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자꾸 의도하지 않고 원하지도 않았던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이유를.
 
코끼리와 나는 ‘무언가를 쉬지 않고 한다’는 도전의식이 비슷해 보였지만 사실은 종류가 다른 것이었다. 코끼리는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나무를 오르고 있었고, 나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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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그동안 올랐던 나무들을 모두 떠올려보았다. “그 나무들은 공평했을까?”


나는 내가 오를 수 있는 나무, 최소한 ‘공평해 보이는’ 나무만 골라 오르려 노력한 건 아니었을까? 진짜 원하는, 하지만 공평해 보이지 않는 나무는 떨어질 거야, 라고 생각하며 그곳을 쳐다보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건 아니었을까. 최대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혹은 오르는 힘듦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나는 이 문장들을 바꿔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두려운 일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너처럼 나무 위에서 춤을 춰보고 싶고, 쿵 하고 세게 떨어져 보고 싶어."


어느 새 또 나무에서 떨어져 신음 하는 코끼리에게 다람쥐는 자신이 쓴 편지를 차마 전하지 못하고 찢어버린다. 나무에 오른다는 일은, 그러니까 이상에 도전한다는 일의 외피는 낭만적이다.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처럼 환상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낭만은 산산조각 날 수 있는 거대한 아픔을 담보한 결과이기도 하다. 다람쥐는 이 사실을 차마 코끼리에게 강요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코끼리는 코끼리가 할 수 있는 생각을 할 뿐이다. 그래서 매일 똑같이 떨어진다는 비극에도 불구하고 코끼리는 코끼리만의 생각으로, 코끼리 자신만의 이유로 나무에 오른다. 이것이 코끼리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굳이 다람쥐가 편지를 건네지 않았어도, 코끼리는 변함없이 매일 나무에 올랐을 것이다.

나는 지금껏 타인이 아닌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코끼리만큼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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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코끼리이고, 그냥 나무에 오른다.”


내가 정말로 보내고 싶었던 시간, 누리고 싶었던 ‘여유’의 실체는 바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온전한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집중해보는 것. 어쩌면 지금까지는 세상이 요구하는 ‘그럴듯함’에 가려진 시간을 보낸 건지도 몰랐다. 내가 보낸 시간은 무언가 가치 있고, 멋있는 시간이라고, 그런 시간을 보낸 나 역시 멋있는 사람이라고 입증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꼭 입증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걸까? 코끼리를 통해 다시금 생각을 머금을 수 있었다. 코끼리가 '그냥'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쩌면 나의 온전한 정체는 하나도 세련되거나 멋있지도 않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그냥'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실체일지도 모른다.

'산산조각 나는 게 나쁜 거야?'라 물었던 코끼리의 질문을 조금 바꿔 나에게 해 보았다. 그렇게 멋있지 않은 나의 모습이 '나쁜'걸까?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은연중에 '나쁘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 저변에는 나의 온전한 모습을 스스로가 허락하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그런 두려움에 속았다는 걸 알게 되니 조금 슬펐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의 나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설령 '그냥'의 내가 원하는 게 도저히 오를 수 없을 나무일지라도. 떨어지고 아파도 온전한 나를 만나는 시간이 이제는 필요하다고, 코끼리가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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