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회색인간’, 가장 서늘한 상상력 [문학]

커뮤니티 화제작의 주인공 김동식 작가의 '회색인간'
글 입력 2018.03.1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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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를 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ID ‘복날은 간다’의 글을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외계인의 등장, 인류가 모두 인조인간인 사회, 어느 날 건물 꼭대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의 출현과 같은 이야기를 담은 글들은 올라오자마자 삽시간에 곳곳의 커뮤니티와 홈페이지로 퍼지곤 했다. 꾸준하게 올라오던 300개 가까이 되는 글들 중 66편이 최근 3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 중 첫 번째 책인 ‘회색인간’을 소개해보려 한다.
 
책의 제목인 동시에 첫 번째 이야기의 제목이기도 한 ‘회색인간’은 작가의 삶이 가장 많이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책의 저자인 김동식 작가(ID 복날은 간다)는 전문적으로 글을 배우거나 써온 소설가가 아니다. 상경해 10년간 공장에서 일해 온 그는 노동 중 떠오른 생각의 파편들을 이야기들로 엮어냈다고 한다.

‘회색인간’은 어느 날 갑자기 지저세계로 끌려가 단순 노동을 하게 된 인류들의 이야기다. 끝없는 땅 파기에 지친 이들에게 유희란 없다.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하루 종일 땅만 팔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등장한다. 사람들의 돌팔매질에도 계속해 노래를 하던 여인의 뒤를 이어 돌멩이로 벽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등장한다. 사람들이 화가를 무시하던 찰나, 한 노인이 그 화가에게 이곳을 그릴 수 있냐며 질문한다. 그릴 수 있다고 대답하는 화가에게 속사포처럼 반문하는 노인의 질문들은 지하 세계에서 잊고 있던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일깨워준다.


“우리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이곳에서 어떤 대우를 받아왔는지, 어떻게 죽어나갔는지 그릴 수 있단 말인가? 굶어 죽은 이들을 그릴 수 있단 말이야? 반항하다 머리가 터져나간 그들을 그릴 수 있단 말이야? 이, 손톱이 뜯겨나간 이 손을 그릴 수 있는가?”


모두 그릴 수 있다는 대답을 한 화가는 그 이후로 땅을 파지 않는다. 그 대신 그는 지하세계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을 벽에 그림으로 기록하기로 한다. 화가의 뒤를 이어 소설가가 등장한다. 굶어죽기 직전인 소설가는 자신을 의심하는 여인의 처절한 배고픔을 서술하고 여인의 빵 한 조각을 받는다. 이 대목이 예술이 인간에게 갖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 같다. 예술을 통해 인간은 존재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 회색빛과 같은 무채색이 아닌 고유의 색을 각각에게 부여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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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인간’을 시작으로 다양한 소재들을 다룬 이야기가 등장한다. 모든 인류가 인조인간인 세상, 갑자기 등장한 정체불명의 외계인, 좀비와 뱀파이어의 출현까지. 모두 판타지 소설에만 나올 것 같은 소재이지만 작가의 상상력에 독자들은 서늘한 감정과 충격을 받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에 현실이 잘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낮인간, 밤인간’에서는 이념으로 대립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며 ‘아웃팅’은 사회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현황을 보여줌과 동시에 누구든 소수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차별에 무지한지, 그 차별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민감해져야하는지를 꼬집고 있다. ‘소녀와 소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에선 집단지성의 폐해를, ‘어디까지 인간으로 볼 것인가’는 인간의 본질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한 이야기에 책 10장이 넘지 않는 짧은 글들이지만 김동식 작가의 글들은 엄청난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때론 암담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한 그의 글들에 우리가 매료되는 이유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 측면들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소재들로 풀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탐욕, 거짓, 위선은 우리의 실체를 마치 거울에 비춘 것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어디에도 있지 않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결국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다. 당신이 만일 1권 ‘회색인간’을 읽는다면 망설임 없이 2권과 3권을 읽기 시작할 것이라고 자부한다. 김동식 작가의 서늘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사회와, 인간, 나 자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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