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루에도 수십 번씩 흔들리는 너의 잣대에 대하여 [기타]
자신의 소리에 볼륨을 키우길 바라며,
글 입력 2018.03.1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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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리들의 ‘냄비근성’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어쩌면 나 뿐 만이 아닌, 당신들도 한 번 이상 겪어 봤을 이야기다. 다양한 인터넷 매체가 활성화되고, 손쉽게 여러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다.우연히 기사를 하나 봤다고 가정하자. 내용은 한 연예인에 대한 가십거리였다. 기사를 찬찬히 읽어 내리면서 ‘음, 그렇게 잘못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순간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위치한 ‘베플’을 보게 된다. ‘쟤 예전에도 저러더니, 상습법이네 연예계 은퇴해라’라는 댓글과 온갖 부정적인 댓글들이 추천을 받아 상위권에 올랐다. 순간 우리는, ‘어, 내 생각이 틀렸나? 진짜 이 사람이 잘못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필자는 큰 포털 사이트에서 두 개의 책 추천 글을 읽었다. 추천하고자 하는 책의 주제를 요약하고,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두 권의 책이 충분히 매력 있다고 생각했고, 책을 사서 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포스트의 댓글을 보는 순간 그 책을 사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일만 시간의 법칙을 깨는 눈앞의 성취부터 붙잡는 힘에 관하여. 어쩌면 우리의 성공은 작은 성취를 해 가는 과정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공감을 하였고, 댓글을 봤다. ‘이렇게 넓고 얕게 파고 다니면 사람들이 짜잘한 부탁은 엄청 시켜대면서 돈 주고 일은 안 맡김. 피곤하게 사는 거 좋아하고 남들에게 돈 없이 봉사 하는 게 기쁨인 사람에게 추천‘ 이라고 적혀있었다. 이 외에도 온갖 부정적인 댓글들 밖에 없었다. 책을 살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가?
이렇게 책 추천과 같은 가벼운 글에서부터 나의 잣대가 흔들리는데, 정치나 연예계처럼 더 심오한 것을 다루는 글에 대해 우리의 잣대는 수없이 흔들리지 않을까? 한번 쯤 생각해보고 싶었다. 다수가 생각하는 의견이 정답이고, 어쩌면 소수에 속하는 나의 의견들은 오답일까?내 자신이 의견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쉽기 때문에, 우리는 다수의 의견으로 옮겨간다. 게다가 인터넷은 소수의 토론의 장이 아니라, 상상할 수 도 없는 큰 공간이라는 점 또한 압박으로 작용한다. 그런 공간에서 나 혼자 다른 생각을 가진다? 만약 마음을 먹고, 베플과 반대되는 내 의견을 댓글을 쓰면 수많은 비공감과 답 댓글로 반박하는 댓글이 달릴 것이다.우리는 자신만의 잣대를 가지고 살아간다. 친구와 밥을 먹을 때, 나는 파스타를 좋아하니까 이 걸 먹겠다고 하는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몇 십년동안 쌓아온 신념에 반하는 일이 있을 때 이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 까지. 그런 일들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익명의 누군가에게 판단 당하고, 비난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다르다. 보지도 못한 사람들,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들, 그리고 그런 말에 눌려진 추천수를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은 사라진다.두 번째 문제는, 이렇게 고쳐진 의견이 일상생활에서도 반영된다는 것이다. 친구들이랑 연예계 이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 의견보단 ‘근데, 반응 안 좋던데? 별로라던데?’ 라는 식의 이야기를 먼저 하게 된다. ‘나는 그 의견에 대해 어떻다’가 아니라, ‘인터넷 보니까 사람들 난리 났던데?’ 라고 주어가 옮겨가게 된다. 그 이후, ‘나도 그렇더라, 그 연예인 비 호감 됐어’라고 얘기한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사람들’이야기를 먼저하고, 대화를 하다보면 그들도 자연스럽게 다수의 의견에 따르고 공감한다. 사실 난 처음에 그 연예인이 잘못 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잘못했다고 얘기했던 것처럼.세 번 째 문제는, 이슈에 대한 ‘사고’를 정확히 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앞선 예시는, 기사를 읽고 나의 생각이 변한 상황이다. 하지만, 만약 나의 생각이 자리 잡히기도 전에 누군가가 먼저 판단해주는 일이 잦아진다면, 그렇게 습관처럼 생각 없이 댓글에 의존하게 되고 결국 그 댓글들이 나의 의견이 되어버린다. 가끔 기사 댓글에 ‘베플 보러왔는데 너무 일찍 왔나봄’이 베플인 경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이런 경우는 연예인 기사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여러 경우들이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쓰인다. 욕먹던 연예인이 시간이 지난 후 호감 사는 일을 했을 때, ‘너희들이 아직 그 연예인을 싫어하면 나도 악플 남길 건데, 이번 일로 좋아질 수도 있으니 일단 베플 좀 볼게’ 라는 말이다. 이런 상황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댓글에 얼마나 의존적으로 변해 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생각을 고쳐보려고, 기사를 읽을 때 댓글을 읽지 않고 내 생각 그대로 말하기로 혼자 약속했다.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SNS를 가든, 커뮤니티를 가든, 검색 포털 사이트를 가든 하트나 공감이 많은 글이 매번 우위를 차지한다. 보지 않으려 노력해도 볼 수밖에 없다. 가끔 나랑 의견이 같은 사람이 있다면 소심하게 따봉을 눌러주는 정도 밖에. 어떤 이슈가 생길 때 마다 어디서 그렇게 사람들이 몰리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가끔은 그래서 실시간 뉴스가 지친다. 하지만 그걸 보지 않으면, 아예 그 이슈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 사람들 틈 속으로 매번 비집고 들어간다.이를 이용하는 사례도 생겨난다. 여론몰이가 그 예 일 것이다. 한 아이돌가수가 특례입학을 했을 때, 그 아이돌 가수가 욕을 먹을 상황을 대비하고 팬 카페에서 기사로 몰려가 베플에는 ‘우리 OO은 어렸을 때부터 배우활동을 해왔고~ 어쩌고~’ 이런 내용이 달린다. ‘특례입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느낌에 그 아이돌까지 나쁘게 볼 뻔했지만, 댓글을 보니 아 입학한 게 이해가 가도록 만든다. 이런 경우는 아이돌 쪽에서 정말 많이 볼 수 있다.좀 더 예시를 확장하자면 정치뉴스에서도 그렇다. 가끔 정치 뉴스를 보게 되면 추천 수에 따라 배치되는 댓글의 정렬이 수시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그런 기사들은 20대에서부터 50대까지 모두가 관심 있어 하기에, 댓글이 하는 역할은 더 중요하다.이런 생각을 했다. ‘인터넷에서의 우리는 마치 흘러가는 물결 같다’라고. 베플이라는 다섯 개의 우두머리를 따라 물결마냥 같이 흘러 다닌다. 가끔 이런 물결은 역류할 때도 있다. 여론이 반전 되었을 때, 우리는 갔던 방향과 다르게 움직인다. 그렇게 흘러가다 보면, 어느 새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잃어가고 있다.스마트 폰이 활성화가 되기 전의 핸드폰은 ‘인터넷’에 들어가려면 많은 시간과 돈이 들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쓸 때마다 요금 걱정에, 차라리 집에 있는 큰 컴퓨터를 켜서 검색을 하곤 했다. 지금 만큼 실시간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 힘들었고, 순식간에 이슈가 되는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연예인의 인스타그램이 업로드 되자마자 포털 메인이 되는 지금과 같은 때와는 먼 이야기이지만.SNS가 없었을 적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삶에 더 집중했던 것처럼, 늦지만 조금은 그런 것들과 멀어졌을 때 우리는 ‘남’의 의견이 아닌 ‘내’ 의견에 집중하고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조금은 도움이 될 ‘내’ 잣대를 살릴 수 있는 법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혹시 이런 경우가 있었던 적이 있는가? 모호하고 흐릿하던 것이 ‘말’을 함으로서 굳혀지는 경우 말이다. 나는 예전에 아메리카노가 쓰고 먹으면 심장이 뛰는 것 같아서 싫어했지만, 입을 개운하게 해주기 때문에 가끔 먹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나에게 아메리카노 먹을래? 라고 물었을 때, “아니, 나 예전에 아메리카노 먹고 심장이 너무 뛰어서 싫어해”라고 말을 하는 순간 나는 ‘아메리카노를 싫어하는 사람’으로 말을 건넨 사람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굳혀졌다. 실제로 그 말을 한 이후로 아메리카노를 잘 먹지 않게 되었다.말을 직접 내 뱉는 다는 것이 꽤 강력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앞선 여러 기사들과 댓글들에 대해 적용시켜 보겠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평창올림픽에 관한 이야기다. 여러 선수들의 값진 메달도 화제가 되었지만, 가장 큰 화제는 ‘올림픽 정신‘에 위배되었던 김보름 선수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팀 추월이라는 종목에서 함께 달리던 노선영 선수가 뒤쳐짐에도 불구하고 끌어주지 않고 먼저 들어온 것이 문제가 되었다.물론 나도, 팀 추월에 대한 경기방식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김보름 선수가 잘못한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딜 봐도 다 김보름 선수에 대한 비난과 욕, 심지어 자주 보던 tv프로그램에서도 왕따설과 같은 여러 ‘썰’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예전 같았으면, 아마 나는 그들과 함께 비난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여러 시각에서 낸 기사들을 접한 후 여동생과 토론 형식으로 얘기를 했다. 나는 김보름 선수의 잘못은 마땅하지만 우리의 비난은 너무 과하다고 말을 시작했고, 동생도 나의 의견에 동의해줬다. 포털에 들어가 수많은 비난 댓글들에 반박을 하는 대신, 핸드폰과는 거리를 둔 체 주어를 ‘나’로 옮겨 ‘이런 화제에 대한 내 의견은~’라고 시작했다. 말을 할수록 나의 의견은 더 확고해져갔고, 화제에 대해 ‘내 잣대’로 그 일을 판단할 수 있었다.사실 상, 화제에 대해 다수의 사람들의 의견과 반응을 접하는 것을 차단하기란 힘들다. 우린 이미 ‘스마트’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렇다면, 여러 시각으로 접해 보되 조금은 핸드폰과 거리를 둔 체 ‘내’ 생각이 어떤지 주변 사람들과 말, 즉 얘기를 해보라. 인터넷의 ‘익명’의 사람들이 아닌 오로지 ‘나’의 생각으로. 포털에서도 굳이 내 의견을 댓글로 달 필요도 없고, 내 생각과 다르다고 그들의 의견에 반박 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하는 말들이 늘 정답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점차 당신이 당신안의 목소리의 볼륨을 키워 갔으면 좋겠다.[김아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글 잘 읽었습니다. 너무 공감이 많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세심한 관찰력으로 상황을 잘 분석하셨고 그걸 읽기 쉽게 잘 풀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활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의 얘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잊어버리고 있던 글감을 되새겨주셔서 개인적으로 감사합니다.
<br/> 조금 아쉬운 점은 초반의 예시들이 전체적인 비중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상대적인 것이라서 마지막 3문단에 이어 '나'에 초점을 맞춰 생각하는 부분을 좀 더 설명해주셨다면 완성도 있는 좋은 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