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레이버데이 Labor Day [영화]

사랑을 사랑했던 여인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글 입력 2018.03.13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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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인간을 너비처럼 반으로 갈라 둘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 반쪽짜리 인간인 셈일세. 그래서 자신의 또 다른 반쪽을 끊임없이 찾게 되는 것이라네. 원초적 상태에서 인간은 완전하고 온전한 존재였으니까. 그리고 그 온전함을 추구하려는 욕망, 완전해지려는 욕망을 우리는 에로스라고 부르는 것일세. 에로스란 어떤 ‘대상에 대한 욕망’. 그 욕망은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 내게 없는 것을 가지려는 욕망. 욕망은 결핍으로부터 일어난다."

플라톤, 『향연』(Symposium)에서의
사랑(에로스)에 대한 정의



레이버데이 Labor Day 2013


: 탈옥수와 싱글맘의 열렬한 사랑을
사춘기 아들의 시선으로 지켜보는 이야기.


 필자는 사랑에 대한 맹목적인 호기심이 있다. 열렬한 사랑을 아직 해보지도 못했을뿐더러, 추상적인 가치를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사랑을 주제로 한 과제를 두 번이나 제출했을 정도로, 사랑에 대해 정립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 솔직히 추상적인 가치를 구체화한다는 건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니까 더 궁금하다. 뭐, 결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니까.

 사랑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만큼 웃긴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그쯤 흘러갈 때 눈에 들어온 영화, 레이버데이. 늘 그렇듯 유튜브 영화 소개로 인스턴트 감상 중이었다.


"네 엄만 사랑과 사랑에 빠졌다."


 이 대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웃길 것이라는 냉소와 아집을 가지고 영화를 봤다. 영화 도입부의 취향 저격인 연기와 연출을 보고 당장 불손한 마음 그만두고 경건한 마음으로 자세를 바로 했다. 결국 취향 저격당한 영화를 영업하고 싶었다.



1. 많지 않은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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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전반적인 특징. 서사를 인물의 대사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풍부한 감정이 흘러나오는 것으로 배우의 개개인의 역량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점이 좋다. 눈빛, 몸짓, 세세한 그것, 얼굴 표정과 손떨림. 언어적 표현을 차치하더라도 비언어적, 반언어적 표현은 많다.
    
 사실 상황을 모두 설명하려는 대사와 과도한 표현은 몰입을 방해한다. 적재적소의 대사는 상황을 이해하기 편하게 만들고 아름답게 만든다. 쓸데없이 많은 대사를 감정 없이 읊고 있는 배우를 볼 때면, 꼭 모 만화의 스피드웨건을 연상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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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프다고 말하는 건 결코 슬프지 않다. 감정은 수치와 문자가 아니기에 단어 하나로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감정을 효율적으로 나타내기 쉬워 사람들은 흔히 슬프다고 말한다. 인스턴트식 감동이랄까? 쉽고 자극적이지만 풍미를 느끼지 못하는 그것. 감독은 구태여 가시밭길을 걸었고 그럴 가치가 있었다.

 물론 거의 없는 대사를 잘못 연출한다면 감독만 알고 배우도 관객도 모르는 읭스러운 영화가~! 나만 알고 싶은 영화의 진정한 실천인가?



2. 배경과 인물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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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중 배경은 대부분 집 안팎. 따뜻해 보이는 갈색 목조건물 주위로 햇살은 따사로이 내리쬔다. 새는 지저귀며 컨트리음악이 조용히 깔린다. 어찌 보면 평화로운 시골 모습이다.

 내게는 건조하고 차가웠다. 인물들은 음울한 행동거지, 힘없는 걸음걸이, 축 처진 어깨와 멍한 눈빛. 등장인물의 심리를 여실히 보여준다. 따뜻한 배경 속에서 마치 이레귤러처럼 그들만 축 처져있다. 이러한 간극은 인물로부터 시작해 배경 전체를 차갑게 잠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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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이 심리 변화를 거치고 천천히 집 밖으로 걸어 나오는 장면이 있다. 위화감이 사라지고 인물의 심리와 공간적 배경이 일치할 때, 오롯이 햇볕을 내리쬘 때서야 차가움은 걷어지고 영화는 더할 나위 없이 숨어있던 따뜻함이 슬그머니 눈치 보며 나온다.

 감독은 여기서도 기지를 발휘했다. 의도된 자연스러움이 티가 나면 몰입이 식는다. '여기에서 들어가 들어간다. 잘 봐둬~. 공들여 만들었어. 감동받을 준비해~.' 감독이 영화를 보는 내 옆에서 포인트를 귓속말로 속삭이는 느낌을 준다. 그냥 나가면 나가는 거다.



3. 헨리의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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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말했듯 슬프다고 말하는 건 결코 슬프지 않다. 당장 아들이 아니라 엄마가 나레이션을 하고, 엄마의 입장으로 서사가 진행됐으면 몰입이 덜했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장면에서 한 발 더 물러났을 때 세세한 감정까지 보였다. 심적으론 더 다가간 것이다.
   
 게다가 나처럼 사랑을 아직 이해하기 무리인, 열렬한 사랑을 이해하기 무리인 시청자도 아들의 시선으로 공감할 수 있다. 아들은 아직 사랑을 모르는 사춘기 소년 영화 서사를 통해 성장하며 사랑을 알게 된다. 영화는 오롯이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을 헨리의 입장에서 같이 이해해가는 과정.



4. 결핍

 하다 보니 감독의 연출을 주야장천 칭찬했다. 사실 뛰어난 연출은 배우들의 연기를 전제한다. 싱글맘과 아들의 결핍 연기와 아릿한 연출은 찰나로 나를 사로잡을 만큼 절절했다.

 작중 싱글맘 역, 아델은 사랑과 사랑에 빠졌다. 배우자가 떠난 이유도 그녀가 사랑에 맹목적으로 매여 있어서, 그녀를 사랑하지만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결핍을 버틸 수 없어서 도망 갔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하지만 아델 단순히 배우자가 떠난 결핍을 지닌 캐릭터라고 설명하기엔 그녀에게 미안하다. 배우자 부재가 있기 이전에 아이를 여럿 떠나보낸 캐릭터다. 상실에 빠진 그녀를 지지하고 위로해 줄 동반자는 지쳐서 떠났다. 그녀의 결핍에 자기 몫의 결핍을 얹고 떠나면서 또 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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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트 윈슬렛은 아슬아슬 외발 타기 하는 듯한 위태로움을 연기했다. 여성으로서 버림받았지만 엄마로서 책임감을 가져야만 했다. 상처를 치유하기엔 의무가 앞섰다. 치유하지 못해 점점 곪아가는 상처는 누가 건드리면 힘없이 이리저리 떨어져 나갈 마지막 잎새 같았다.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숨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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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 헨리도 마찬가지. 마냥 어리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아직 미숙하다. 하루 종일 넋이 나가있는 엄마와 일주일에 한번 보는 게 전부인 친부. 온전하게 사랑을 받는 게 이상할 정도다. 어설픈 사랑은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두려움을 준다. 헨리는 다른 의미로 아슬아슬하며 불안에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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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중 헨리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사춘기는 누구나 겪으니까! 게다가 심란한 마음을 오롯이 내보내기엔 엄마는 불안정하다. 헨리는 담담한 태도로 속에 있는 감정, 외로움 불안정함 두려움을 조심해서 갈무리한다. 헨리의 감정이 조금씩 조금씩 실수로 삐져나올 때 필자는 참을 수 없는 연민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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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이 비치는 효과, 장면 연출을 되게 좋아한다. 햇살이 눈동자에 비칠 때, 인물들의 복합하고 처연한 감정이 드러나는 것만 같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그 찰나에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빠져버린다. 굳게 닫혀있던 마음을 잠시나마 확인할 수 있는 장치. 따사로운 자연조명에 비치는 눈동자 너머를 훔쳐볼 때, 관음 하는 것만 같다.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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