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녀들의 디스토피아 [기타]

글 입력 2018.03.13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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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좌의 게임>은 HBO의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 중 하나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다. 내년 봄 마지막 시즌 방영을 앞두고 있는 지금, 그간 방영된 <왕좌의 게임>시리즈가 보여주고 있는 현실의 한 모습과 그와 관련해 떠오르는 질문에 대해 간단히 적어보려 한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은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와 방대한 세계관으로 많은 팬을 매료시키고 있지만 동시에 스토리를 구현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지나친 폭력성과 잔인함, 그리고 선정성으로 늘 논란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엄연히 작품의 일부이고 필요한 장면인데 무엇이 문제가 되냐는 입장도 있지만, <왕좌의 게임>에서 성행위를 묘사하는 장면의 대부분이 기분 좋은 에로틱함 이상의 불쾌한 어떤 지점을 내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강간, 폭력, 매춘의 장면이 거의 모든 회차에서 한 번 이상 등장한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불편한 성적 장면은 대부분 불평등한 권력의 관계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남성과 여성, 귀족과 하층민, 구매자와 판매자의 관계 등이 그에 해당한다. 물론 작품이 중세시대(의 유럽을 모티브로 한)를 배경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수많은 등장인물 간의 신분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신분을 초월한 그 시대의 사랑도 분명 존재했을것이다. 하지만 사랑, 그리고 성관계에 권력의 불평등이 개입하는 순간 한쪽은 억압, 착취, 폭력의 대상이 될 위험에 처해진다.

  성 산업은 현대에도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흔히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은 창녀라고 말하기도 한다.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왕좌의 게임>에서도 성 산업에서의 판매자와 구매자, 그들이 성을 거래하는 사회적 기반, 시설, 자본, 그리고 그 안에서의 부조리가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왕좌의 게임> 내에서 ‘창녀(whore)’로 지칭되는 인물들이 다뤄지는 방식은 성 산업이 초래할 수 있는 폭력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폭력적인 관계는 현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 산업에 관련된 흔한 이슈들을 정리하고 하나씩 짚어보려고 한다.



성 판매와 서비스, 노동은 같은가


  성을 사고 팔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기본적으로 육체를 사용하는 노동 행위와 판매자의 인격을 분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커피 내리는 행위, 건물을 짓는 행위, 가르치는 행위 등의 노동을 매매할 수 있는 것처럼 성 행위 자체를 매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행위의 주체와 그의 인간성을 매매하는 것과 별개의 거래로 취급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성 판매가 정당하다는 입장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주장은 ‘건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식당 종업원이 서비스를 판매하듯 성 판매 역시 자신의 몸을 사용한 노동을 판매하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식당 종업원이 판매하는 서비스란 어디까지나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주고 식당을 청소하는 정도일 뿐 손님들의 무례한 언행에도 미소를 짓거나, 사장에게 폭력적인 행위를 당해도 묵묵히 일하는 등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지불한 금액으로 노동자까지 구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몰상식한 소비자를 마주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의 매매는 공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손님이 돈을 지불하고 구매한 상품(혹은 노동, 노동의 결과)와 노동자의 구분이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에 노동 행위와 주체를 분리할 수 있는 근거 역시 명확해진다.

  반면 성을 판매하는 노동자들은 그들이 판매의 주체인 동시에 몸을 상품으로 내놓기 때문에 그들의 노동 행위와 판매자의 인격을 명확히 분리해 생각하기 어렵다. 또한 성 행위는 단순한 육체적인 움직임만이 아니라 인간 사이의 교감(비록 연기이더라도)이나 쾌락 역시 수반하기 때문에 성 판매자의 노동은 육체노동인 동시에 감정노동일 수밖에 없다.

  드라마에서 고급 환락소를 운영하는 포주로 등장하는 리틀핑거는 막 데려온(사 온) 여자들에게 기술을 가르친다.


"손님들은 속지 않아. 방금 돈을 냈잖아. 너희가 뭔지 잘 안다고. 전부 연기라는걸 알고 있단 말이야. 손님들이 아는 사실도 잊게 하는 게 너희가 하는 일이야. 그러려면 시간이 걸리지. 그러려면 천천히 잊게 해야해. 해봐!..... 돈 때문에 하는 거지만 너는 빠져들고 있어.. 좋아지기 시작한거야.. 그들은 널 믿고 싶어하지. 그도 어렸을 때부터 자기 물건을 좋아했는데, 너도 좋아할 법 하잖아. 자기가 다른 남자들보다 낫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사실 늘 알고 있던 건데..이제 그 증거를 찾은 거야. 너무나 뛰어나서, 있는지도 몰랐던 네 깊은 곳의 무언가를 그가 자극해서, 너의 본질마저 극복하고 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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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돈을 내고 육체를 포함한 인간 자체를 구매하는 순간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권력관계는 다른 어떤 노동 매매 현장에서보다 강력해진다는 것이다. 또 이들의 교육현장에서 알 수 있다시피, 성 노동은 일반적으로 구매자의 우월감을 만족시켜주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성 구매자는 거래 현장에서만큼은 매우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게 된다. 성 노동자는 밀폐된 개인적 공간에서 몸과 인격을 모두 소유한 구매자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는 노동자들을 다양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성 판매자가 노출되는 위험 환경


  앞서 언급한 세 측면으로 인해 성 노동자의 근무환경은 매우 열악할 수밖에 없다. 신체와 인격을 모두 거래해야 한다는 점, 공적인 공간에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이와 같은 구조에서 구매자와의 권력 관계가 형성되는 점이 그 이유였다.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성 노동자 캐릭터 로즈 역시 이로 인한 위험에 처해진다. 스타크 가문에 볼모로 잡혀있는 강철군도의 후계자 테온 그레이조이와 로즈의 대화 장면이다.


"여기서 꽤나 힘 쓰시는 분인줄 알았는데요"
"너 같은 부류 상대할 힘은 있지"
"손님이 제가 처음 받는 귀족은 아니랍니다"
"누구, 임프? 그놈은 반쪽짜리 귀족이고"
"질투나요?"
"내가 뭐하러 질투를 해? 돈 몇푼만 있으면 아무라도 너를 살 수 있는데 말이야... 난 그레이조이야. 철의 군도에서 300년이나 군림했던 가문이라고. 웨스트로스의 그 어느 가문이라도 우릴 얕잡아보지 못해. 라니스터라도 말이지. "
"스타크는 어떤가요?"
"난 여덟 살때부터 스타크의 볼모였어"
"볼모라.. 말은 근사하네요. 손님 아버지가 왕에게 반란을 일으켰잖아요. 만약 또 그런 짓을 하면-.."
"아버님은 백성들을 해방시키려 싸우셨어. 네년 아비는 뭐했냐? 부엌데기랑 떡치고 창녀나 낳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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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장면에서 로즈는 손님의 자존심을 긁었다는 이유로 “돈 몇 푼이면 너 같은 건 살 수 있어”라는 말을 듣고, 성희롱을 당하며 심지어 물리적 폭력에까지 노출된다. 슬픈 점은 이 모든 폭력에 대처하는 로즈의 모습이다. 테온의 행동이 실질적 위협임에도 불구하고 로즈는 무례한 말과 성희롱 정도는 웃으며 넘겨버리고, 폭력에도 오히려 더 대담한 도발로 응수한다. 그러나 이 미소와 행동은 ‘진상’손님을 대하는 그녀의 방식인 듯 하다. 설사 로즈가 그녀를 둘러싼 모든 폭력에 너무나 둔감해졌고, 손님의 저 정도 폭력은 예사로 생각해 웃어넘길 수 있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노동자가 이 같은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그 자체로 옳지 않다.

  또한 성 노동자들은 원치 않는 방식의 관계를 요구받는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그 속에서 공포를 느끼더라도 이미 방 안에서 손님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한 쉽게 싫은 것을 거부할 수 없다. 포주도, 법도, 사람들의 인식도 그들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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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판매는 판매자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일 수 있는가


  성 판매가 자발적이라는 것은 명백히 환상이다. 현재 대한민국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여성들을 끌어들이는 성 산업의 구조는 언제나 분명하게 존재해왔다. 성 판매가 정말로 개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직업 중 하나라면, 왜 거의 항상 남성보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보호받는 안정된 계층보다 소외된 계층이 더 많이 성 판매를 시작하는 것일까?

  포주의 존재 역시 성 판매가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없는 증거가 된다. 성매매 피해지원상담소 이룸의 2016년 통계에 따르면, 포주나 성매매 조직과 연관되지 않고 단독으로 성을 판매하는 여성의 비율은 전체 성 판매 여성의 1% 뿐이라고 한다. <왕좌의 게임>의 등장인물 리틀핑거(피터 베일리쉬)는 수도인 킹스랜딩에 호화로운 업소를 소유하고 있다. 일반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값을 받지만, 부유한 귀족들을 상대로 모든 취향을 만족시켜준다고 말하는 리틀핑거에게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시 경비대들이 아기를 살해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뒤 불면증을 겪으며 일상생활이 불가능함을 호소하는 로즈에게 리틀핑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널 보니 다른 아이 한 명이 떠오르는구나. 리스의 환락가에서 데려온 아이였어. 아름다웠지. 마치 너처럼. 지적이기도 했어. 마치 너처럼. 하지만 행복하지는 못했어. 자주 울곤 했지.. 내가 이유는 물어봤다만.. 너와 나처럼 친한 사이는 아니었거든. 정말 슬픈 일이었지. 리스 환락가의 아이들은 비싸거든. 아주 비싸지. 그 아이는 돈벌이가 전혀 되지 않았어. 난 투자 실패를 정말 싫어하거든... 그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방법이 전혀 없었어. 내 손실을 만회할 방법도 없었고. 그러더니 어느날, 한 부유한 고객이 큰 돈을 지불하겠다는 거야. 이 사랑스럽고 슬픈 아이를.. 변화시켜서..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방식에 사용하겠다고.. 넌 보통 남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방식은 죄다 알고 있겠지. 그 고객이 그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어줬다고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내 손실은.. 완전히 만회되었단다. 오늘 밤은 쉬면서 아기를 애도하렴. 내일 보자꾸나. 행복한 모습으로. 그 편이 나도 더 행복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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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주에게 있어 성 노동자는 ‘리스의 환락소에서 비싼 값에 사온 아이’가 ‘돈벌이’가 되지 않으면 그를 ‘일반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방법’으로 취급할 낯선 이에게 언제든 팔아넘길 수 있는 상품일 뿐이다. 리틀핑거는 마치 도매로 떼 온 물건을 좋은 가격에 넘겼다는 이야기를 하듯 인간을 사고 판 경험을 얘기한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 경험담이 자신의 업소에서 일하는 성 판매자를 협박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로즈가 어떤 경로로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는 드라마에서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스쳐지나간 대사 중에서 다른 성 노동자 캐릭터를 두고 ‘어머니도 창녀였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성 노동자의 출신이 언급되는 경우를 살펴보면 이들은 사생아이거나 부모가 정상적인 돌봄을 제공하지 못한 취약계층인 경우가 많다. 설사, 만에 하나 로즈가 부유하고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직업을 신중하게 고른 것이라 하더라도 포주에게 이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이상 더는 그녀가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성 판매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만일 성 판매가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이며 당당한 하나의 직업이라면, 왜 문화권을 막론하고 성 판매 여성을 가리키는 어휘들은 욕설로 사용되는 것일까. 이들은 마치 불가촉천민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왕좌의 게임>에서는 매 화마다 최소 세 번 이상씩은 ‘창녀’를 모욕적으로 사용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 안에서 ‘정숙한 여인’들은 창녀로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하고 모욕으로 여긴다. 시즌 1에서 윈터펠 영주의 아내인 캐틀린은 리틀핑거가 자신을 그의 업소로 데려온 것을 깨닫자 “나를 이런 뒷골목 천박한 데로 데려오다니”라며 화를 낸다. 리틀핑거 역시 “당신과 당신 가문에 결례를 범할 생각은 없었습니다.”라며 사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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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합법화로 성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페이스북 페이지 반성착취여성행동 참조)


  성매매 합법화는 성 매수자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것 뿐, 성노동자 보호와 그들의 인권 보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매매를 없애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니 차라리 국가에서 성매매 여성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보건관리를 책임지는 것이 옳다는 주장은 얼핏 보면 굉장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성매매를 합법화한다고 해서 (성 판매자에 대한) 강요와 착취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매매를 합법화하면 피해 여성이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 성매매 산업만 보호된다. 성매매를 합법화한 미국 네바다주에서는 오히려 인신매매가 증가하고 불법 성매매 산업이 성행하게 되었다. 또한 현재 네바다주의 여성 강간율은 뉴욕의 2배, 미국 전체 평균의 4배라고 한다. 성매매를 합법화한 것이 성적 폭력과 성 착취를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남초 사이트인 이종격투기카페에서는 “업소에 계속 가다보니 이젠 직장 동료나 친구, 애인, 주위여성들이 나에게 화를 내거나 불평을 하면 나도 모르게 ‘7만 원짜리가’라는 생각이 든다.”는 글이 많은 공감을 받기도 했다.

  또한 성판매자의 보건안전은 단순히 콘돔사용을 의무화하는 것으로 지켜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체액이 노출되는 타 직업의 경우 마스크, 장갑, 보호복 등을 착용하도록 되어 있다. 성매매가 합법화되면 오히려 많은 업소에서는 경쟁적으로 가격을 내리고, 그 속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판매자들은 콘돔을 사용하지 않거나 폭력적인 행위를 용인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높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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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매매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장되는 대표적인 국가 네덜란드에서조차 성판매자들이 처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추후 오피니언에서 암스테르담의 '성산업박물관(prostitution museum)'의 전시를 소개하며 좀 더 깊은 논의를 해보고자 한다. 먼 과거, 용이 날아다니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가상의 세계를 그린 판타지에서조차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인물들이 있음을 기억한다면 지금 현재의 가장 현실적인 문제 역시 깊이있게 고찰하고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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