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극 '오펀스'가 전해준 특별한 격려 [공연예술]

글 입력 2018.03.13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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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격려’라는 말을 떠올리면 보통 ‘괜찮아.’와 같은 말이 떠오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각자가 힘든 이유가 다르고, 당연히 필요한 위로와 격려도 다르다. 흔히 많은 연극과 뮤지컬들에서 “괜찮아”,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 “넌 잘하고 있어”와 같은 격려를 전한다. 그러나 솔직하게, 나는 이런 메시지들을 전해 받을 때 약간의 기쁨만 얻었을 뿐 진심으로 격려를 받지는 못했다. ‘그래, 괜찮은 거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만 했을 뿐 진심으로 기분이 나아지거나 격려들이 마음에 와닿는 경험을 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연극 ‘오펀스’를 보고, 나는 처음으로 극을 보며 진심으로 격려받았다. 그것은 ‘오펀스’가 가진 메시지가 특별히 더 좋았기 때문이 아니다. 나에게 필요한 격려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힐링 메시지를 가진 극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개개인은 필요한 격려가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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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내가 힘들어할 때 “괜찮아. 잘 될 거야.” 혹은 “다 지나갈 거야. 울지마.”와 같은 말을 해주었다. 물론 나를 위해 마음을 써준다는 그 자체로 위로가 되었지만, 마음이 편해질 수는 없었다. 나는 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성격이다. 일이 잘못되면 잘못을 주로 스스로에게서 찾는 버릇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옆에서 괜찮다고 말해주고 나서 기분이 괜찮아지기보다는 혼자서 그 시기를 이겨내야 슬럼프가 지나가는 편이다. 연극 ‘오펀스’를 보면서 나는 정말 오랜만에 엉엉 울 수 있었다. 사람들이 전부 울고 있는 사이에서 나도 같이 엉엉 우는 것. 그것을 통해 나는 정말 큰 격려를 받을 수 있었다. 마음껏 울어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격려였기 때문이다. (물론 공연장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소리내서 울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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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펀스'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트릿과 필립은 고아 형제이다. 형인 트릿은 동생 필립을 지키기 위해 필립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트릿은 집 밖으로 나가 좋지 못한 행위들로 돈을 벌어 오고, 어느날 해롤드라는 사람을 집으로 납치해와 돈을 얻으려 한다. 이렇게 만난 세 명의 인물이 서로의 결핍됐던 부분을 채워가며 서로 격려를 주고받게 된다. 이 과정은 굉장히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무대도 아름답고, 조명이 특히 아름답고 대사들도 정말 아름답다.


해롤드
“필립, 넌 다시는 길을 잃지 않을 거다.
네가 시간과 공간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거야!”

*

해롤드
“그런 말 절대 믿지 마,
필립. 그건 정말 기적이야.
가로등 하나하나마다 태양의 조각들이 들어 있다.”

필립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해롤드
“넌 현명한 사람이야,
필립. 절대 네 본능을 의심하지 마라.”

필립
“네. 그럴게요.”

*

트릿
“아마 우리한테 필요한 건
엄마가 아니었을 거야.
네겐 그냥 격려가 필요했을 뿐이야.”

*

필립
“나한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왜냐면 난 이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아니까.
그러니까 형은 더 이상 나한테 그걸 빼앗아 갈 수 없어.”

트릿
“기억나?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난 널 보살폈어.
더 이상 그 개새끼들이
우리 엄마랑 너 건들지 못하게 했어.
근데 넌 이제 내가 필요 없어? 그게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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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다운 대사들과 격려들 속에서 내가 격려받을 수 있던 부분은 조금 다르다. 나는 극의 시작부터 트릿에게 굉장히 이입해서 봤다. 그래서 해롤드의 격려를 받은 필립이 세상을 점점 알아가고 트릿에게 나쁜 말을 쏟아낼 때는 덩달아 내가 상처받았다. 상처를 받는 기분을 느낀 것이 아니라, 정말로 상처를 받았다. 내 딴에는 최선을 다했고, 남들을 위해 나를 희생하면서 시간과 노력과 마음을 썼는데 스스로의 위치를 잃어버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몇 달 동안 이러한 감정을 계속 느꼈는데, 이런 감정을 받는 순간마다도 계속 힘들었고 이러한 감정이 계속 쌓이는 것도 계속 힘들었다. 이럴 때마다 이 감정을 이겨내는 건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하는 수밖에 없었다. 밤마다 울면서 ‘그래, 좀만 더 열심히 하자.’ 라고 다짐하며 이겨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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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펀스’에서 트릿은 트릿 나름대로의 최선의 노력을 통해 필립을 지킨다. 비록 트릿과 필립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것이 진정으로 필립을 위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필립과 마찬가지로 트릿 역시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던, 세상을 잘 알지 못하는 아이이다. 아무도 트릿에게 세상이 어떤 것인지, 세상에 어떻게 나가야 할지 알려주지 않았다. 트릿은 아직 스스로를 알기 전에 세상에 무작정 던져진 것이다. 그리고 트릿은 자신이 ‘형’이라는 부담감과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는 법은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자기보다 어린 필립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그리고 필립에게는 이토록 무서운 세상을 겪게 하지 않기 위하여, 트릿은 스스로를 혹사하며 필립을 자신이 전부 책임지려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트릿은 다소 언어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역시 트릿이 어려서부터 누구에게도 격려를 받지 못했기 때문임을 모두는 알 수 있다. 트릿이 보여주는 그러한 폭력성은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다. 필립과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이 만든 세상이 깨질까봐 두려워서 폭력성을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을 채찍질하며 스스로 책임감과 부담감을 억지로 부여하며 자신을 혹사하는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래서 트릿이 해롤드의 등장으로 자신의 위치를 잃어갈 때 나는 같이 상처받았고, 트릿이 소리내서 울지 못할 때는 같이 답답한 가슴을 마구 치고 싶었으며, 마지막에 트릿이 아이처럼 소리내서 엉엉 울 때는 같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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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연출진이 의도한 방향은 아니었지만, 나는 정말 트릿이라는 캐릭터와 ‘오펀스’라는 극 덕분에 지금껏 받았던 그 어떤 격려들보다도 가장 힘이 되는 격려를 받을 수 있었다.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직접적으로 내게 위로가 된다고 생각해보지는 못했었는데, 이날 너무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 외에도 많은 사람들도, 꼭 ‘오펀스’가 아니더라도, 공연을 통해 이러한 격려와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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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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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북끼리
    • 안녕하세요. 유지은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뻔하지 않은 글의 진행에 사로잡혀 단숨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윤님이 감명 깊으셨던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주셔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연극을 보지 않았지만 같이 본 듯한 느낌도 듭니다. 현장사진도 적절히 잘 넣으셔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생각합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사진 안 문구의 가독성입니다. 클릭해서 확대해서 볼 수 없는 사이트 구조 상 읽기 쉽게 타자로 써주셨다면 더 완벽한 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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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구바구
    • 안녕하세요, 에디터 김아현입니다. 이 글을 정말 몰입하고 단순에 본 것 같아요. 공연에 대해서 받은 감동을 읽는 사람들에게 100프로 전달하고 싶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은 김나연 에디터 님도 아실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저는 김나연 에디터 님이 받은 감동을 글을 통해 충분히 느꼈습니다. 공연이 보고싶어졌어요. 그 이유는, 제가 만약 이 연극을 보더라도 트릿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트릿 자신도 완전하지 않은 체 세상에 던져졌지만, 형이라는 이유로 동생의 앞에서 맞서 싸워야 된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지만 누군가에게 완전함을 강요받고 있다고. 그 동안, 트릿은 상처를 받고 위로를 원한다고. 어쩌면 저의 모습, 혹은 많은 사람들도 아마 '트릿'이지 않을까요?
      <br/> 그런 의미에서 에디터님의 도입 부분은 굉장히 이 글과 잘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괜찮다고 위로한다고 정말로 괜찮아질수는 없다. 사실 저도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힘든 시기를 많이 지냈는데, "너 더 잘되려고 힘든거야", "앞으로 잘될거야"라는 식의 말을 들어도 미안하지만,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고 저에게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저는 그 순간에도 제 자신을 자책하며 상처에 집중하고 있었거든요. 아마 트릿도 마음속의 상처때문에, 어쩌면 그런 상처를 진정으로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자신을 자책하지 않았을까요? 저도 이 연극을 보고 정말 진정한 위로를 받아보고 싶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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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hio
    • 연극 '오펀스'가 전해준 특별한 격려

      안녕하세요 에디터 정수진입니다. 연극 '오펀스'의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한 채 나연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작품에서 받은 나연님의 생각과 해석덕분에 나연님이 경험한 그 감동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런 상황이 닥칠 때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이것 밖에 안되나?'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으니까요. 등장인물들에 대한 깊은 공감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품을 보고 싶도록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중간에 나연님께서 인상깊었다고 느껴지는 명대사들을 나열해주셨는데 이를 통해 연극의 씬들과 글들이 더 잘 어우러졌다고 생각해요! 명대사를 모른 채 글을 읽었다면, 극 중 등장인물이 무슨 말을 했는 지 몰랐을테니까요. 연극에 대한 흥미를 높여주는 사진자료와 명대사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중간에 문단의 내용이 길어진 곳이 있어요!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그 부분에서 문단을 한 번 더 나누어주면 가독성이 더 나아질 것 같아요! 너무나도 좋은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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