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04. 우산을 쓰고, 나 혼자 왔다

글 입력 2018.03.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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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우산을 쓰고, 나 혼자 왔다




[쓰다]
- 우산이나 양산 따위를 머리 위에 펴 들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꽃등에였다. 그 벌레. 열두 살 무렵, 또래 아이들 사이에는 벌과 비슷하게 생겼으면서 사람을 쏘지 못하는 꽃등에 날개를 뜯는 놀이가 한창 성행했다. 나는 곤충에 관심이 없는 아이였다. 날개 뜯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랬고. 쉬는 시간에도 절대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이 없는 아이였으니까. 오줌을 참았다가 집에 가서야 오랫동안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던 아이였으니까. 반면 아이들의 꽃등에 사냥은 열기가 대단했다. 그들은 교내 화단에 존재하는 모든 꽃등에를 다 잡아낼 기세였다. 종을 다 잡아 없앨 정도의 열정이었다. 날개가 뜯겨 몸뚱이만 남은 벌레가 책상 위를 힘없이 기어다기만 하는 것을 보고 낄낄거렸다. 아이들은 벌레를, 정말로 벌레 보듯이 굴었다.
   
   얼굴이 찡그려지는 광경이긴 했지만 친구들의 그 기괴한 ‘곤충 훼손 행위’는 정말로 놀이였기 때문에 나도 그것을 ‘그들만의 놀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별 관심이 없는 쪽에 가까웠다. 기어 다니는 몸뚱이들을 툭툭 건들며 쓰러뜨리고 빵빵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은 흔한 일이었다. 대상이 꽃등에가 아니라 사람이 될 때도 있었으니까. 한 아이를 구석에 몰아놓고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날개를 쓰지 못하는 벌레를 굴리며 놀듯 구역 안에 갇힌 아이를 흠씬 두들겨 팬다. 꽃등에를 잡는 건 딱 그만큼의 열정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못했다. 그 힘없는 벌레는 울지도 못하고, 벌처럼 사람을 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연히 아이들은 벌레 잡기에 금방 흥미를 잃었다. 벌레가 너무 벌레 같아도 아이들은 쉽게 질려한다.
   
   내게도 단 하나의 꽃등에가 있었다. 어떤 남자애가 내 책상 위로 그 벌레를 던진 것이다. 갖고 노는 것에 흥미를 잃어 내게로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리를 질렀다. 가져가! 가져가란 말야! 그 애는 멀리서 나를 향해 약 올리기만 하고 잽싸게 사라졌다. 뛰어가 그를 잡을 의욕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내 책임이 되었다. 죽이거나, 버리거나, 혹은 키우거나. 날개 뜯긴 몸뚱이를 만질 용기는 없어서 손가락 대신 연필 끄트머리를 내밀었다. 비틀비틀 거리며 연필을 타고 오른다. 내 벌레가 생겼다. 금붕어 한 마리 키워본 적 없는 내게 소재를 책임져야 할 벌레가 생겼다. 남자애를 생각하면 괘씸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벌레를 버릴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한 손엔 우산을, 다른 한 손엔 꽃등에가 얹어진 연필을 든 채로 하교를 해야만 했다. 혹시나 꽃등에가 빗물을 맞고 정신을 잃어버릴까봐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매일 똑같은 등하교 길인데 날개 뺏긴 벌레 하나랑 같이 걸으니 어떤 특별한 미션을 수행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힘들게 집에 도착해 꽃등에를 내려놓았을 때 연필에서 비틀비틀 내려오는 녀석이 조금 귀여워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 회포도 잠시, 돌연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상한 걸 주워왔다고. 밖에서 주워온 것이 안에서 함부로 죽으면 부정 탄다며 얼른 갖다 버리라는 것이다. 비도 오고, 이 앤 날개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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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혹시나 더 화를 낼까 무서워 일단은 황급히 집을 나왔다. 한 손엔 우산, 다른 한 손엔 꽃등에가 얹어진 연필. 비는 조금 전보다 더 세게 내리고 있었다. 나는 어디에 이 아이를 버려야 이 아이가 안전할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 좁은 동네를 구석구석 넓게도 돌아다녔다. 벌레도 감기에 걸릴까, 벌레도 자다가 추운 것을 느낄까, 벌레에겐 빗방울이 얼마나 크게 느껴질까. 아무리 돌아봐도 마음에 차는 곳이 없었다. 그 남자애가 미웠다. 이런 거 괜히 나한테 줘서 내가 이렇게 마음이 복잡해졌다. 차라리 죽이지. 왜 나한테 줘서는. 울고 싶었다.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동네 피아노 학원 앞에 있는 널따란 화단 아래에 녀석을 풀어줬다. 잎이 넓은 풀 밑에 연필을 내려놓자 알아서 녀석이 기어 내려갔다. 비는 점점 굵어진다. 우산을 쓴 채로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서있었다. 이름을 붙여줄까, 아니 붙여주지 말자.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까, 아니 하지 말자. 열두 살이었고, 조그만 벌레 따위에게 잘 지내야 한다는 둥, 미안하다는 둥 의미 없는 소릴 해대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발길을 돌리려는데 끝내 못 참고 한 마디는 했다. 조심해야 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갔다. 우산을 쓰고, 나 혼자. 처음으로 살아있는 것과 산 채로 헤어진 경험이었다. 다음 날 등굣길, 나는 그 화단 앞을 쌩하고 지나쳤다. 그리고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그 남자애를 찾아내 무작정 등짝을 갈겼다. 못된 새끼, 하고 외치며.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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