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음으로부터 - 또 다시 마음으로 가리라 '베토벤, 장엄미사'

글 입력 2018.03.1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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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마음으로부터 - 또 다시 마음으로 가리라
베토벤 '장엄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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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느껴야 하는 것을.

대단한 곡이라고 들었다. 베토벤이 스스로 자신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언급했다는 곡. 철학적으로 심오하고 음악적 난이도가 높아 쉽게 연주되기 어려운 곡. 베토벤의 생애에 대해 알고 있었고, 프리뷰를 쓰기 위해 오라토리오에 대해 공부도 했다고, 나는 내 나름대로 '장엄미사'를 이해할 자신이 있었다.

베토벤의 '장엄미사'는 미사 통상문에 따라 5곡으로 이루어진다. 혼성4부의 독창과 합창, 2관 편성에 바탕을 둔 관현악과 오르간에 의해 연주되는데, 공연이 시작되고 1곡인 키리에(Kyrie)를 들으며 조금 당황스러웠다. 합창과 독창이 번갈아가며 이어졌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가 끊임없이 반복됐다. 오라토리오가 무엇인지, 주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키리에가 끝나갈때까지 곡은 내게 어색하게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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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오라토리오 공연 모습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의 어색함의 원인은 단 하나였다. 나는 공연을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떤 공연이나 전시든 "느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음을 잠시 간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오라토리오 공연은 처음이었고 보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내게 낯선 장르였기에 더욱 '이해'하려고만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알고 간 오라토리오는 '17∼18세기에 가장 성행했던 대규모의 종교적 극음악', 단지 개념적인 것에 불과했고, '종교'라는 단어가 내 선입견을 만들었다. 개념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었다. 공연이 끝난 후, 오라토리오에 대해 더 찾아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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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오라토리오 공연 모습


오라토리오 이전에 오페라가 있었다. 17세기 전반부에 오페라는 주요 바로크 형식의 하나로 자리 잡았는데, 이후 오라토리오나 칸타타 같은 종교적 분야나 다른 세속적 분야의 성악 음악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오라토리오는 1550년대에 로마의 평신도들 사이에 있었던 일련의 영적 훈련을 위한 기도운동으로부터 탄생했다고 알려진다. 교회 기도실을 오라토리오(oratorio)라 불렀는데, 기도예배의 음악적 부분이 사람들로부터 크게 호평을 받았고 점점 음악극과 같이 더 큰 규모를 취하게 된 것이다.

기도예배에서 시작된 음악이기에 오라토리오가 담고 있는 내용은 종교적일 수밖에 없다. 오라토리오는 아리아, 레치타티보, 성악 앙상블, 합창 그리고 오케스트라 곡들로 구성된 극음악인 점에서는 오페라와 비슷하다. 그러나 오페라와는 달리 오라토리오의 가사는 주로 성서에 기초하고 있고, 무대장치, 의상, 연기행위 없이 연주된다. 또한 오페라에는 없는 해설자가 등장하며, 합창의 역할이 오페라에서보다 매우 중요하다. 해설자의 역할은 이야기의 사건들을 설명해주거나 연결시켜주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주요 역할은 노래를 반주하는 것이지만, 서곡이나 간주 같은 독자적인 부분도 있다.즉 오라토리오는 연기 행위가 없는, 그리고 성서를 주제로 한 오페라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대 뒤의 스크린에 끊임없이 적혀지는 가사들을 보며 내용을 확인하느라 합창부와 독창부의 힘차고도 장엄한 외침을 느끼지도 못하고 제 3곡까지 지나쳐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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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드비히 반 베토벤


그런데, 희한하게도 내내 동요하지 않던 마음이 마지막 제 4곡 상투스와 제 5곡 아뉴스 데이를 들으며 흔들렸다.

<장엄미사>는 베토벤의 후원자이자 벗이었던 루돌프 대공의 올뮈츠 대사교 즉임식을 위해 1818년 쓴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적 궁핍과 건강 상태의 악화, 그리고 조카 카를의 후견 문제에 시달려 작곡은 예정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결국 1820년의 즉임식에는 맞추지 못했고, 곡이 완성된 것은 1823년, 베토벤이 52세가 되던 해였다.

1818년 쯤부터 베토벤은 청력을 완전히 상실해 갔다. 그러니까 베토벤 개인적으로 가장 '최악'의 상황일 때 이 곡이 만들어진 것이다. 제 3곡에서 '도와 주소서'라는 뜻의 호산나를 부르짖는 독창과 합창의 하모니가, 그리고 제 4곡에서 '우리들에게 평안을 주옵소서'가 고조되는 그 순간이 정말 인상깊었다. 마치 고뇌와 울분에 찬 베토벤이 스스로 평안하고자 울부짖는 기도처럼 들렸다. 200년 전 베토벤의 기도가 이토록 절실했을까? 마음이 아팠다.

공연 초반 내가 왜 어색했는지 깨달은 순간이었다. <장엄 미사>는 종교 음악이기 전에 고뇌와 슬픔 그 모든걸 이겨내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끊임없이 되뇌었던 베토벤 개인의 기도였던 것이다. 얕은 지식으로 이해될리 없었다.

베토벤은 대공에게 헌정함에 있어 제1곡 키리에의 첫머리에 ‘마음으로부터-또다시 마음으로 가리라’ 라고 스스로 써 넣었다고 한다. 그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졌나보다. 베토벤이기에, 베토벤의 음악이기에 가능했을 벅찬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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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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