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이비?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3.1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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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하다. 내가 꽤 좋은 타겟이란 걸 알고 있다. 길을 걷다가 그들은 나를 붙잡고 말을 걸며 다가온다. 수 년간의 경험으로 알 수 있다. 혼자 길을 걷고 있는 젊은 여자. 그들을 하나로 줄일 수 있는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은 그들을 이상한 사람들 혹은 ‘사이비’라고 부른다. 돈을 갈취당했다는 이야기도 풍문으로 들었다. 돈은 그렇다치고 아예 푹 빠져서 가족들과 이별하기도 한단다. 살벌한 풍문이다.

  그들은 다단계 사업의 밑바닥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패턴은 큰 틀에서 같다. 이론같은 다섯 단계. 지나가던 이를 붙잡고 그들은 자신을 ‘사람을 공부하는 이’라고 소개한다. 칭찬 혹은 그 사람에 대한 평을 한다. 자리를 옮겨 카페에 가자고 한다.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새롭게 자리를 옮겨 그들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자고 한다. 마음과 뜻이 같은 이들이 모인 그 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마지막 단계는 알 수가 없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촉이다. 호기심은 그만 채우고 그 곳은 가지 말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카페를 가자, 함께 공부하는 이들이 있는 곳을 가자, 두 마디는 이정표이자 경보를 울리는 말이다. 그 순간 이들은 내가 만난 또다른 그들, 일행이다.

  처음엔 궁금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얼굴엔 인생이 담겨 있다던데 어떤 사람이 나의 얼굴만 보고 지나가다가 붙잡는게. 게다가 나를 꿰뚫어보는 듯한 말도 한다. 한참 길에서 서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거절을 못해서도 있겠지만 궁금해서가 더 컸다. 난생 처음보는 사람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들. 좋은 말을 해준다. 기운이 좋아요. 많이 베풀고 살 것 같다. 그릇이 크다. 그들을 꽤 자주 만나고 난 요즘은 어련히 또 칭찬이 쏟아지려니 한다. 그래서 조금은 듣고 있는다. 누가 나에게 그런 좋은 말을 해줄 일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 진심이든 아니든 기분이 나쁘진 않다. 거절의 멘트도 좀 늘었다. 바쁜 사정이 있어 다음에 만나면 주의깊게 듣겠다고 한다. 좋은 말씀 감사하다고 한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하면 인연이라면 다시 만날테니 오늘은 이만 헤어지자고 한다. 쓰고 보니 이런 나도 좀 이상하긴 하다. 나에겐 그들이 흥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설득하고 제안을 반복할까. 그들에게 어떤 만족감이나 보상이 되는 일일까. 그들은 왜 ‘사람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는가. 길에서 잡는 사람들은 무슨 기준으로 말을 거는 것인가.(나의 짐작은 있지만 직접 듣고 싶다)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만 봐도 뭔가 해석이 될만한 것이 느껴지는 건가. 혹은 메뉴얼처럼 대충 맞을만한 것들을 던져보고 월척이네 하고 몇몇을 잡아 건지는 건가. 주축이 되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들의 접근방식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다음에 만날 땐 꼭 물어봐야지 하면서도 아직 제대로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들의 가정이 맞다고 치자. 그들은 현재 내가 중요한 시기아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나에게 매우 시급한 이야기라고 한다. 바쁘다고 말하면 무척 아쉬워한다.(혹은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매번 궁금했는데, 왜 꼭 카페에서 혹은 그들의 동료들이 모인 곳에서 얘기를 나눠야 하는건가? 그렇게 중요한 얘기라면 토막토막이라도, 아주 중요한 얘기를 길에서라도 말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중요한 얘기에 왜 특정 장소가 필요한 것일까? 내 촉이 그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것은 결국은 이 간단한 의혹 때문이다. 나를 움직이게 하고 싶다면 칭찬보다는 이 질문에 대한 납득이 가는 답변이 필요하다. 그들이 적어도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는, 믿을 수 있는 낯선 사람이라는 근거.

  택시를 타거나, 길을 헤맬 때는 상대방에게 이만큼의 믿음이 필요하지 않다. 어쩌면 그들은 생각보다 사람을 잘 보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그들에게 더 많은 믿음이 필요한 건 나를 처음 보면서 이렇다 저렇다, 오래 본 사람마저도 판단하기 쉽지 않은 내면의 모습이나 성격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감사할 때도 있다. 우습게도 그 말이 때때로 내게는 도움이 되었다. 나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잘 하고 있다며 따뜻한 말을 해주기 때문이다. 거짓이더라도 기대고 싶은 한 마디 한 마디. 세상에, 칭찬 결핍인가봐.

  그들을 만나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포춘쿠키를 발견하고 열어보는 것 같다. 이상하게도 아주 미운 존재는 아니다. 나름  근거는 모르겠지만 말솜씨도 좋은 편이다. 나를 당황시킬 수 있는 말, 궤변이라도 그렇듯하게 말할 수 있는 말솜씨를 보면 흥미가 생긴다. 오 말 좀 하는데, 하면서 들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오늘 지나가다가 잠깐 그 사람의 이야기를 못 이기는 척 들었던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영혼이 맑다, 기운이 좋다라는 말 대신 그녀는 나에게 눈빛도 기운도 강렬하고 세다고 했다. 속에 품은 것이 많고 불도 가득하다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내뱉는 말이 센 편이라고. 지금은 베푸는 것에 비해 돌아오는 것이 적지만 서운해하지 말라고. 부모님이 어떤 분이실지는 모르지만 아주 소중한 존재이고 손에 쥔 것들이 많다고도 했던 것 같다. 내가 그녀의 말을 그만 듣게 된 건 그녀가 5-10분을 내어 길에서 이야기하는 대신 또다시 카페로 가 차 한잔을 하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막내인 나에게 장녀같다고 했지. 금방 장녀 노릇을 하지 않느냐며 바꿨지만 여튼 헛다리는 헛다리 아닌가. 공연을 보러가야해서 바쁘다는 내게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인데 다른 것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살지 말라고도 했다. 나는 저번에 다른 사람의 말문을 막았던 대답을 썼다. 오늘은 귀담아 듣기가 어려우니 다음에 만난다면 꼭 듣겠다고. 인연이라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달랐다. 다음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에이, 안 통하네.

  이번엔 예전보다 조금 더 멈칫했었다. 예전에도,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듣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내 눈빛이 강렬하다는 말은 내가 태어난지 얼마 안됐을 때 옥탑방에 기타를 치던 오빠에게서 들었던 얘기였다. 아직 애기인데도 눈빛이 강렬하네요. 말이 세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정말 얼굴에 보이는 걸까. 그 전까진 순하고 맑은 영혼이랬는데. 여태까지와는 조금 다른 평에 조금 호기심이 돋았던 건 사실이었다. 어쩌면 내심 내가 깨닫고 있는 저 단계를 따르지 않길 내심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서라도 꼭 이야기해드리고 싶다고 했으면 나는 더 많이 흔들렸을까.

  하지만 그녀의 말을 더 듣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는다. 적당한 선에서 잘 끊었다. 그래도 한 마디는 남았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말. 귀에서 맴돌았다. 영화 같은 일이다. 그런 명대사 같은 말을 실제로 듣게 되다니. 이 참에 정말 주인공이라고 인식하고 살아야지 다짐했다. 이상하게 마음은 든든해졌다. 주인공으로 살테니 걱정말라고,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라고. 나도 안다. 다음은 없다. 그녀를 다시 만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이 정말 지나가는 사람의 기운이나 눈빛만 보고도 알아차린다면 나는 더 멋지고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어서 새로운 말을 듣고 싶다. 뭐 아님 말고. 좋은 칭찬 감사히 들었다고 생각하고 잊을 만하면 돌아오는 희한한 날이네 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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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다른 것. 사이비. 나는 저 말을 들으면 늘 질문이 꼬리를 문다.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근본적으로 다른가? 그들이 속한 어떤 종교, 혹은 어떤 공부는 다른 종교나 공부와는 무엇이 다른가? 돈을 내게 만들고 단체를 운영하는데 쓰고 지속적으로 구성원이 되도록 유도하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에도 있는 일이다. 물론 자발적이냐 강제적이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련의 규칙들이 의무가 된다는 것은 같지 않은가. 괜찮은 사이비와 안 괜찮은 사이비가 있는가? 사이비가 있다면 반드시 없어져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에서 공생해야 하는가? 폭력과 억압이 있어서 그들이 사이비인가? 현실에서는 보통의 사람들이 폭력과 억압을 하고 있지 않은가? 신체를 해치거나 자유를 빼앗고 인권을 소중한 이들과 헤어지게 만들어서인가? 그렇다면 수많은 전쟁은 그렇지 않았나? 의미있거나 용인될 수 있는 인권 침해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는가? 겉보기엔 살기 좋은 세상같지만 사회에서 느끼고 있는 개인적, 구조적 부조리는 모두의 이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익과 만족의 차이인가? 사이비는 소수의 개인의 사익이나 만족을 추구하고 사이비가 아닌 것은 모두의 이익과 만족을 추구하는가?

  한 가지로 귀결되는 질문이다. 사이비를 구분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준이 있는가? 물론 나는 그들을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믿고 싶어지지도 않고 맞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슬프게도 근거는 없다. 판도라의 상자 같은 느낌이라 열지는 않고 있지만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한 평가가 남았을 뿐이다. 그들의 어떤 말에 덜컹거리듯 흔들거리는 나는 근본없이 흔들리고 있는 것인가. 웃기지 않은가. 사이비가 전하는 말에게 따뜻함을 느끼고 기운을 느끼는 것은 근본적으로 정상적인 일인가. 무엇이 근본이고, 무엇이 정상인가? 진실은 무엇이고 진리는 무엇인가. 다수가 생각하는 것? 소수의 뛰어난 사람이 정리한 것? 자연 속에 녹아 있는 것? 인류가 발견해낸 것? 그것도 아니면 내 안에 있나? 수많은 그들을 만들어 낸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 모든 게 현혹당한 것인가, 혹은 깨달음의 조각을 조금이라도 보여준 것인가.

  한 가지는 늘 진심이었다. 좋은 말씀 감사하다는 건 빈말이 아니었다. 것보다 시간만 있으면 난 정말 말하고 싶다. 저야말로 여러분이 궁금하다고. 칭찬을 돌려주고 싶다. 여러분이야말로 정말 큰 그릇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나는 파악당하기보다 내가 그들을 파악하고 싶다. ‘공부’는 언제, 왜 시작하셨어요? 그 공부가 그렇게 좋은 거라면 혼자서 공부하는 경우는 없나요? 여럿이 공부하는 건 잘 안 되는 사람도 있잖아요. 제 그릇이란 건 운명적인 건가요? 그릇이 정말 그릇 모양으로 보이나요? 그릇의 크기는 어떻게 아는 거죠? 공부를 하다보니 배움의 지평이 넓어지시나요? 언제가 제일 보람차세요? 대화의 주도권은 내가 갖고 싶다. 카페를 가자고요? 음,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요. 잠깐 시간 내셔서 서 있는 동안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의심스럽냐고요? 당연하지 않을까요. 여러 사람들이 저한테 똑같은 멘트를 말씀하니까 경계가 되지 않겠어요. 제가 좀 믿음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서요, 말도 많고요. 저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느껴지시지 않으세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잖아요. 다음은 없을텐데 말입니다.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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