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묻은 것을 파헤쳐라,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

글 입력 2018.03.2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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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묻은 것을 파헤쳐라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


모래사장에서 극이 진행된다. 모래사장에 햄릿과 주변 인물들이 파묻혀 있다. 그들은 모래사장과 같다. 오랜 시간 동안 풍화된 작은 잔재들이고, 삽을 뜨면 신을 벗어 초라한 발바닥이 보이는 시체들이다. 그들은 시체지만, 생명을 잃었을 뿐인 무가치한 유기체가 아니다. 모래사장 속 파묻힌 시체들은 시간의 폭풍 속에서 묻혀있기 때문에 모래알같은 무수한 역사다. 극의 전체적인 구조는 호레이쇼가 모래사장에 파묻힌 햄릿과 주변 인물들을 무덤에서 파내고 연극을 하면서 진행된다. 원작에서 햄릿에게 '살아남아 덴마크 왕국의 비극을 알려라'라는 부탁을 받은 호레이쇼는 현대적인 예술가로 표현된다. 호레이쇼는 햄릿의 시체가 시간 속에서 풍화된 모래알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시체를 '시간'이 묻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묻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를 돕는 것은 무덤을 파는 인부들이다. 인부들은 광대역할을 맡아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의 극과, 호레이쇼가 재현하는 <햄릿>의 극을 자연스럽게 오간다. 연극의 연극, 연극의 연극의 연극을 오가는 이들의 행보는 광대를 닮았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에게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는 단순히 현대인에게 던지는 사유에 관한 고찰이면서, 예술의 역할을 정의하는 실험극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쓴 <햄릿>의 절정은 햄릿이 오필리어의 아버지를 죽인 순간부터 시작된다. 오필리어에게 폭언을 쏟은 그는 이 이후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하지만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은 연극을 하는 순간에서 극을 마무리 짓는다. 관객들은 물론이고 광대를 연기했던 광부들조차 '완성되지 않은' 연극에 불편함을 느낀다. 호레이쇼에게 이 연극에서 중요한 것은 애당초 햄릿의 고민이었지, 결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연극에서 종결을 바라는 관객들에게 이러한 결말은 불안정하고 미완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연극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결말을 요구한다. 오늘날 영화 하나 조차도 잘 정리된 수많은 요약 영상이 유튜브에서 성행하고 있는 것도, 그 누가 정의했건 이 영화는 알고보니 이러이러하더라, 라는 결론을 내려줘서가 아닐까? 우리는 늘 화장실의 타일이 가지런 하길 바라고, 가게의 초코렛들이 일자로 가지런하게 배열되길 바란다. 안정을 찾는 인간들은 조금씩 안정된 질서를 바란다.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은 인간의 그런 특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실 햄릿이 그런 인간이었다.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들처럼 조용히 고개 숙이고 받아들이면 될 것을 굳이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어 문제를 만든다. 하지만 햄릿의 행동이 파묻혀진 도덕과 윤리를 기반으로 시작된 것처럼, 그의 행동에는 또다른 진실이 있다. 햄릿은 묻은 것을 파헤친 인물이었다.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는 묻고 파헤치는 행위를 반복한다. 인부들은 원래 시체를 묻는 일을 했었고, 극을 시작하면서는 무덤을 파헤쳤다. 극중극이 끝났을 때 그들은 무덤을 다시 묻었다. 인부들은 가볍고 유쾌하게 무덤을 묻고 파헤치지만 정말 이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해맑게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증거는 그들이 무덤을 뒤지고 묻을 때 부르는 노래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들은 노래 부른다. '정글 숲을 지나서가자. 엉금 엉금 기어서 가자. 늪지대가 나타나면은, 악어떼가 나온다! 악어떼!' 이들에게 뭔가를 묻고 파헤치는 일은 정글숲을 지나서가는 것이다. 언제 악어떼가 들이닥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은 늘 불안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서둘러 일을 끝내려 하고, 파헤치는 것을 어려워한다. 인부들이 마지막에 '파헤치는 것보다 묻는 것이 적성에 맞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 때문이었다.

극 중에서 이들과 같은 적성을 가진 사람이 있으니, 바로 햄릿을 제외한 거투르트, 오필리어, 클로어디스다. 그들은 햄릿이 뿌린 쪽지를 땅에 허겁지겁 묻고, 사진사 앞에서 활짝 웃는다. 거투르트와 오필리어는 남자라는 거대한 권력에 살아남기 위해 어색하게 걷는 법을 공유하고 화려한 웃음을 짓는다. 여기서 이들뿐만 아니라 관객에게 하트 모양을 요구하며 사진을 찍는 부분에서 우리는 연출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고, 어색하게 걸어가며, 쪽지를 땅 속에 묻는 사람들이다. 햄릿과 호레이쇼는 대척점에 선 이들이다. 그들은 시체를 파헤쳐 다시 살리고, 덴마크 왕의 죄를 온 사방에 뿌리고 고발하는 자들이다. 이들의 행동은 문제를 만들고 자신들을 파괴하기까지에 이른다. 하지만 그들은 있었던 것을 파헤쳤을 뿐이다. 인부들은 이 중간에 선 이들로서, 무덤을 묻고 파헤치는 사람들이다. 극 중에 따르면 광대들은 얼굴도 없고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미천한 자들이지만 연극을 한다. 그들은 장막 뒤를 장난스럽게 들추는 자들이다. 그들의 행동은 한없이 가벼워 보이지만, 언제나 엄청난 것들을 공개한다.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은 잘 짜여진 구조 속에서 그 어떤 이야기에도 진지하게 몰입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게 하는 것이 광대의 역할이었다. 햄릿의 슬픔에 공감하기에는 장면이 자주 교체되고 유쾌한 극중극이 진행된다. 인부들의 깔깔대는 콩트 속에서 햄릿의 슬픔은 관객으로부터 조금 멀리에 서있다. 하지만 그 덕에 관객들은 작품의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예술이라는 것이 그렇다. 단순히 감성에 호소하지 않고, 다양한 위트에서 유지된 거리에서 인간의 문제와 사회의 고통에 대해서 생각한다. 공연장을 나오면서 가장 모자라보였던 그들이야말로 호레이쇼보다 예술가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했다. 필자에게 <멈추고, 생각하고, 햄릿>은 광대의 얼굴로 기억된다. 온통 깔깔 웃음에 여러 과장이 있지만, 그 웃음에 딸려온 것은 문제의식과 예술에 관한 깊은 성찰이었다. 인부들은 파헤친 것을 다시 묻었지만, 모랫사장에서 삐죽 나온 그 발은 도저히 잊혀지질 않는다. 광대가 마지막 삽을 뜨기 전 보였던 햄릿의 얼굴이 잊혀지질 않는다. 그래서 강렬한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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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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