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한 입] 돌아왔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잠시 쉬어가도, 달라도, 평범해도 괜찮아!
글 입력 2018.03.21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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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필름 한입
<리틀 포레스트>


*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이번 편에서 다루는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로, 모리 준이치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원작’ 혹은 ‘원작 <리틀 포레스트>’로 표시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작품들의 실제 원작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 <리틀 포레스트>입니다.
** 영화나 영화 속 요리 자체보다 일본 원작과의 비교가 듬뿍 들어간 리뷰입니다.


 2월 28일, 벌써 신년이 6분의 1이나 지나갔다는 생각과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당일 개봉한 <리틀 포레스트>를 보기 위함이었다. 모리 준이치 감독의 원작을 사랑했던 나로서는, 너무나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는 영화였다. 그리고 그 기대는 어느 정도의 충족과 실망, 그리고 그에 대한 이해로 돌아왔다. 오늘은 한국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개봉한지 3주가 되는 날이므로, 그 기념으로 이번 화를 또다시 작은 숲으로 장식해볼까 한다. 지난 겨울 써냈던 원작의 작은 숲은, 올 겨울 허기를 채우는 한 입, '리틀 포레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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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어가도, 달라도, 평범해도 괜찮아!
모든 것이 괜찮은 청춘들의
아주 특별한 사계절 이야기”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도시에서 취업, 연애, 시험 등에 실패하고 고향인 시골로 돌아오는 혜원의 이야기다. 더불어, 혜원처럼 시골로 돌아온, 혹은 시골에 여전히 남아있는 친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이야기’라는 호칭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데, 굴곡 있는 스토리보다 소중한 장면 장면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적당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사계절 필름 조각조각이다. 그 조각조각에는 혜원의 요리들이 반짝반짝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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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원작을 닮은 듯 닮지 않았다. 닮지 않았다고 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로컬라이징이다. 영화는 한국 시골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담았다. 특히 음식이 그러했다. 비슷한 음식이더라도 조금 더 한국화 시킨 것이다. 예를 들어 혜원이 했던 떡이 그러하다. 원작에서 주인공이 하는 베이킹은 떡이 아니라 케이크였다. 그대로인 부분도 제법 있었지만 빠지고 바뀐 부분도 많았다. 혜원과 혜원의 엄마의 요리에서 기존의 모습과 변화를 찾을 수 있어 새로운 재미가 있었다.

 바뀐 음식 안에서 어떤 부분이 한국적이고, 또 왜 그렇게 바뀌었는지 추측할 수 있는 것도 재밌었다. 예를 들어 ‘떡볶이’가 그러했다. 떡볶이라는 음식 자체에 계절감은 부족했지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매운 것을 먹는 모습은 원작에 없던 흐름이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미디어에서 스트레스 받은 주인공이 비빔밥을 해먹었던 것처럼, 한국 영상의 익숙한 공식이 들어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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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의 분위기도 일본의 시골과 제법 달랐다. 외적으로도 그런 부분이 있지만, 주변 인물들의 비중이 매우 커졌다. 혜원의 친구들 재하, 은숙의 비중이 많이 늘어났다. 원작에서의 잔잔하고 조용한 느낌보다 공동체의 시끌벅적함이 추가되었다. 무엇보다 한국 영화에서 자주 다뤄지는 그놈의 ‘청춘’이 이 영화에도 하나의 키워드로 작용했다. 도시생활의 각박함에 시골로 돌아가는, 뭐든 괜찮은 청춘의 이야기로 새롭게 각색된 것이다.

 반면 그간 한국 영화에서 쉽게 접하지 못했던 배려들을 곳곳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오구의 등장이 그 시작을 알린다. 원작에서도 고양이가 주인공의 반려동물로 등장했지만, 오구의 등장과 함께 재하가 날린 한 마디는 이 영화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한다.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라는 대사다. 대사처럼 영화는 의지를 주는 온기의 동물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원작과 달리 영화 속 요리에는 고기가 전혀 쓰이지 않는다. 동물권을 지키기 위해 임순례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살생금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따라서 영화에서 간간이 등장했던 작은 동물들, 송충이, 개구리 모두 촬영 이후 자연으로 다시 돌려보냈다고 한다. 물론 엔딩크레딧에도 동식물에게 감사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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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그러나 엄마와 농사, 두 가지의 영향력은 그대로였다. 혜원은 끝없이 요리 안에서 엄마를 쫒는다. 엄마가 해줬던 요리, 엄마가 해줬던 말들, 엄마가 떠난 이유들을 더듬어가며 일 년을 살아낸다.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혜원은 본인의 삶을 다시금 찾는다. 농사는 이런 과정 속의 조력자다. 굶주리는 혜원에게 늘 풍부한 음식 재료를 선사한다. 사계절을 따라 흘러가는 농사일은 혜원을 움직이게 하는 또 하나의 원동력이다.

 아쉬운 부분이 분명 있다. 현지화되며 친구들의 비중이 늘고, 청춘이 강조되는 것은 사실 기대와는 다른 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이해할만한 각색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인 혜원이 스스로 무엇을 하는 과정에 대해 많이 생략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원작이 2편으로 나눠 나온 것에 비해 2시간밖에 되지 않은 러닝타임이었기에 간소해질 수는 있으나, 여성 주인공이 농사, 요리, 시식까지 설명하고 보여주는 장면들이 추려진 것은 ‘아까웠다’. 디테일이 유지되었으면 더 지루하긴 했어도 더 진득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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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관객수가 백만을 돌파했다. 농사짓고 요리하고 먹는 것이 전부인 영화에 힐링을 느낀 관객들이 원작을 찾는 것에 응답하듯, 원작 <리틀 포레스트 : 사계절>이 22일 개봉한다. TV프로그램 <삼시세끼>에 이어 다시 한 번 젊은이들의 마음을 흔드는 시골 열풍이 불어온다. 한편, 모든 것이 괜찮다며 시골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힐링을 외치는 요즘, 슬로우 라이프가 각광받는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편안한 도시의 삶보다 불편하지만 여유로운 어느 시골에서의 삶이 더 그리워진다는 것은, 과정은 물론 결과조차 불분명한 우리네 삶의 각박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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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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