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색소폰, 그 이중적인 매력에 대하여 [공연]

글 입력 2018.03.2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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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샤 파테예바 Saxophone>

2018.3.15
금호아트홀


  오랜만에 보는 클래식 공연에 부푼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아갔다. 엄청나게 큰 공연장일 줄 알았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금호아트홀은 무대와 좌석 간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덕분에 연주자의 표정, 움직임까지 세세하게 볼 수 있었다. 공연장을 가기 전, 젊은 연주자의 공연이라 2030대의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클래식 공연이라 그런지 중장년층 분들이 많이 오셨던 것 같다.

  입장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의 연주자 아샤 파테예바가 무대에 올랐다. 중후한 남자의 악기라고 생각했던 색소폰을 젊은 그녀가 어떻게 연주해낼지 무척 기대되었다. 연주회는 페르낭드 드크뤽의 색소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라는 곡으로 시작되었다. 단조로운 듯 경쾌한 듯 첫 곡으로 무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엄청난 호흡으로 연주를 이어가던 아샤 파테예바였다. 꽤 오랫동안 색소폰을 배우셨던 분께 색소폰은 연주하기가 참 힘든 악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관악기들이 거의 비슷하긴 하겠지만 특히나 색소폰은 조금만 호흡을 잘못하면 음이탈이 난다고 하셨다. 그리고, 호흡을 잘 할수록 연주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풍요로워진다고 말씀하셨었다. 과연, 현장에서 직접 들으니 어떤 말씀이었는지 한 번에 이해가 되었다. 아샤 파테예바의 연주는 흐름이 참 자연스러웠고 소리가 참 다채로웠다. 그녀가 한 번씩 숨을 다시 들이쉴 때마다 얼마나 깊은 호흡을 오랫동안 이어가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연습을 통해 다져졌을 것을 생각하니 그녀의 연주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다.

  소나타에 이어 1부는 샤를 쾨클랭의 피아노와 색소폰을 위한 15개의 에튀드, 그리고 윌리엄 올브라이트의 알토 색소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로 이어졌다. 1부의 마지막 곡을 시작하기 전, 아샤 파테예바는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색소폰은 관악기들 중 아마 가장 어린 악기일 것이며 베토벤과 모차르트 같은 작곡가들이 사망한 이후에 발명되었기에 색소폰을 위한 곡들도 상당히 어리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곧 연주할 윌리엄 올브라이트의 곡은 15세기에 나온 곡으로 오늘 연주할 곡들 중 가장 어리다고 이야기했다. 젊은 그녀가, 젊은 악기인 색소폰으로 젊은 곡을 연주한다니 더욱 궁금해져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곡은 경쾌한 동시에 웅장하기도 했으며 감미로운 동시에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의 연주는 강한 동시에 부드럽기도 했고, 소리는 무겁기도 했지만 가볍기도 했다. 곡을 이해하기 힘들긴 했지만 그녀의 설명대로 색소폰의 색다른 면을 감상할 수 있는 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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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에서는 한결 익숙한 곡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연주회에서 제일 기대되었던 거쉬인의 곡을 시작하여 로버트 무친스키의 알토 색소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그리고 오페라 <카르멘>의 음악으로 귀에 익숙한 프랑수아 본의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비제의 카르멘 판타지 주제에 의한 화려한 환상곡을 끝으로 연주회가 마무리되었다.

  1부에 비해 연주자들 모두 긴장이 많이 풀린 듯했고, 나 또한 연주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랩소디 인 블루'라는 곡을 통해 알게 된 거쉬인의 곡은 확실히 클래식이지만 특유의 재즈 느낌이 묻어나는 것 같아 즐겁게 들었다. 사실 오페라 <카르멘>의 환상곡은 플루트 연주곡인데 이 곡을 알토 색소폰으로 들으니 더욱 감회가 새로웠고 기대했던 거쉬인의 곡보다 더 인상 깊었다. 플루트의 가볍고도 빠르고 경쾌한 소리가 색소폰의 음색으로 바뀌니 색다른 매력이 느껴졌었다. 좀 더 낮고 무게가 있음에도 플루트만큼 빠르고 경쾌한 기교가 카르멘의 관능적이면서도 정열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아샤 파테예바의 클래식 색소폰은 내가 알던 모든 편견들을 전복시켰다. 가장 중후한 소리를 가졌다고 생각했던 색소폰은 가장 젊은 악기 중 하나였다. 또한, 낮은 소리로 인해 무겁고 느린 연주만 가능할 것 같다는 예상과는 달리 아샤 파테예바는 빠르고도 경쾌하고 화려한 색소폰 연주를 통해 여느 관악기를 뛰어넘는 색소폰의 매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번 연주회의 주인공인 아샤 파테예바 그녀 또한 색소폰 연주자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편협한 생각을 완벽히 뒤엎어버렸다.

  오랜만에 좋은 공연을 통해, 잠깐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던 동시에 내가 가지고 있던 편협한 생각들에 대해 반성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색소폰이 재즈만을 위한 악기라는 생각을 깨고, 클래식 색소폰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아샤 파테예바의 앞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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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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