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오늘 와서 내일 머무를 사람 : 연극 < 성 The Castle >

연극 < 성 The Castle > 프리뷰
글 입력 2018.03.2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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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와서 내일 머무를 사람
 

그레고르 잠자 씨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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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이다. 흔한 예고 하나 없이 잠자 씨는 해충으로 변신한다. 결과가 있다면 원인도 있는 법이건만, 그를 해충으로 만든 게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잠자 씨도 모르고 카프카도 모른다. 잠자 씨는 그저 불안한 꿈을 꾸다가 깼을 뿐이고, 자신이 벌레가 되었음을 발견했을 뿐이다.

첫 문장에 승부를 건다는 카프카는, 「변신」의 첫 문장에서 모든 것을 보여준다. 참 이상도 하지? 보통의 변신 서사는 변신 전과 변신 중과 변신 후로 나뉘는데(어린 시절 보던 마법소녀 만화를 떠올려보시라!) 잠자 씨의 이야기는 변신이 끝난 상태에서 시작한다. 변신 전과 변신 중이 나왔다면, 잠자 씨가 왜 벌레가 되었는지, 다시 인간의 육체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겠건만, 카프카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 잠자 씨가 벌레가 된 것은 카프카가 이방인이 된 것만큼이나 갑작스럽고, 원치 않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삶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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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은 체코였고, 육체는 유대인이었으나, 언어세계는 독일의 것이었던 카프카는 그야 말로 유럽세계의 갑충이었다. 다른 말로는 이방인. 인간을 이루는 삼위의 정체성, 공간과 육체와 정신이 모두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상황에서, 카프카는 한 집단에 완벽히 동화될 수 없는 이방인이었던 거다. 그는 한 공간에 육체와 정신이 항상 머무르는 동향인이 아니었고, 한 공간에 육체와 정신이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방랑자도 아니었다. 동향인은 어제나 오늘이나 여기 머물면 된다. 방랑자는 오늘 와서 내일 가면 된다. 그러나 이방인은 오늘 와서 내일 머무는 사람이다. 그곳에 완벽히 동화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곳을 떠나진 못하는 사람. 그가 바로 잠자 씨이자 카프카 자신인 것이다.

 
[국립극단 포스터] 성 The Castle_180323-180415.jpg
 


줄거리

K가 마을에 도착한다.

자신을
토지측량사로 고용한 성으로 가기 위해
눈보라와 어둠을 뚫고 왔으나,
미처 다다르기 전에 날이 어두워졌다.

그는 하룻밤 묵을 여관을 겨우 찾아 숙박을 부탁한다.
하지만 여관 주인과 마을 사람들은 K를 의심한다.
그들의 의심이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 알 수 없다.
 
마을에 도착한 이후 엿새 동안 K는
이들의 의심을 뚫고 성에 갈 수도,
성에서 파견된 관리를 만날 수도 없다.

이방인인 K에 대한 경계와 감시는
마치 비밀협약처럼 마을 사람들에게 만연하고,
성에서는 간혹 심부름꾼을 통해
엉뚱한 메시지만 보내오는 게 전부다.

그러나 K는 좌절하지 않고
성에 가려고 하는데...




잠자 씨, 카프카 씨, K 씨, 그리고 우리

‘오늘 와서 내일 머무를 사람’이 비단 카프카뿐일까. 중세엔 신을 통해, 근대 초기엔 이성을 통해 세계와 인간은 합일할 수 있었다. 특히 근대 이후의 인간은 이성과 합리를 통해 올바름으로 나아갈 것이라 굳게 믿었던 거다. 그러나 어디 세상이 그러한가. 인간이성의 소산인 과학이 거대 살상무기를 만들어 내고,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는 것을 모두가 똑똑히 목도했다. 그래서 인간은 회의하기 시작했다. 아, 이 세상엔 절대 불변하는 질서란 없구나. 세상은 무질서하고 의미 없으며 혼란하구나. 그리고 그 무질서 속에서 ‘내던져진’ 채로 우리는 평생을 불안하게 살아가야 하는구나. 잠자 씨와 카프카 씨는 곧, 우리 고독한 현대인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


[국립극단]성_홍보사진_03.jpg


“성에 다 온 것 같았는데,
이렇게 내려가면 또 다시 멀어질 것 같은데.
바로 코앞에 보이는데,
하루 종일 걸어도 입구에 닿질 않네.“


그리고 여기, 카프카의 마지막 페르소나가 있다. K는 성에 편입하려고 하지만, 그의 여정은 번번이 좌절된다. 이 기묘하게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K는 정체모를 불안함과 고독을 느낀다. 카프카의 유작으로 완결을 보지 못했던 <성>은, K가 성으로 향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 존재가 경험하는 세계의 폭력과 불안함의 민낯을 담는다. 카프카가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했던 것처럼, K도 성에 정착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소외된다. 카프카의 마지막 페르소나인 K를 통해, 우리는 다시 카프카 씨를 만나며, 고독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우리네 자화상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카프카의 소설로 만든 한 편의 무대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부술 수 있을지, 그 도끼의 날이 제대로 갈려 있을지, 이는 한 번 두고 볼 일이겠다.



공연정보



INTRODUCTION


성 The Castle

공연시간
평일 7:30PM, 주말 3PM(화 쉼)

소요시간
150분 예정(휴식 15분 포함)

관람연령
17세 이상 관람가(고등학생 이상)

입 장 권
R 5만원 | S 3만 5천원 | A 2만원

예매문의
1644-2003 | www.ntck.or.kr


CREATIVE STAFFS

원작_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각색_ 이미경

연출_ 구태환

무대_ 박동우  ㅣ 조명_ 구태환 ㅣ 의상_ 오수현 ㅣ  음악_ 김태근
움직임_ 남긍호 ㅣ  분장_ 임영희 ㅣ  소품_ 송미영 

출연
K役_ 박윤희   프리다役_ 정새별   가르데나役_ 박현미
올가役_ 장지아   바르나바스役_ 홍아론  아말리아役_ 강해진
예레미아스役_ 조판수  아르투어役_ 박경주  게어슈테커役_ 김정환
에어랑어役_ 최지훈  촌장役_ 김희창   교사役_ 김성철
슈바르처役_ 임준식  페피役_ 박가령  
코러스(농부, 하인 외)役_ 권형준, 조성국, 이동규, 강주희, 고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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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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