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전화벨이 울린다

가짜들의 세계
글 입력 2018.03.2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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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콜센터, 그 곳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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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 위에는 칸막이로 나눠진 공간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유리 막에 걸려 있는 헤드셋. 콜센터라는 공간을 그 누구라도 인지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보통 공연 시작 전 공연 세트장의 조명이나 분위기에 따라 그 극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밝음 속에 반전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들어가 앉아 둘러 본 무대는 어둡고 또 무거웠다.
 
 극이 시작되고, 열심히 콜을 받는 비정규직 직원들. 벌써부터 불안정한 글자 하나를 달고 있다. 비. 비극이다. 사무실 뒤로는 체계적으로 얼마나 전화 응대를 하는 지를 보여주며 등수까지 매기고 있다. 일인가, 아니면 단지 싸움인가. 콜이 저조하면 바로 비난을 받고 사과를 해야 한다.
 
 웃으며 응대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1등과 꼴찌. 꼴찌 수진은 팀장에게 비난을 받는다. 표정부터 목소리 톤 그리고 팀장이 부른 곳에서 들려 온 자신의 목소리.
 
“아, 개새끼......,
아침부터 왜 소리 지르고 지랄이야.
아! mute를 안 눌렀다!”
 
 개새끼라는 욕을 고스란히 듣게 된 고객은 노발대발 뭐라고 했냐며 화를 낸다. 팀장은 왜 참을 줄을 모르냐는 소리를 또 하고 또 한다. 꼴찌인 수진과 달리 일등은 아무리 진상이어도 항상 웃는다. 웃으며 응대하고 마치 웃는 게 자신의 천성인 것처럼. 점심시간에 비결을 물어보니 "뭣 하러 그런 사람들 때문에 상처 받니. 그냥 웃어버려. 내 귀에는 가짜인 웃는 나를 진짜라고 생각하고 마땅히 내야할 화까지 전부 참아버려, 삼켜버려." 슬픈 현실과 멀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가짜 나를 안고 진짜 나를 버리는 많은 사람들.
 
 이런 비극적인 일들이 반복되는 콜센터의 일상과 적응하여 앞으로 앞서나가는 사람.
 
 

2) 일등, 그녀 가짜 가면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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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진은 그 이야기를 잊지 못하고 계속해서 곱씹는다. 도대체, 어떻게, 억지로 나의 감정을 바꾸는가. 그러다 옥상에서 연기 연습을 하는 연극배우 민규를 만나고 연기 연습을 배우게 된다. 많은 질문들. 민규는 의아심이 깊어진다. 대체 왜, 연기와 다르게 그저 자신을 버리고 가짜인 자신을 진짜의 자리에 놓으려고 하는 걸까. 일등의 그 비결을 자신도 똑같이 가지면 돈도 얻고 신뢰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굳은 믿음.

 결국, 수진은 진짜 자신을 숨기고 (혹은 버리고) 상대의 욕설과 웃지 못 할 때마저 웃을 수 있는 새로운 가짜 자신을 얻게 된다. 호평과 성과금. 그녀는, 그런 자신을 만들어 준 민규를 술집으로 불렀는데, 바쁜 술집 메뉴 주문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아르바이트생을 통해 알게 된 그녀는 따박 화를 내고, 그런 그녀에게 민규는 당신이 지금 괴물 같다는 얘기를 한다.

 극을 보는 내내 단순히 콜센터 뿐만 아니라 우리는 사회생활 속에서 얼마나 얼마나, 계속해서 진짜 나를 죽이고, 숨기고, 잃어 가는가.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보면 그게 나인지 혹은 가짜의 나인지. 하지만 진짜인 나를 보이는 순간 다가올 위험을 감당할 수가 없다. 갑과 을이 정해진 사회생활 속 가짜만을 추켜세우고 그 결과로 물질적인 보상을 해주는 갑이 밉지만 을은 그저 웃을 뿐이다. 속으로는 울더라도.
 
 회사 일이 너무 힘들어 화장실에 숨어 울다 동료나, 상사를 만났을 때. 너 울었니? 이 말에 솔직하게 네, 힘들어서 울었어요. 가 답일까. 아니면 아니요, 눈이 아파서 울었어요. 가 답일까. 극을 보는 내내 눈물이 나기 보다는 어딘가 답답하고 구역질이 나는 것만 같다. 내 앞에 거울이 있다면 당장이라고 주먹으로 깨부수고 피가 나는 손으로 내 진짜 얼굴을 감싸고 싶은 마음.
 
 

3) 일등의 몰락, 그리고 나를 잃다


 일등. 그녀가 죽었다. 가짜 속에서 죽어가던 진짜가 가짜 속에서 우짖으며 살려달라 울다 울다 가짜와 함께 죽음을 맞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회사는 그녀가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 시켰다며 몰락한 일등을 비난하고, 남은 이들에게 웃음을 강요한다. 그녀는 살고 싶었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단지 가짜인 나로서 살아간 것인데.

 그 안에서 그녀는 울고 눈물에 잠겨 익사하고 있었다. 수진은 그런 것도 모르고 칭찬에 더욱 더 가짜에게 힘을 넣어 준다.
 
 수진은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있다. 그리고 천천히 수진을 제외한 모두가 사라지고 눈을 가린 수진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죽음일까? 또 다른 일등의 몰락인가. 비난 받을 것인가.
   


4) 단순한 콜센터 이야기가 아닌, 그리고 가짜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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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이 끝나고 답답해서 겪어봤기에 그래서 더. 결국 길을 잃어버리고 한참 종로를 헤매다 간신히 지하철 역으로 갈 수 있었다.

 그 동안 내 옆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정말 진짜일까?

 단순히 콜센터의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갑과을, 사회생활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는 이 세상이 존재한다. 그리고 가짜들의 세계를 세우고 그들에게 회사의 명예를 빌미로 죽음조차 진짜 나의 고통조차 티내지 않기를 강요한다. 중요한 이야기이고, 바뀌어야 할 부분이다.

 사람이다. 우리는 살아있고 생각하며 힘들면 힘들다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사람에게 과도한 업무로 과로사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 적절히 사람을 둘 줄 아는 사람들이. 이 일은 개인이 할 수 없기에 이 세상, 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이 나라, 이 곳, 이 사회는, 가짜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가짜가 아닌 진짜들의 세계, 진짜의 나를 보여줘도 괜찮은 곳을 만들기를 바란다.


[白(하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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