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레이디 버드 : 엄마 부정하기 [영화]

이름 부정하기
글 입력 2018.03.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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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name is Lady-Bird!”

엄마와 함께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길,
자신을 크리스틴이라 부르는 엄마에게
레이디 버드는 당당하게 소리친다.

뮤지컬 단원 모집에서도 이 이름을 쓰고,
친구에게도 알려준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말이 이렇게 들렸다.

“나는 크리스틴이 아니야!”

 


이름을 직접 짓는다는 의미


오는 4월 4일 개봉 예정인 영화 <레이디 버드>에서 배우 그레타거윅이 직접 감독으로 나섰다. 그녀는 감독 인터뷰에서 “이름을 다시 정한다는 것은 자기 주체적인 행위이자 새로 이름을 지음으로써 진실한 정체성을 찾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감독의 말처럼 이름을 직접 짓는 행위는 주체적인 행위이지만, 이 과정에서 한 가지 꼭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다. 그것은 바로 본래의 이름을 부정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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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否定)의 대상


‘부정’이란 표현은 단지 자신의 이름을 색다르게 바꿔 보고 싶었던 소녀의 일탈을 너무 극단적으로 진단하는 말이 아닐까?

하지만 레이디버드가 부정하는 대상은 단지 이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단어로 그녀의 행위 동기를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녀는 어떻게든 자기의 고향 새크라멘토를 떠나고 싶어 하고, 원래의 집이 부끄러워 친구의 할머니 집을 자신의 집이라고 하거나, 자기와 가장 가까웠던 친구와도 어쩐지 멀어진다. 이처럼 그녀가 어떤 대상을 '부정'하고자 하는 욕구를 영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그녀가 부정하는 대상의 공통점은 그녀의 주변 환경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의도했든 아니든, 자기의 '뿌리'가 되는 대상들을 거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뿌리’는 그녀의 '엄마'이며 따라서 그녀가 이름을 바꾸고 본래의 이름을 부정하는 행위는 그 이름을 부여한 주체, 자기 이전의 존재, '엄마'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뿌리, 이름, 엄마를 거부해야 자기 자신의 주체는 비로소 자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녀는 러닝타임 내내 엄마와 가장 격렬하게 부딪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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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떠나려는 아이들


영화를 보며 얼마 전 종영한 tvN 드라마 <마더>와, 영화 <미라클 벨리에>가 떠올랐다.

드라마 <마더>에는 주인공 윤복이가 자주 읽어 거의 외우게 되는 그림책 한 권이 있었다. 제목은 <엄마, 난 도망갈거야>로, 엄마에게서 계속 도망가는 아기토끼를 엄마토끼는 끝까지 쫓아간다는 내용이었다. 드라마에서는 아이가 도망가도 절대 자녀를 포기하지 않는 엄마의 사랑을 부각하기 위한 소재로 사용되었다.

이 그림책 내용을 들으며 나는 아이들에게는 엄마를 떠나려는 본성이 있는 것일까? 생각했다. 어쩌면 자녀들이 안전한 울타리를 자신을 가둔 감옥처럼 여기며 답답해 하고, 엄마를 떠나고 싶어하는 마음은 보편적인 감정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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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아이가 엄마를 반드시 떠나야 할 때가 오기도 한다.

영화 <미라클 벨리에>에는 노래에 재능을 발견한 벨리에가 자신이 떠나는 이유를 말하기 위해 청각장애인인 부모 앞에서 수화로 노래하는 장면이 있다. 이렇듯 벨리에는 부모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소통하려 노력하지만, 레이디버드는 부모의 품을 벗어나는데 급급하다.

이처럼 <미라클 벨리에>와 <레이디 버드> 두 영화는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나는 비슷한 설정이지만 자녀가 부모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다. 아마 벨리에는 청각장애인인 부모를 둔 탓에 일찍이 소통의 한계를 발견한 반면, 레이디버드에게는 그럴 기회가 벨리에보다는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때때로 우리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당연히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모두는 언젠가 엄마를 떠나야 한다. 그런데 어떤 모습으로 떠나는지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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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부정


다시, 레이디버드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핵심은 그녀는 엄마를 그리 강하게 부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은 심하게 싸우고, 너무 빨리 화해한다. 그래서도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 던지며 싸우는 엄마와 딸의 모습이 관객들에겐 위태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둘은 서로에게 완전히 등을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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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거윅 감독은 이 영화의 가제가 <엄마와 딸>이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이 영화는 레이디버드의 사춘기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그 시절의 중심을 지탱하는 건 엄마와 딸의 관계다. 이 모녀의 관계는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한 관계”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통해 “안타까울 만큼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두 여인”의 모습을 본다.
 


부정의 결과, 이름의 무게


결과적으로 레이디버드가 ‘크리스틴’을 부정함으로써 다시 ‘크리스틴’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묘하다. 그녀는 새크라멘토를 운전하며 느꼈던 감정을 복기하고, 교회를 제 발로 찾아가고, 엄마에게 ‘I love you’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다른 이에게 ‘크리스틴’이라 말하게 되었다. 그토록 원하던 뉴욕에서, 그토록 싫어했던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가 ‘이름 부정하기’ 혹은 '엄마 부정하기'를 통해 자신과의 거리를 확보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은 어떤 대상을 비판하는 과정과 닮았다.

비판은 대상을 낱낱이 해부함으로써 그 가치를 온전히 드러내는 일이다. 그래서 어떤 대상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대상과의 적당한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대상에 대한 정보를 백퍼센트 그대로 수용하면 풍부한 성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행도 비슷한 개념일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떠나 먼 곳으로 가는 것, 그리고 바보처럼 그 곳에서 다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그곳의 가치를 깨닫는 것. '크리스틴'은 잠시 '레이디버드'로 여행을 떠나 '크리스틴'의 가치를 회복했다.

특히 "어떻게 부모에게 받은 이름을 부르면서 신을 믿지 않을 수 있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녀가 본래의 이름이 가진 무게와 깊이를 온전히 알게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녀가 '이름'의 의미를 '신'이란 개념으로 연결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이름이 시작된 곳, '태초'를 인식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녀는 '이름'이란 곧 그녀의 엄마(부모)이며,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그녀라는 존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총칭하는 대명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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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할 때는 어린아이의 눈물을 보며 왠지 모를 웃음이 터지는 나를 발견할 때다. 이때의 웃음은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라는, 공감을 바탕으로 한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어릴 땐 다 그래.”라는 폭력적인 의도가 아니다. 엄마와 싸우고, 친구를 잃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 때문에 펑펑 우는 레이디버드를 보며 그런 웃음을 지었다. 나도 '그런' 시절을 보냈고, 엄마와 '그렇게' 싸우던 때가 있었고, 엄마에게 '그렇게'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적이 있었다.

이 영화는 지나간 사춘기 시절의 이야기일 수도, 자신이 부정하고 싶은 대상을 더 잘 바라보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 Daum 영화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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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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