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3.27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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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을 쓰기에 앞서, 방향성을 생각하며 올해 작성한 오피니언을 살펴보고, 요즘 고민하는 문제들도 떠올려 보았다. 그 결과 주로 생각하는 키워드는 ‘성장’,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같은 문제였다. 나 자신과 내가 살아갈 인생의 방향성에 대해 아직도 방황을 멈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어떤 작품을 보더라도 이 방향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방황이 너무 길어도 좋지 않겠지만, 나아갈 방향으로의 길을 한 겹씩 쌓으며 걷는다는 느낌으로 생각들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최근에 이러한 고민들에 자극을 준 두 작품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일본 드라마이다. 주제와 소재는 판이하게 달랐으나 주인공들은 같은 선상에서 비교될 수 있는 태도를 보여주었고, 그 공통점과 차이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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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먼저 본 작품은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였다. 굳이 장르를 분류하자면 연애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도 결혼할 남자도 없이 서른을 넘긴 드라마 각본가 린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녀에게는 심심할 때나 큰 일이 생겼을 때, 고민이 있을 때 등 언제든지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두 친구가 있는데, 평상시 대화의 흐름은 보통 푸념이나 후회, ~했으면 ~했을 텐데 등의 ‘만약’ 타령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친구들과 대화를 하던 중 금발의 남자에게 “지금처럼 아무 근거도 없는 망상(타라레바)이나 평생 안주로 삼으라”는 비난을 듣게 되고, 직장에서 다시 그와 얽히며 린코의 삶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원래 린코와 친구들은 도쿄 올림픽 전에 결혼하기를 꿈꿨던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미팅이나 결혼 활동 등 짝을 찾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을 비웃었던 과거를 후회하고, 올림픽이 3년 남은 이 시점에서 ‘~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내용 전개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주인공들이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린코는 망상을 고치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남자의 충고를 들었다고 해서 바로 바뀌지 않는다. 연애를 하기 위해 결심했던 고백은 실패하고, 일에서도 절망스러운 상황을 맞이한다. 금발 남자에게는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보다 상대방의 의중을 먼저 파악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당신과는 연애 못해”라는 말까지 듣는다.

이는 “~만으로도 어디야”라는 생각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창피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두려워서 진심으로 원하는 것에 부딪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린코가 차선에 안주하는 태도를 버리고 최선을 찾아 나서는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망상이란 결국 가만히 앉아 현실을 합리화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름 없다. 물론 현실주의자처럼 보였던 금발 남자도 결국 마음속 깊이 ‘타라레바’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한 후회하고 망상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쉽게 바뀌지 못하는 주인공의 태도도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차선이 아닌 최선을 찾을 수 있다는 최소한의 가능성에서,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대해 생각하느라 진심으로 원하는 것에 부딪혀보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후회할 태도이며 바보짓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종종 후회와 망상에 깊이 빠져 앞으로 나아갈 추진력마저 잃어버리는 나에게, 주저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는 메시지는 아주 강렬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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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라레바 아가씨>의 인물들이 후회와 망상에서 벗어나 나아가는 법을 배운다면, <중쇄를 찍자>는 애초에 후회 따위는 열정의 불쏘시개쯤으로 쓸 것 같은 주인공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주인공 쿠로사와는 원래 유도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인해 운동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새로운 꿈을 향해 출판사로 입사한다. 그녀는 유도에 온 열정을 바쳤던 사람다운 특유의 뚝심으로 회사에 적응해 간다. 그녀의 성격처럼 드라마의 전개도 시원시원하다. 쿠로사와는 문제가 막히면 어떻게든 해결하고, 실패하더라도 온 몸으로 부딪히고, 목표인 “중판출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 친구는 주인공 쿠로사와의 긍정주의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오히려 그녀가 얄미울 정도를 초월한 절대적인 뚝심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 비현실적인 낙관성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타인에 대한 굳은 믿음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장점은 사건이 쿠로사와를 중심으로 전개되고는 있지만, 그녀와 상황,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주변 인물들의 사정도 충분히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냥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세상과 충돌할 수도 있다는 것, 그로 인해 주변에 발생하는 결과를 배울 수 있었고, 모두가 다치더라도 일종의 ‘낙법’을 배우며 성장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처럼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웰메이드 드라마지만, 특히 쿠로사와의 태도가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아마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를 본 직후였기 때문일까.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시간에 얽매이기보다는 앞으로의 미래에 정성을 다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마음에 울렸으며, 어떤 명언을 봤을 때보다도 나에게 큰 힘을 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타라레바 아가씨들’이 그랬던 것처럼, 노력하는 사람들을 촌스럽다며 비웃었던 적이 없지 않았다. 마음을 다 해서 부딪혀보지도 않고, 실패를 겁내며 최선을 다 하지 않았던 적도 많다. 그리고 아직 ‘뭐든지 열심히 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지닌 에너지는 정말로 뜨거워서, 그 안에서 울고 웃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겁이 나더라도 높은 벽에 부딪히는 용기에 벅차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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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작품은 기본적으로 한국과 문화가 다른 일본에서 만들어졌기에 더욱 신선하게 느낀 점이 있었을 것이다. “열심히 하는 일본인”의 이미지는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두 작품들은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점, 그를 위해 온 몸으로 부딪히는 시도도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끼도록 만들었기에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두 작품을 통해서 흔해 보이지만, 쉽게 쓰지 않는 말인 “정성”의 참뜻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누군가는 촌스럽다고 비웃을 수 있어도, 그 단어는 적어도 진심을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이 이정표를 보며, 당분간은 실패가 두렵더라도 진심으로 원하는 (일이든 사람이든)무언가에 정성을 다 한다면 그것 자체가 의미 있음을 믿고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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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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