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남겨진 자에게 건네는 위로 [문화 전반]

브리다와 가인, 그리고 코코
글 입력 2018.03.2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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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기독교인이다. 모태 신앙인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사후세계에 관한 수많은 가르침을 받아왔고, 천국에 가기 위해 혹은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 규범을 수도 없이 배우고 따라야 했다.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기독교인이지만 그래서 더욱 사후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품곤 했다. 동시에 지옥의 실체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경계해야 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날 때도 천국인지 지옥인지 모를 그 미지의 세계로 그들이 영영 떠나버렸다는 생각에 더욱 괴로워했다. 죽은 자에 대한 감정의 굴곡이 원망과 슬픔으로 차오르다 알 수 없는 죄책감으로 깊어지는 자연적인 과정에 대해서도 남들보다 큰 고통을 경험했고, 떠난 자가 될 두려움과 남겨진 자로서의 죄책감은 중첩되어 죽음과 그 너머의 우주에 대한 공포는 커져만 갔다.
 
 그런 필자의 혼잡한 마음을 위로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문학과 음악과 영화였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로써 ‘즐거움’은 금기시되어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이 엄격한 규율이 되어 인간을 옭아맬 때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끝없는 슬픔 속에 침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예술은 남다른 시선을 통해 인간의 마음 깊은 구석에서 곪아가는 감정을 끌어내고 토닥인다. 유한한 삶과 죽음에 관해서 독특한 시선을 투영하여 필자에게 깊은 위로와 유희를 선사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문학 <브리다>와 가인의 'Carnival', 영화 <코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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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브리다>는 동명의 인물이 마법과 신비의 진리를 통해 자아를 확립해가는 과정을 그리며 유한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초조함과 방황을 위로한다. 주인공 브리다는 계속해서 부딪치고 실패를 거듭하며 자신에게 닥치는 일을 두려워하지만, 그의 불안한 삶도 결국 과거의 어떤 것을 이루던 조각들이 우주를 건너 만들어낸 것임을 깨닫고 평온하게 격동하는 마음을 머금은 채 담담히 앞으로 나아간다. 지금 보이는 저 별이 수백 수천 년 전에도 존재했고 먼 훗날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밝힐 것이라는 은유는 시간이 지나도 반짝임으로 남을 유한의 가치를 드높인다.

 별이 져도 그 파편들은 허공을 거닐다 다시 무언가를 이루고 흩어지듯, 인간 역시 출처 모를 어딘가에서 와서 흙이 되고 공기가 되어 또 어딘가로 갈 것이고 무언가가 될 것이다. ‘아름다웠더라’고 추억할 그 사이의 ‘소풍’을 후회 없이 노니는 것이 우리의 최선임을 이 책은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브리다는 간절히 바랐다.

별빛에 대해
이토록 많은 것을 아는 이 남자 안에
옛날 그녀였던 사람의
작은 일부라도 담겨있기를.

- <브리다> 中


 이 작품은 과거의 자신을 이루던 요소를 가장 많이 함유한 사람을 ‘소울메이트’라고 지칭하고 그와 만났을 때 진정한 자신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대 그리고 그것의 종결과 담대히 대면할 때, 우리는 비로소 빛나는 자아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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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다>가 유한한 삶의 가치를 일깨우며 불안함을 위로했다면, 죽음을 성대한 축제로 비유하여 죽음의 가치에 주목한 음악이 있다. 재작년에 발매된 가인의 [End Again]에 수록된 ‘Carnival’이라는 곡이다. 특이한 것은 자신을 기억해달라기보다 흔적 없이 잊어도 좋다는 메시지를 강렬히 전달한다는 것이다. 노래는 불꽃처럼 사라지는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한밤의 카니발의 그 불빛보다
정말 뜨거웠던 나 거기 있었다는 걸
아름다웠다는 걸
내 안에 담고 불꽃처럼 사라져

- 'Carnival' 中


 나 거기 있었고, 충분히 사랑했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더 이상 자책으로 휘감은 기억에 골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슬픔에 빠진 자들을 일으켜 세우듯 화자는 자이브 박자에 맞춰 경쾌하게 노래를 부른다.
 
 우리는 죽음을 ‘무채색’으로 대한다. 고인에 대한 추모를 상징하는 꽃은 백색 국화이며, 장례식에서도 무채색 옷을 입어야 한다. 그러나 이 곡에서 망자의 역할을 노래하는 가인은 형형색색의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무대에서 신나게 춤을 춘다. 마치 또 하나의 꽃을 피우러 가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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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을 넘어, 그 후의 세계를 상상한 작품이 있다. 영화 <코코>는 주인공 미겔이 우연히 떠난 사후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 영화는 사후세계를 매우 아름답게 묘사하기로 유명한데, 장대한 경관을 다룬 시각적인 연출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이승으로 착각할 정도로 사후세계를 일상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처럼 모두가 각자의 가족과 직업을 갖고 각자의 위치에서 세계를 작동시킨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단지 아름다운 광경과 시각적 쾌감으로 떨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죽음 후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거라는 가설을 유쾌하게 풀어내며 사후에 대한 거리감을 좁힌다.
 
 이 영화가 정의하는 ‘최종적인 죽음’은 ‘잊혀지는 것’이다. 이승에서 잊혀진 자는 사후세계에서도 영원히 모습을 감춘다. 그렇기 때문에 사후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이다. 죽은 자를 기억하며 돌이킬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무기력과 죄책감으로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그 기억 자체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치환될 수 없는 가치를 지녔음을 알려준다. 제목에 명시된 것처럼, 이 영화는 기억하는 자들에 대한 헌정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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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앞에 선 현 존재는 다양한 선택과 감정을 향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죽음을 대하는 것에 비해 남겨진 자에게는 너무 무신경하다. 그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았던 어른들의 어린 마음은 그렇게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깊이 가라앉고 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의 안녕을 가장 바라는 이들에게, 예술 작품들은 그토록 금기시되었던 ‘즐거움’의 가면을 쓰고 망자의 목소리를 빌려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유한한 삶을 살며 그 한계를 맞이하게 될까봐, 흔적 없이 사라질까봐, 미지의 세계에서 방황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덧붙여 필자 자신에게도 더 이상 자책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이 위로들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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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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