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악당은 만들어진다, '크로니클' [영화]

글 입력 2018.03.2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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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멋진 액션은 내 눈을 즐겁게 만들지만, 그들이 목숨까지 내걸고 지키려는 '평화'와 '정의'가 너무나도 멀게 느껴진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를 보았을 때도 위험에 빠진 세상을 구하는 '스파이더맨'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며 소외된 삶을 살다가 악당이 된 '맥스'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 힘을 갖게 된다면 정말 모든 사람들이 영화 속 슈퍼 히어로들처럼 사람들 구하고, 세상을 지키는 정의로운 일만 할까? 여기 이런 내 물음에 답을 하는 영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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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드류 (데인 드한)'는 아픈 어머니와 상습적으로 자신을 폭행하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그는 문을 제때 열지 않았다는 사소한 이유들로 아버지에게 심한 폭행을 당한다. 하지만 그를 위로할 친구조차 앤드류 주변에는 없다. 학교에 가도 그의 왜소한 체구와 어딘지 우울해 보이는 모습을 보며 놀리고 따돌리는 아이들뿐이다. 앤드류와 유일하게 말을 섞는 사람은 그의 사촌 '맷 (알렉스 러셀)' 뿐이다. 하지만 맷 역시 앤드류가 자신의 사촌이라는 사실을 창피해한다. 이런 상황 속에 앤드류는 맷과 함께 간 파티에서 학생회장으로 출마를 앞둔 '스티브 (마이클 B. 조던)'와 함께 이상한 구덩이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그곳에서 초인적인 힘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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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일한 희망, '힘'

 앤드류에게 주어진 상황은 즐겁지 않다. 동네 불량배들에게 맞을까 두려워 피해 다니고, 학교에서도 자신을 놀리는 패거리들에게 놀림을 당한다. '어딘가 이상한 애'라며 사촌인 맷조차 자신과 함께 다니는 걸 꺼려 한다. 이제껏 여자친구를 사귄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집이 그에게 편안한 공간이 되어 주는 것도 아니다. 별 이유도 아닌데도 자신을 때리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침대에 누워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가 일을 그만두어 경제적 사정 역시 어렵다. 어느 것 하나 앤드류의 삶에 희망을 가져다줄 부분은 없다. 앤드류는 사방이 벽으로 막힌 골목길에 서있다.

 앤드류는 스티브와 맷 중 가장 뛰어난 힘을 보여준다. 힘을 자유자재로 섬세하게 사용한다. 왜 다른 이도 아닌 앤드류 였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단지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서는 아니다. 앤드류는 다른 두 사람과 다르게 초능력을 얻기 전에 외부로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가장 움츠리고 있었던 에너지가 마치 강하게 누른 스프링이 다시 반사되어 강하게 튕겨져 나오듯 그의 내면이 초능력과 함께 더 크게 표출된다. '초능력'이라는 매개체로 맷과 스티브라는 절친한 친구가 생기고, 또 그들 중 가장 뛰어난 '초능력' 실력을 보여주며 인정받는다. 자신을 야유하던 학교 친구들 앞에 서서 묘기를 부려 인정을 받기도 한다.  우연이었지만 앤드류에게 주어진 막강한 '힘'은 숨 막히는 앤드류의 삶의 한 줄기 빛이 된다. '힘'은 매번 어둠의 그림자 속에 서있던 앤드류의 삶을 빛 속으로 나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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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자는 사슴을 잡아먹을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즐거운 분위기로 학교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던 앤드류는 '모니카 (안나 우드)'와 함께 방에 있다가 모니카의 몸에 토를 하고 만다. 모니카는 이런 앤드류의 행동을 소문내고 다시 학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과 놀림의 대상이 된다. 앤드류는 그 사건으로 더더욱 흔들린다. 밝은 빛의 중심으로 나아가던 앤드류의 삶은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온다.


 나는 가끔 희망이라는 것은 마약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것이 무엇이건 그 가능성을 조금 맛본 사람은 무조건적으로 그것에 애착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이 꺾일 때는 중독된 사람이 약물 기운이 떨어졌을 때 겪는 나락의 강렬한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고통을 알고 있기 때문에 희망에의 열망은 더 강화될 뿐이다.

- 회색 눈사람, 최윤 中


 앤드류가 맛본 잠시의 '희망'은 앤드류에게 더 큰 '절망'이 된다. 앤드류는 작은 것에도 흔들릴 수 있는 인물이다. 아픈 어머니, 폭력적인 아버지, 이제는 익숙해진 무시와 경멸, 그리고 소외감. 앤드류에게 익숙했진 것들은 모두 부정적인 것들뿐이다. 불행이 더 익숙한 이 인물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희망'이 그를 완전히 바꾸어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제야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을 받으며 가운데 서는 순간 앤드류는 다시 외톨이가 된다. 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빛'을 잠시나마 맛보고 다시 돌아간 '어둠' 속에 앤드류는 전보다 더 큰 절망을 맛본다.

 '힘'으로 더 큰 깊은 어둠에 갇혔지만 앤드류가 기댈 유일한 희망은 '힘'뿐이다. 앤드류는 자신이 가진 유일한 '힘'인 초능력에 대해 자신만의 철학을 세운다. 바로 '약육강식'.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는 일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앤드류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의 이를 뽑아버리기도 하고, 엄마의 약값을 구하기 위해 도둑질을 하고, 동네 불량배들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 죽이기까지 한다. 이제 앤드류는 이 영화의 완전한 '악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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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힘의 양면성


 영화 속 두 인물 '맷'과 '앤드류'는 힘의 양면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힘으로 '악당'이 된 앤드류와 반대로 '맷'은 힘을 올바른 일에 쓰고자 했다.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고 무시하던 세상을 짓밟아버리겠다는 마음이 된 앤드류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은 역시 맷이다. 돈을 훔치거나, 싫어하던 사람을 괴롭히는 등 평소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힘을 통해 즐길 것 같지만 맷은 달랐다.

 맷은 앤드류처럼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던 '소외'된 인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생각할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앤드류'는 그와 반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힘든 삶을 견뎌하기에 '남을 돕는 일'에 관심을 기울일 틈이 없다. 그저 그동안 힘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왔던 사람들의 멸시에 대한 복수를 하는데 급급하다.

*

 'Chronicle', 영화의 제목인 '크로니클'의 사전적 정의는 '연대기'이다. 영화는 앤드류가 우연히 힘을 얻게 되며 악당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나는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앤드류의 '연대기'를 보며 '악당은 만들어진다'라고 느꼈다. 그러나 누군가를 힘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일은 절대 '정당화' 될 수 없다. 앤드류가 불우한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가 저질렀던 수많은 나쁜 일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앤드류의 행동은 이유가 어찌 되었든 '잘못'이다. 하지만 누군가 조금이라도 소외된 앤드류에게 관심을 기울였다면, 앤드류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따스한 손길을 내밀었다면 앤드류는 악당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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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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