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니체의 눈으로 읽어본 산타클로스 [기타]

글 입력 2018.03.29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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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말이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어찌 보면 간단해.

산타클로스를 믿다가,
믿지 않다가,
결국에는 본인이
산타 할아버지가 되는 거야.

그게 인생이야.”

- 이기주, “언어의 온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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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서 이기주 작가의 베스트셀러 “언어의 온도” 속 한 구절을 전해 들었다. 서점의 홍보코너에서 우연히 본 구절인데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고 했다. 듣고 난 후로 내 머릿속에서도 떠나지 않는 구절이 되어버렸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 다음에는 인간의 성장과 베풂에 대한 조금은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산타클로스를 믿는 순진한 어린이 때로부터 그 존재를 믿지 않는 시기를 지나 다른 사람에게 베풀 줄 아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더 곱씹다 보니 뜬금없이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니체가 말한 정신의 세 가지 변화가 이 산타클로스 이야기와 묘하게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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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iedrich Nietzsche
 

니체는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가장 초반부에서, 정신의 세 가지 변화를 낙타사자아이에 빗대며 이야기한다. 첫 번째로 낙타의 정신이란 무거운 짐을 진, 인내심 많은 정신이다. 니체의 사상과 그의 시대를 고려했을 때 낙타의 정신이 지고 있는 짐이란 그 전 천년동안 뿌리내린 기독교적 가치관이라고 이해된다. 한편 오늘날에는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도덕과 의무들이 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겸손, 성실, 인내와 같은 도덕 가치들의 대부분은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고 부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낙타의 정신은 사회라는 주인이 얹어준 이 무거운 짐을 불평하기는커녕 기꺼이 인내하며 뚜벅뚜벅 사막을 걸어간다.

그러나 낙타의 정신은 사자로 변화하는데, 사자가 된 정신은 더 이상 짐을 짊어지지 않으며 자신의 주인과 대적해 자유를 쟁취하려 한다. 사회가 정해 놓은 도덕과 의무들에 의구심을 품고, 그에 반항하고 그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로운 인간 정신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자의 정신도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가치의 창조’이며 이것은 오직 아이의 정신만이 할 수 있다. 아이가 된 정신은 사자의 정신이 획득한 자유를 토대로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고 진정으로 세상을 유희한다.





마지막 단계인 ‘아이의 정신’과 ‘본인이 산타 할아버지가 되는 것’을 연결하는 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해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뒤로 미루자. 우선 나는 우리가 어린 시절 겪었던, 산타클로스를 믿다가 안 믿게 되는 과정이 낙타의 정신에서 사자의 정신으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산타클로스라는 상징의 핵심은 그것이 허구의 대상이자 동시에 믿음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산타클로스는 낙타가 진 무거운 짐과 같이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지만 실은 사회가 만들어 낸 기성 가치들을 상징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순수한 산타클로스 이미지를 왜 굳이 삐딱하게 바라보냐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산타클로스가 등장하는 동요부터가 그다지 순수하지가 않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낙타가 되기를 학습한다. 어른들이 만들어 낸 산타클로스라는 허구의 장치는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미덕을 심어주는 데에 이용된다. 아이들은 산타클로스 동요를 부르며 울고 싶을 때에도 울지 않는 법, 감정을 참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산타클로스를 믿는 아이들은 자연스레 울지 않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거듭나게 된다.

점차 우리는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게 되지만 대신 다른 가치들을 믿으며 살아간다. 집단 속에서 혼자 튀면 안 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낮출 줄 알아야 한다, 하기 싫은 일도 견딜 줄 알아야 한다, 등등…. 물론 이런 사회적 가치들은 나쁜 것이 아니다. 사회를 유지하고 타인과 함께 살기 위해 필수적인 것들이기도 하다. 다만 이 가치들을 그저 남들도 다 그러고 산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한 번도 이에 대해 의심도 비판도 안 한다면, 우리는 그저 주인이 얹어준 짐을 아무 생각 없이 짊어지는 낙타, 가치의 노예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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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개성과 비판능력이 강조되는 요즘 시대에 이런 말들은 다소 시대착오적인 훈계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낙타의 짐이 뜻하는 바를 좀 더 넓혀 보면 오히려 시대초월적인 훈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채 믿고 있던 허상의 산타클로스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고 하면 무조건 진리라고 믿거나 전문가의 말에 무비판적으로 순종하는 태도가 그렇다. 혹은 다른 사람 앞에서 항상 밝고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강박, 소위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아정체성이야 말로 우리가 모르는 새에 짊어지게 된 가장 무거운 짐인 것 같다. 자신의 성격, 취향, 가치관등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수록, 말하자면 ‘나는 이런 사람이야’가 확고하면 확고할수록, 내가 아닌 다른 것들과 만날 기회의 문을 스스로 닫아버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타의 짐이나 허상의 산타클로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보다는 낙타가 짐을 벗어던지고 사자가 될 수 있는 힘, 산타클로스라는 허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얘기하고 싶다. 언제부턴가 남들이 맞다고 하는 가치와 의무들, 심지어 스스로의 가치관에도 의문을 품게 되는 순간들이 우리를 찾아온다. 의문을 품는 것은 어쩌면 인간에게 있는 본질적 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문을 품으면 그로부터 거리를 갖게 되고, 거리를 가지면 곧 자유롭게 된다. 기성 가치들로부터 자유로운 사자의 정신은 더 이상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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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유라는 넓은 바다에 뗏목 하나, 붙잡을 나무토막 하나 없다면 그저 파도에 휩쓸리다 빠져 죽기 마련이다. 우리는 어디서 주어졌든, 어떤 형태이든 간에 나름의 가치관을 갖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자유롭기만 한 사자의 정신이 최선일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유는 곧 방황으로 이어진다. 천 년 동안 굳건히 이어져 온 기독교 정신이 무너진 후 인류 지성이 허무주의와 염세주의로 빠졌듯이, 자신의 산타클로스가 죽어버린 후 개인은 한동안 정신적 방황을 겪게 된다.

그리고 긴긴 방황을 끝내 극복한 정신은 스스로 산타클로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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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허상의 산타클로스가 기성의 가치들이라면, 산타클로스가 된 자는 스스로가 삶의 가치 그 자체가 된 자라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삶에서 따라야 할 도덕이나 가치들을 스스로 창조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가 말하는 정신의 세 번째 단계, 아이의 정신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아이의 정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산타클로스는 본디 선물을 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는 자유정신은 다른 이들에게도 자유를 퍼뜨려 저절로 주변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최종적인 억지 해석을 덧붙여본다.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는 내가 직접 산타클로스가 되어 자유라는 선물을 나눠주는 미래의 어느 때를 상상해보면서 말이다.



참고문헌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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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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